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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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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에서 중봉, 하봉으로 흘러내린 주능선이 쑥밭재에서 가지를 벌린다. 쑥밭재에서 시작되는 지능선은 새재, 서왕등재, 동왕등재, 밤머리재를 지나 한 차례 용트림하듯 웅석봉을 솟구쳐 놓고 마지막 지맥을 덕천강에 떨군다.
이 지능선은 지리산 동부의 외곽 담장과도 같아 보인다. 종래의 지리산 등산 개념에는 이 지능선이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웅석봉은 독립된 산으로 간주, 주로 산청읍에서 찾았다.)

쑥밭재~밤머리재 구간의 지능선은 지리산 동부 외곽을 경계하면서 계곡미가 아주 빼어난 유평계곡(일명 대원사계곡)을 빚어놓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유평계곡을 찾고, 그 계곡으로부터 천왕봉 등으로 오르고는 했지만, 이 외곽 지능선은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쑥밭재, 새재, 밤머리재는 지난날 지리산 주민들의 생활의 통로였다.
하지만 근래 들어 등짐이 없어졌듯이 옛길을 넘나드는 주민들 또한 없어졌다.

지리산권 주민들도 외면한 이 지능선의 재들 가운데 유일하게 도로가 뚫려 번창(?)한 곳이 밤머리재다. 산청읍과 삼장면, 시천면의 교통로를 절반 이상 단축시킨 2차선 포장도로다.
하지만 이 도로에는 '정치의 악취'가 아스팔트 아래 깔려 있다. 지난 70년대부터 선거철이 될 때마다 고갯길을 벌겋게 파헤쳤고, 선거가 지나면 다시 무한정 방치하기를 되풀이했다.
그렇게 이십수년을 끌다가 90년대 후반에 개통됐다.

마을 뒤로 꼬불꼬불 가파르게 넘어가는 이 도로는 홍계리의 안온한 정취마저 짓밟아버렸다.
"아부지. 지는 인자 갑니데이"란 말을 남기고 산속으로 잠적한 '인민공화국 소년단' 이홍희가 보아도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는 토벌군에 쫓겨 숨이 턱에 닿고 불알에 요령소리가 나도록 그 높은 밤머리재를 뛰어넘고 또 뛰어넘어오고 했는데, 지금 사람들은 승용차며 관광버스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며 넘나들고 있다.

산등성이를 파헤치고 도로를 내면 사람과 물류의 흐름을 좋게 한다. 하지만 이 도로는 동물의 이동을 끊고, 식물의 번식을 막아버린다.
더구나 도로를 개설할 때 마구잡이로 비탈에 쏟아놓은 토석이 흉칙한 상처자국처럼 눈을 어지럽힌다.
성삼재, 정령치를 넘는 도로는 먼저 군사작전용으로 비포장으로 개설했다가 관광산업도로로 확포장했지만, 밤머리재 도로는 선거표를 노려 생겨났으니 정치색이 짙다.

어쨌든 도로가 개설된 뒤로 밤머리재가 새 등산 기점으로 떠올랐다. 이곳에서 남쪽의 웅석봉으로 가거나, 북쪽의 왕등재로 산행을 하는 것이다.
웅석봉은 오래 전부터 많은 산꾼들이 즐겨 찾았지만, 동왕등재~서왕등재 능선은 밤머리재 종단 도로 때문에 사실상 새롭게 산길이 뚫린 것이다.
재를 넘는 도로 하나가 생겨나면서 거의 전인미답지나 다름 없었던 너무너무 순결했던 '처녀 능선'이 짓밟히게 된 셈이다.

필자는 10여년 전 서왕등재에 함께 오른 유평계곡의 한 청년에게 동왕등재를 거쳐 밤머리재로 가자고 했다가 한마디로 거절당했다.
그는 두 손을 내저으며 무서워서 발도 들여놓지 못 한다고 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이 찾아들지 않아 독사를 비롯한 온갖 야생동물들이 우글거리고 있다는 것.
그의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뒤 한 '유별난 사나이'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사나이는 밤머리재 아랫마을에 살던 '특별한' 밀렵꾼이었다. 얼마나 유별난지 그는 사납고 거칠기로 유명한 오소리만 전문적으로 잡는다고 했다.
"너구리 따위는 돈이 안돼 버린다. 뱀은 일부러 잡지는 않지만, 발에 걸리는 독사만 담아온다. 한 바퀴 산을 돌고 올 때는 오소리 몇 마리, 독사 한 자루는 가지고 온다."
그가 나에게 들려준 놀랍고 끔찍한 얘기였다. 하지만 그 직후 그가 밀렵꾼 단속반에 걸려 구속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유별난 밀렵꾼의 활동무대가 바로 동왕등재~서왕등재 구간의 산비탈이었다. 그곳 일대는 일반인의 발길이 거의 미치지 않는 동안 야생동식물의 천국으로 자리했던 것이다.
오소리가 많이 잡힌 것도 뱀 토끼 따위 먹이사슬이 완벽한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밤머리재 종단 도로 개설로 동, 서왕등재는 사람 발길이 점차 잦아지고 있다.
동식물의 은밀한 왕국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오호, 통제라!"
(이 글은 지난 2001년 3월에 쓴 것입니다-최화수)
  • ?
    오 해 봉 2007.10.03 23:07
    밤머리재도 이홍희등 많은 빨치산들의 애환이 깃든곳이군요,
    그길도 군내버스가 다닌다면 더많은 등산객과 사람들이
    다닐것 같습니다,
    지금은 밤머리재 정상 넓은곳에 홍계리에사는 권영진님(018-757-3112)이
    화물차와 콘테이너 박스를두고 간이매점을 운영하고 있답니다,
    지나는 사람들과 태극종주등 산을찾는 사람들에게 많은도움이 되고있지요,
    지리산 소식이 궁금하면 가끔씩 권영진님과 통화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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