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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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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칠불암(七佛庵)! 나는 지리산의 존재를 모를 때부터 '칠불암'이란 암자 이름은 알고 있었답니다. 세계건축사전에도 올라 있는 저 유명한 '아자방(亞字房)' 이야기가 교과서에 실려 있었기 때문이지요. 아궁이에 한번 불을 지피면 석달열흘 동안 구들장이 따뜻하다는 아자방이 있는 암자라고만 알았을 뿐이지만, 칠불암이란 이름은 나의 기억 속에 아주 일찍 자리했던 거예요. 지난 80년 겨울, 나는 처음으로 신흥마을을 찾았는데,  '칠불암'이라 적은 길 안내 표지판을 보고 무척 가슴 설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답니다.

"이 길을 따라 두어시간 걸어올라야 닿게 되는데..." 칠불암이 산속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고 묻자 신흥마을 주민이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어요. 그 때는 눈이 하얗게 덮여 있는 데다 매서운 바람도 몰아치고 있어 두시간을 걸어올라야 닿게 된다는 말에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나가는 동안 칠불암의 신비로움을 하나하나 알게 됐지요. 가락국 허황옥 왕비의 오빠 보옥선사(장유화상)가 7왕자를 데리고 가 운상원(雲上院)에서 득도 성불케 하여 칠불암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에게 황홀한 환상으로 감동을 안겨준 것은 '운상원의 옥피리' 이야기였습니다. 해발 830미터, 구름 위 산속에 신선이 옥피리를 부는 운상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실체는 보옥선사가 아유타국에서 가져온 한 가닥 현악기 '아크탈'과 '분지'라는 퉁소였다지요. 산 아래 주민들이 천상에서 들려오는 듯한 그 소리를 신선이 옥피리를 분다고 생각했으니, 참으로 그럴 듯합니다. 칠불암 아래편에는 범왕리(凡旺里)가 있는데,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이 머물며 범왕사(梵王寺)를 세운 데서 유래한다고도 했습니다.

이런 칠불암을 어찌 한번 찾아보지 않을 수가 있으리오. 따뜻한 봄기운이 대지에 충만한 날, 나는 마음먹고 칠불암으로 길을 떠났어요. 하지만 혼자 떠난 것이 아니라 산악회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가게 된 것이 문제였습니다. 쌍계사까지는 포장도로여서 기분좋게 달려갔지만, 그 다음이 말썽이었어요. 쌍계사~신흥은 겨우 3㎞에 불과한 거리지만, 2차선으로 확장을 하기 위해 길을 파헤쳐 놓았는데, 얼었던 땅이 녹아 버스가 마치 못자리에 빠진 꼴이었지요. 버스가 진흙탕 범벅이 되자 기사가 엄청나게 짜증을 냈었지요.

버스 기사의 욕지꺼리를 덮어쓰고 어찌어찌 하여 신흥마을에 닿았어요. 신흥마을에선 버스에서 내려 좁다란 산판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신흥에서 목통마을 갈림길이 있는 수각까지가 또 3㎞였어요. 칠불암으로 오르는 '지렁이' 같은 이 산판도로가 뚫린 것이 1978년 봄이라고 합니다. 자갈도 깔아놓지 않은 도로는 겨우내 얼었다가 해빙으로 지독한 뻘밭이 돼 있었어요. 차량은 고사하고 우리들이 걸음을 떼놓기에도 아주 곤욕을 치러야 했답니다. 수각에서 칠불암까지는 그나마 길 옆의 풀을 밟고 걸어갈 수 있어 다행이었어요.

부산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한 우리 일행은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칠불암에 도착하게 됐습니다. 산길이 아닌 산판도로가 뻘 천지여서 질퍽거리며 뻘범벅이 되어 미끄러지며 오르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지요. 아니, 오솔길을 따라 산행을 하는 것보다 몇 배로 짜증이 나고 지쳤던 거예요. 원래 계획에도 토끼봉으로의 산행은 잡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칠불암이 목적지였지요. 하지만 그 칠불암은 우리에게 너무나 실망을 안겨주었어요. 한창 복원 공사를 하느라 기계음 등을 요란하게 쏟아내고 있었으니까요.

나의 눈으로는 신비의 아자방도, 운상원의 옥피리도, 일곱 부처로 성불한 왕자들의 자취도 찾아볼 수 없었어요. 그야 여수병란의 와중에 국군에 의해 칠불암이 통째로 불태워졌으니, 칠불암의 잘못일 수는 없지요. 불태워진 불당 등을 다시 복구하는 것도 마땅한 일이지요. 하지만 복원을 하면서 과연 아자방의 그 신비도 되살릴 수 있을 것인가? '운상원 옥피리', 우리 음악의 연원지다운 분위기를 되찾게 할 수 있을는지에 의문과 회의가 따랐습니다. 작업 인부들의 거친 말투에서 그런 느낌이 앞서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로부터 또 몇 해가 흘렀어요. 쌍계사~신흥의 화개동천 도로가 2차선으로 확포장이 됐답니다. 신흥~수각~칠불사(칠불암은 복원과 함께 칠불사로 승격)까지 시멘트 포장이 이뤄졌어요. 또 몇 해가 지나자 칠불사 앞에 대형주차장이 마련됐고, 어느새 관광버스들이 줄을 지어 오르내립니다. 요즘은 칠불암을 신흥마을에서 걸어서 찾는 이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예요. 승용차나 관광버스로 편안하게 오고가지요. 그러니 오직 걸어다니던 때의 '운상원 옥피리'나 일곱 왕자의 체취며, '아자방 신비'를 어찌 느껴보기나 하겠습니까.
  • ?
    hebarakiya 2002.09.06 17:45
    얼마전 신흥마을에서 칠불사까지 걸어서 갔었더랬죠.... 추적추적 오는 비만큼이나 땀을 흘리고 갔었는데.... 요즘은 모든 암자들이 대형화가 되어가서 가슴이 아픕니다....
  • ?
    최화수 2002.09.06 19:03
    역시 hebarakiya님 답습니다. 신흥마을에서 추적추적 오는 비를 맞고 걸어서 올랐다니요. 도보로 갈 때는 목통마을을 거쳐가는 지름길이 있는데, 그곳으로 갔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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