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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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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는 운봉이요, 경상도는 함양이라. 운봉 함양 두 얼품에 흥보가 사는지라..." '흥부제비노정기'에 나오는 대목이다.
흥부의 출생지로 알려진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는 전북 남원시와 경남 함양군이 나뉘어지는 팔령재 아래에 있다. 흥부의 고향인 탓인지 이 마을에는 흥부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연비봉, 화초장 바위, 흥부네 텃밭, 연하다리 등이 그것이다.
성산리가 흥부의 출생지라는 사실을 가장 결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이 마을에서 전래되고 있는 '박첨지 설화'이다.

'박첨지 설화'는 '흥보전'과 내용이 비슷하다. 박첨지는 부자였지만 아주 인색하여 재물만 탐하여 소작인들과 이웃을 혹독하게 괴롭혔다.
그는 또 하나밖에 없는 동생 흥부를 내쫓았고, 다시 찾아온 동생에게 매만 주고 내쫓았다는 것이다. 그 뒤 함양 땅에서 민란이 일어나 박첨지가 죽임을 당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의 시체조차 거두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새 부자가 된 흥부는 형의 참변 소식을 듣고 찾아와 동네사람들에게 돈과 토지를 나눠주고 해마다 형의 제사를 지내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성산리 주민들은 지금까지 매년 삼월삼짇날 박첨지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가난으로 방황하던 흥부가 정착하여 복을 받게 된 흥부 정착촌으로 알려진 아영면 성리에도 화초장 바위며 허기재 등 흥부전 내용과 관련된 지명들이 남아있다.
또한 복덕촌(福德村)으로 추정되는 복성리가 복성이재 너머에 있고, 도탄 변사정(桃灘 邊士貞)이란 학자에 의해 이 마을이 생겨났다고 한다.
성리가 흥부 정착촌임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이 마을에 전해오는 '춘보(春甫) 설화'가 있다.

'춘보 설화'는 보은(報恩)의 이야기이다. 춘보는 가난하여 허기가 져서 마을길에 쓰러졌는데, 마을의 어떤 사람이 업어다 흰죽을 먹이고 구해 주었다. 그 뒤 부자가 된 춘보는 자기를 살려준 사람에게 논 9마지기를 사주어 보답했다.
지금 마을에 있는 '흰죽배미'라는 논이 바로 그 논이며, 춘보가 쓰러진 곳을 '허기재'라고 한다. 삯꾼이 곡식을 지고 복성이재를 넘어오다 넘어져 곡식을 쏟았다는 얘기를 들은 춘보는 품삯을 후히 주고 쌀 한 섬도 주었다는 것이다.

성리 마을 주민들은 춘보가 어느 때 사람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부자로서 마을의 어려운 사람을 잘 도와주고 덕을 많이 베풀었던 선덕가(善德家)로 알고 있다. 춘보의 존재는 설화로만 전해오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매년 정월보름날 제사를 모셔오고 있다.
'춘보제(春甫祭)', '춘보망제(春甫望祭)'라 불리는 제사까지 지내오고 있다면 그가 실존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성리의 춘보가 흥보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다른 얘기들도 전해오지만 족보와 같은 '확정적인 자료'는 물론 없다.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의 '박첨지 설화'나 아영면 성리의 '춘보 설화'는 흥부의 출생지와 흥부 정착마을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학문적인 고증을 받았다. 이에 따라 이 두 마을을 흥부민속촌으로 조성하고 있고, 민속축제 '흥부제'도 성대하게 열고 있다.
하지만 고전소설 '흥부전'의 내용과 주제에서 그 근원 설화는 '방이 설화'란 주장이 더 강하다.
'방이 설화'는 '금추(金錐) 설화'라고도 하는데, 중국에까지 전해져 그 내용이 당나라의 여러 전적에 실려 있다. 흥부전을 연상케 하는 내용이 흥미롭다.

신라 때 김방이가 살았는데, 그의 아우는 부자였고 형인 방이는 몹시 가난했다. 어느 해 방이는 아우에게 누에와 곡식 종자를 구걸하자 심술 사납고 성질이 포악한 아우는 누에와 곡식 종자를 삶아서 형에게 주었다.
이를 모르는 방이는 누에를 열심히 치고 씨앗도 뿌려 잘 가꾸었다. 그 중에서 단 한 마리의 누에가 생겼는데, 그것이 날로 자라 황소만큼 컸다. 소문을 듣고 샘이 난 아우가 찾아와 그 누에를 죽이고 돌아갔다.
그러자 사방의 누에가 모두 모여들어 실을 켜 주어 형은 누에왕이 됐다.

또한 곡식도 한 줄기밖에 나지 않았으나 역시 이삭이 한 자가 넘게 자랐다. 하루는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이삭을 물고 산 속으로 달아났다. 새를 좇아 산 속에 들어가니 붉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나타나 금방망이를 두드리니 원하는 대로 음식이 나왔다.
방이가 그 금방망이를 주워와 아우보다 더 큰 부자가 됐다. 심술이 난 아우가 형처럼 하여 새를 쫓아갔더니 아이들이 금방망이 도둑이라며 모질게 벌을 받은 데다 코마저 뽑히고 쫓겨났다.
"내 코가 석 자"란 속담도 여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고전소설 '흥부전'의 내용이나 전개과정은 이 '방이 설화'에서 따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짐작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흥부의 출생지와 정착촌으로 성산리와 성리를 단정하는 것에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박첨지와 춘보는 주민들이 제사까지 모셔오고 있는 만큼 실존인물로 보이는데, 이들의 얘기를 '방이 설화'를 빌어 '흥부전'으로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지리산 북쪽 관문에 흥부마을이 있고, 흥부제가 열리고 있다면 지리산을 찾는 길에 누구나 한번은 찾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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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해 봉 2007.08.14 00:05
    박첨지 춘보 방이설화 미소지으며 잘 읽었습니다,
    여산선생님 더위에 건강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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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규 2007.08.15 02:24
    흥부전의 배경이 된 방이설화, 박첨지설화, 춘보설화등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흥부전의 배경에 대해서 참 궁금한것이 많았었는데 여산선생님덕분에 이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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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호정 2007.09.03 11:39
    민간설화이지만 실존인물일 가능성을 인정한 글 속에서 자신있게 흥부전을 , 춘보전, 방이전을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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