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은사와 태안사와 선암사 (4)

by 최화수 posted Sep 0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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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는 신라 경덕왕 원년(742년)에 신승 3인에 의해 중창되었다. 이후 문성왕 9년(847년) 혜철 국사에 의해 선종사찰로 거듭 개산되어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파를 형성하게 된다.
그 뒤에 고려 태조 때 혜철대사가 머물면서 132칸의 건물을 짓고 대규모 절을 이룩하여 동리산파의 중심 도량이 되었다. 고려 초에는 송광사, 화엄사가 모두 이 사찰의 말사였다.' 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20번지에 자리한 고찰 태안사에 대한 안내글이다.

지도를 꺼내놓고 보면 태안사 뒤편 해발 752.9미터의 우뚝 솟아 있는 산은 봉두산으로 표기돼 있다. 그런데 이 산 안에 깃든 태안사 일주문 현액에는 '桐裏山 泰安寺(동리산 태안사)'라 되어 있다.
왜 이처럼 이름이 다를까, 그것이 의문이었다. 앞서 인용한 태안사 안내글에서 '동리산파'라는 말이 거푸 나온다.
하지만 동리산과 봉두산은 전혀 연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산이름이 아무렇게나 지어지고, 함부로 바뀌어 불릴 까닭이 없다.

동리(桐裏)란 오동나무 속이란 뜻이다. 오동나무는 봉황이 서식하는 나무이다. 따라서 그 오동나무 속은 얼마나 포근하고 아늑할 것인지 능히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러니까 태안사가 자리잡은 곳은 마치 아늑한 오동나무의 줄기 속처럼 주변 산세가 포근하게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동리산으로 불렀던 것이다.
봉황이 서식하는 오동나무 줄기 속과 같은 주변 산세 가운데 으뜸 봉우리는 봉황의 머리 곧 봉두산(鳳頭山)이라고 부를만하다.

태안사로 찾아드는 2.5㎞의 아주 깨끗하고 아늑한 오솔길에서 산사를 찾기 위한 마음의 정화를 얻고도 남음이 있다.
절에 이르는 길을 이처럼 깨끗하게 보존하고 있는 사찰의 속깊은 배려도 예사롭지 않다.
이곳에 태안사를 중창하고 동리산파를 개창한 도선국사 스승 혜철의 부도비에는 '수많은 봉우리, 맑은 물줄기가 그윽하고 깊으며 세속의 무리가 들어오는 경우가 드물어 승려들이 공부하기에 좋다"고 씌어 있다. 참으로 신성한 도량이다.

동리산의 글자 그대로 뜻은 오동나무의 줄기 속이라는 것이지만, 불가에서는 봉황이 오동나무 열매를 먹고 산다는 신성한 곳을 뜻한다.
태안사는 구산선문 중에 유일하게 선원이 남아 있는데, 이곳에서 하안거 동안거를 하겠다고 찾아드는 선승들이 너무 많아 사찰에선 힘이 부칠 지경이라는 것.
이른 아침 사찰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게 되면 마음의 평안이 저절로 찾아질 것 같다. 더구나 능파각에라도 올라 쉬노라면 얼마나 좋을까.

태안사의 보물은 사찰 경내에만 있지 않다. 봉황이 깃드는 오동나무 줄기 속과 같은, 사찰을 한 바퀴 두르고 있는 뒷산을 돌아오는 것에서 진정한 매력과 기쁨이 깃들어 있다.
태안사 앞 연못에서 올려다보면 사찰을 감싸고 있는 부드러운 육산이 마치 연꽃잎과 같다. 오대산의 축소판이라 할까.
실제로 이곳 동리산, 또는 봉두산은 바위를 거의 찾아볼 수도 없는, 잡목림만 무성한 아주 완벽한 육산이다.

봉두산은 그리 높은 산이 아니다. 사찰에서 왼쪽,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나있는데, 어느 쪽이든 정상과 연결된다.
성기암 쪽으로 올라 충혼탑 쪽으로 한 바퀴 돌아올 수도 있고, 그 반대 방향으로 진행해도 상관이 없다. 이 산길을 한 바퀴 돌아오는 데는 3시간30분 정도면 넉넉하다.
등산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탄할 정도로 부드럽다. 걷기에 좋은 오솔길이다. 정상이나 능선의 조망 또한 아주 빼어나다
.
봉두산은 웅장하거나 산세가 빼어난 산은 아니다. 기암괴석이나 거대한 암벽 등 특출한 모양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곳처럼 부드러운 산길이 달리 또 있을까 하는 느낌이 앞선다. 마치 양탄자를 깔아놓은 위를 걸어가는 듯하여 콧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이다.
오솔길을 감싸고 있는 잡목숲이 얼마나 정겨운지 잎을 모두 떨군 겨울에도 포근한 느낌이다. 사찰 입구 오솔길에서 사찰 뒷산을 한 바퀴 도는 오솔길, 모두 놓치지 말아야 한다.

봉두산을 한 바퀴 돌아오면 자연히 선암사에서 조계산을 오르는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조계산 등산로는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것이 대표적이다.
선암굴목재에서 장군봉을 돌아 송광굴목재로 긴 타원형을 돌아오는 것과 그 느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천은사와 태안사, 그리고 선암사는 그 입구 계곡 위에 걸린 다리와 강선루와 능파각 같은 것들로 하여 첫 인상부터 닮아 있다.
또한 알고보면 사찰 뒤편 산길까지 그 느낌이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