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카가 '군민 염원'인가?(2)

by 최화수 posted Jun 2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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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은
사람이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이 시조를 누구나 알듯이, 우리 언어 생활 속에 녹아 있는 외국 산 이름으로 '태산(泰山)'이 으뜸이리라.
갈수록 태산', '티끌 모아 태산', '태산명동 서일필', '가자니 태산, 돌아서자니 숭산'이란 속담이 있고, 뛰어난 인물이라는 뜻의 '태산북두(泰山北斗)'도 있다.

태산은 중국 5악 가운데 으뜸 가는 명산이다. '시경(詩經)'은 '하늘과 통하는 산'이라고 했다. 그래서 태산 등정을 '여등천(如登天)'이라고 한다.
실제로 돌계단인 '하늘 사다리'를 타고 오르면 '천가(天街)'가 열리고, 옥황정(정상) 사당에 옥황상제를 모셔놓았다.
민간신앙의 본산인 태산은 중국 국민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한다.

중국 왕조의 국가적 행사 가운데 가장 장엄한 봉선(封禪)은 태산 정상에서 올렸다. 하늘에 태평성대를 보고하는 신성한 의식으로 후덕한 황제에게만 허락됐다.
또 있다. 중국 인민에게도 태산은 각별한 의미가 전해온다.
태산에 오르면 젊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중국인들은 줄지어 태산을 오른다. 근래는 우리 한국인들도 이 태산을 줄지어 찾고 있다.

태산은 해발 1545m로 그 높이는 대단하지가 않다. 하지만 '하늘 사다리'란 말이 시사하듯 암괴들로 이뤄진 것이 특징이다.
중천문에서 남천문까지 돌계단이 6660개, 정상까지는 7412개가 놓여 있다. 가파픈 '수직상승' 구간도 꽤 길게 이어져 있다. 옛 사람들이 어째서 태산을 '하늘과 통하는 기둥'이라고 했는지 알 만하다.

남천문부터 '하늘거리'란 천가가 열려 있다.
하지만 가서 보라. 그 거리가 결코 '천상(天上)' 같지가 않다. 음식점과 여관, 가게와 잡상인 등이 뒤엉켜 요란하고 어지럽다. 더구나 이곳에는 갑자기 인파마저 계단 길의 몇 배로 넘쳐난다.
하늘거리는 정상까지 마치 도심지 거리처럼 시끌벅적하게 이어진다.

옥황묘(玉皇廟)가 있는 정상 일원도 요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팔뚝만한 향을 피우는 냄새가 진동하고, 바위에 새긴 시문 등 글씨는 왜 또 그리 많은지!
크고 작은 바위에 온갖 글씨들을 새겨놓았다. 심지어 아무 글자도 없는 거대한 빗돌(無字碑)을 세워놓기도 했다.

198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과 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이른바 유네스코 복합유산이니, 태산의 문화와 자연 그 보존가치는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 현실은 그 반대이다.
‘하늘거리’에서 정상까지의 어지러운 모습들은 자연파괴의 전형이나 다름없다.

6660개의 돌계단길보다 그 위의 ‘하늘거리’에 왜 갑자기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많아지는가?
그것은 케이블카 때문이다. 케이블카, 그것도 세 곳에서 관광객들을 실어 올린다.
케이블카를 타고 순식간에 오른 관광객들이 하늘거리를 뒤덮는다.
그래서 정상까지 시장바닥의 난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황제들은 태산에서 봉선을 해야 그 권위를 인정받았다. 고대 제왕들은 봉선을 할 때 수레바퀴를 모두 부들로 감싸 돌 하나 흙 한줌 훼손하지 않도록 했다.
황제라고 하여 아무나 봉선을 할 수 있 것도 아니었다. ‘정관의 치(貞觀之治)라 하여 황금시대를 열었던 당태종도 신하 위징(魏澂)이 가로막아 태산에 오르지 못 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을 실어 올리는 케이블카에다 여관과 음식점, 난전에 잡상인까지 뒤엉켜 법석들이라니…!

"자기네 후지산(富士山)은 손도 안대면서 태산에는 기어이 케이블카를 놓다니요!"
조선족 안내인이 일본 자본과 기술이 기부체납 형태로 케이블카를 가설, 태산을 망쳐놓았다고 비난한다.
그렇다. ‘중국인의 정신’이라는 태산에 함부로 케이블카를 놓을 수야 없는 일이다.

태산의 등산구에는 공자가 이곳에서부터 올랐다는 일천문이 있다.
거기에 태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끌게 하는 돌글자가 있다.
‘登高必自’가 그것. 등고필자,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낮은 곳에서부터 걸어서 올라가라는 경구(가르침)이다.

지리산 노고단 턱 밑 성삼재까지 도로가 개설돼 있다.
노고단 등정에 나섰다는 이들이 이 성삼재까지 차량으로 오른다. 심지어 지리산 종주를 한다는 이들도 차량으로 성삼재에 오른다. 이해 못 할 일이다.
화엄사에서 걷지 않고 어찌 노고단에 오르는 기쁨을 알겠다는 것인가.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은
사람이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이 시조 한 수에 담긴 가르침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