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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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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사찰 가운데 필자가 가장 좋아했던 곳이 천은사(泉隱寺)였다. 노고단 종단도로가 뚫리기 전인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천은사는 비포장도로로 간신히 연결됐다.
천은사는 대사찰 화엄사와 산줄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번잡한 화엄사와 너무나 대비가 됐었다. 관광객을 위한 집단시설지구가 있는 화엄사와는 달리 천은사 앞에는 여관 하나 없었다.
천은사의 진정한 매력은 화엄사와 정반대의 그 조용함과 아늑함에 있었다. 너무나 청아(淸雅)한 경내,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면서도 고색창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천은사는 샘(泉)으로 유명하다. 신라 흥덕왕 3년(828년) 지리산 자락을 떠돌던 덕운선사는 달고 시원한 물이 솟아나는 샘을 만난다. 그이는 그곳에 절을 세우고 감로사(甘露寺)라 이름 지었다.
감로, 온갖 괴로움이 사라지고 장수한다는 물이다. 부처님의 가르침 또한 감로다. 감로사에서 축원을 드릴 때 세상업고를 벗을 수 있고, 죽은 자의 극락환생 영험도 얻게 된다.
극락보전 앞 좌우에는 수령이 수백년 된 연산홍 두 그루가 서있는데, 주홍과 연분홍꽃을 활짝 피울 때는 경내가 온통 극락세계로 생각될 정도이다.

이 감로사가 천은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조선 숙종 때 화재로 불타 다시 고쳐지을 때 감로샘터에 큰 뱀이 자주 나타났다.
공양주가 몇 차례나 놀라 아무리 내쫓아도 다시 나타나곤 하여 그 뱀을 잡아죽였다. 뱀이 죽자 그로부터 감로샘에서 물이 솟아나지 않게 되었다.
스님들은 샘이 마르자 샘이 숨어버린 것이라고 하여 천은사(泉隱寺)로 고쳐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마른샘에서 다시 물이 솟아나게 만든 것이 일주문 현액의 '물이 흐르는 글씨체', 곧 '수체(水體)'이다.
'智異山 泉隱寺(지리산 천은사)' 현액은 당쟁에 몰려 전남 완도군 신지도에 유배되어 16년간 외로운 삶을 이었던 조선 명필 이광사(李匡師 1705~1777년)가 썼다.
이광사가 이 글씨를 쓸 무렵 천은사에 화재가 잦아 주지스님이 "제발 불의 화를 면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광사는 "그러면 불을 막기 위해서는 물이 항상 흘러내려야 할 것이 아닌가" 라고 말하고 글자체를 물이 흐르듯 썼다고 한다.

이 글씨체 덕분인지 천은사는 그 뒤 화재도 일어나지 않고 말랐던 샘에서 다시 물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천은사는 물에서 시작한다. 사찰 입구의 인공호수에 푸른 물이 넘실거리고, 경내로 들어서는 곳에 자리한 수홍루(垂紅樓)도 물 위에 뜨있는 듯하다. 천은사는 샘물만 이름난 것이 아니라 천은사계곡도 사찰 분위기를 닮아 언제나 조용하다.
이 조용한 계곡은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은밀하게 찾는다. 필자는 언젠가 이 천은사의 한 요사채 툇마루에 멍청하게 앉아 있던 중에 무심코 들려오는 계곡의 물소리에 아주 크게 감동한 일이 있었다.

필자의 산에세이집인 <달 따러 가자>에 그 얘기가 실려 있다.
"내가 산에서 듣게 된 자연의 음악 가운데 가장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지리산 서쪽 끝의 천은사 요사채 툇마루에 멍청하게 앉아 있을 때의 천은사계곡의 실내악 연주였다. 그 은은하고 절묘한 선율을 오선지에 옮겨놓지 못하는 무능이 안타깝기도 했는데, 물 흐르는 소리와 산새들의 지저귐이 마치 현악기군과 금관 또는 목관악기가 서로의 소리를 주고받으며 연주를 하는 듯했다."

지난 시절의 얘기를 되살리는 것은 좀 무엇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천은사나 선암사나 그 분위기가 아주 비슷했다. 천은사도 선암사도 비포장도로였고, 입구에 작은 구멍가게 하나만 있던 것도 같았다.
천은사 경내로 들어서는 수홍루와 선암사 경내로 들어서는 승선교의 아름다운 예술적 감각 또한 유사하다.
번잡한 대사찰 화엄사와 산등성이 하나를 사이에 둔 천은사, 대사찰 송광사를 반대편 산너머에 둔 선암사 또한 비슷했다. 그보다 단풍이 절정인 만추의 아름다운 산사 정취도 너무나 꼭 같았다.

구례 천은사와 승주 선암사, 그 중간 지점 곡성에 태안사(泰安寺)가 있다. 이 태안사 또한 천은사와 닮은 점이 많다.
태안사 능파각과 천은사 수홍루, 두 사찰의 금당이 닮았고, 태안사 해회당(海會堂)과 천은사 해승당이 또한 닮았다.
천은사는 또한 선암사와 닮았으니, 다시 말하면 천은사, 태안사, 선암사가 그 분위기와 모습까지 아주 닮은 것이다.
하기는 태안사는 한때 지리산 화엄사와 조계산 송광사를 말사로 거느린 대찰이었다니까 적당한 간격을 두고 서로가 띠를 형성하며 닮은 것도 당연할 듯하다.

지리산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가까이 다가가서 보는 것 못지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보는 것도 필요하다.
구례의 천은사나 화엄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곡성의 태안사, 승주의 선암사를 둘러보는 것이 좋다.
천은사, 태안사, 선암사는 그 적요한 산중 분위기나 경내로 들어서는 길의 분위기까지 흡사하다. 다만 10여년 전부터 사찰 입구 도로가 포장되고 선암사처럼 집단시설지구가 들어선 곳도 있어 그것이 아쉽기도 하다.
아름답고 청아한 세 사찰을 더 늦기 전에 함께  찾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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