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산 솟대, 개암주 돌장승(재록)

by 최화수 posted Aug 2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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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 정착촌인 남원시 아영면 성리를 찾는 길에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들이 또 있다. 아영면소재지로 가는 길에 마주치는 매산마을 솟대와 면소재지를 1킬로미터 쯤 지나서 자리한 개암주마을의 돌장승이 그것이다.
남원을 비롯한 지리산에는 솟대와 장승이 꽤 많이 있다. 솟대는 구룡계곡을 찾아드는 호경리나 의신마을에서도 보았고, 장승은 실상사 석장승, 벽송사 목장승 등 그 독특한 모습이 시선을 뗄 수 없게 한다.
절륜의 정력을 자랑했던 '변강쇠'도 장승 때문에 비참한 신세가 되지 않았던가.

이 솟대와 장승은 무엇이며, 무슨 까닭으로 세워져 있을까. 지리산을 찾을 때 우리들은 이들과 곧잘 마주치는데, 그냥 무심코 지나칠 일만은 아니다. 솟대나 장승을 세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 조상들은 왜 긴 장대 위에 나무로 깎은 오리를 올려놓았을까?
또 마을과 사찰 입구에는 왜 얄궂은 얼굴의 목장승이나 석장승이 턱 버티고 서 있는 것일까?
솟대와 장승은 누구에 의해 세워졌고, 오랜 세월을 어찌 버텨왔는지 알아볼 만하다.

남원시 아영면 매산(梅山)마을은 지형이 매화낙지(梅花落地)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처음에는 방죽 옆에 터를 잡고 살았다고 하여 '방죽터', 고려말 이 곳에 군량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어서 '창말(창고마을)', '사창(社倉)', '창촌(倉忖)'으로도 불렸다.
원래는 마을 앞의 넓은 토지가 비옥하여 주민들이 넉넉하게 살았으나 사창이 생기고 관원이 거주하면서 그들의 행패가 부쩍 심하여 인심마저 거칠어지고 점차 마을이 쇠퇴했다고 한다.
마을 앞 넓은 들판 논 가운데 두 기의 솟대가 세워져 있다.

솟대 위에 두 마리씩 오리를 앉혀두었는데, 모두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솟대는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고 모든 액을 임금이 계신 북쪽으로 보냄으로써 나랏님이 마을의 모든 불행과 불편함을 없애주기를 기원했다는 것이다.
원래 이 솟대에는 누석단을 설치해두었지만, 지난 95년 경지정리 이후 누석단이 사라졌다.
솟대는 삼한 시대에 신을 모시던 장소인 소도(蘇塗)에서 유래했다. 소도에 세우는 솟대(立木)가 그것이며, 소도란 발음 자체가 솟대의 음이 변한 것이라고도 한다.

솟대는 신앙의 대상으로 세우는 장간(長竿)인데, 지역에 따라 '소주', '소줏대', '표줏대', '솔대', '기릿대', '수살목', '서낭대', '별신대' 등으로 불린다.
단군조선 이래 우리나라 조상신인 삼신(한인, 한웅, 한검=단군) 숭배사상에서 제천(祭天)대회를 열고, 조상신인 삼신(三神)에게 제사를 드리고 그곳에서 마을의 일이나 나라의 큰일을 걱정하며 가무와 여러가지 놀이를 했다.
이 삼신께 제사를 드리는 곳이 소도이며, 특히 마한에선 5월과 10월에 소도회(蘇塗會)를 열어 나라의 큰 가절(佳節)로 삼았다.

소도회는 일정한 장소에 솟대라는 신기(神旗)를 세우고 그 아래서 백성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큰 잔치를 벌이면서 가무를 즐겼는데, 우리 민속놀이의 근원이 된 것이다.
솟대가 세워져 있는 마을은 우리의 전통적인 삼신 숭배 사상이나 민속놀이를 잘 이어오고 있는 곳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소도회는 점차 변화 발전하여 종교적 신앙, 민가의 성주신앙, 마을의 마을신앙, 농민의 농업신앙으로 바뀌어졌기 때문에 꼭 삼신 숭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민간신앙의 상징인 것은 틀림이 없겠다.

아영면 소재지에서 1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개암주마을 입구 길 양쪽에는 한 쌍의 돌장승이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모두 판석으로 앞뒤가 판판하고 두께도 얇으며 머리 부분이 뾰족하다.
마을 사람들은 두 장승을 '벅수' 또는 '돌비석'이라 부르고 내외간으로 알고 있다. 마을 단위의 제례의식은 없지만, 아기를 낳기를 바라는 부녀자들이 제수를 차려놓고 정월에 간단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마을 또는 절 입구, 길가에 세워놓은 사람 머리 모양의 장승은 돌로 만든 석장승, 나무로 만든 목장승이 있다.

장승의 기원은 고대의 성기(性器) 숭배사상이라거나 사전(寺田)의 표지에서 나왔다는 등 설이 다양하다.
그 명칭도 '후', '장생', '장승' '벅수', 법수', '수살목', '당산할아버지' 등 여러 가지다. 그 기능은 대체로 지역간의 경계표 구실, 이정표 구실, 마을의 수호신 역할로 본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쌍을 이루며,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등의 글자를 새겨놓기도 한다.
민간신앙에선 장승을 서낭당, 산신당, 솟대와 동등한 것으로 인정하며, 액운이 들었거나 질병이 전염되었을 때는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