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에 '성모석상' 복원한다!

by 최화수 posted Oct 0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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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주봉 천왕봉은 두 가지 지적(地籍)을 가지고 있지요.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산 208번지가 그 하나요,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산 100번지가 다른 하나입니다.
천왕봉 지번을 산청군과 함양군이 함께 갖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천왕봉에 대한 주인 의식은 산청군 못지 않게 함양군도 당연히 갖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멀잖아 천왕봉에선 중요한 민속자료 복원 사업이 추진될 모양입니다.

함양군은 오는 10월18일 제4회 '지리산 천왕축제'를 열게 됩니다. 이 축제는 '우리 민족의 영산이 근대 지리산의 암울했던 시절을 뛰어넘어 희망의 역사를 만드는 장으로 가꾸어 나가 함양의 지리산으로 발돋움하고자 민간 주도로 마련했다'고 하는 군요. 천왕축제는 지난 2000년부터 천왕봉과 백무동 일원에서 매년 10월에 열리고 있지요. 위령제와 살풀이춤, 쑥불놀이 등 행사 내용도 다채롭습니다.

그런데 함양군은 천왕제를 열게 되면서 천왕봉의 민속자료 복원에 눈을 뜨게 됐나 봅니다. 천왕봉 성모석상(聖母石像)과 성모사당 복원을 추진하기로 하고 곧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간다고 하는 군요. 함양군은 1차적으로 6천만원의 예산을 확보하고 천왕봉의 성모상 복귀사업을 펴나갈 것이라고 합니다.

천왕봉에 있던 원래의 성모석상은 중산리 중심골 천왕사에 강제보존(?)이 되고 있어 어떻게 손을 쓸 수조차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따라서 함양군은 새 성모석상을 만들어 천왕봉에 다시 봉안할 계획이지요. 이와 함께 성모석상을 보존할 성모사당도 당연히 옛 모습 그대로 복원을 추진할 것이라 하는 군요.

마천면 출신 문호성 함양군의회의원은 "1천여년 동안 우리 민초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온 성모석상을 천왕봉에 모셔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천왕봉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한 성모석상과 함께 성모사당도 옛터에 함께 복원할 것이다. 다만 그 중대성에 비추어 신중한 사업 추진을 모색하고자 관계 전문인사들의 의견을 모으는 한편 공청회나 토론회도 개최할 것이다"고 밝혔다.

강제하산(?) 조처를 당했던 성모석상이 다시 천왕봉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인가?
성모사당도 옛모습 그대로 복원된다면 천왕봉 풍경부터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성모상은 천왕봉 남쪽의 산청군 시천면 두류산악회원들이 복귀운동의 불을 먼저 당겼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어요. 시천면 주민들은 지난 2000년 새 천년을 맞게 된 것을 기려 새로운 성모상을 만들어 중산리 관광휴양단지에 세워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산청군은 결과적으로 성모상의 천왕봉 복귀에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나마 원래의 성모상이 중산리 천왕사에서 보존되고 있는 것에 안도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성모석상에 대해 침묵하고 있던 함양군이 천왕봉 성모상 재현과 성모사당 복원을 추진하고 나서게 됨으로써 새로운 상황을 맞게 된 것입니다. 성모상에 대한 관심 환기는 물론, 산청군측의 대응 또한 궁굼해지는 군요. 함양군측에서 천왕봉에 성모상과 사당을 복원하면 천왕봉은 함양군 관할이란 인식이 더 강해질 수도 있기 때문지요.

너무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성모석상, 새 천년 들면서 둘로 늘어난 성모상이 이제 다시 셋으로 늘어나려고 합니다. 그것도 하나는 천왕봉 복귀를 추진한다는 군요. 성모상과 성모사가 천왕봉 원래의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워낙 말이 많은 성모상이다보니 천왕봉 복귀를 싸고 또다른 우여곡절을 빚게 되지는 않을는지 걱정되기도 하는군요.

천왕봉의 성모사와 성모석상은 어떠했던가?
그것은 옛 선인들의 지리산 기행록에도 잘 드러나 있지요. 성모석상과 성모사를 빼고는 지리산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금년 중추에 남쪽 경내의 농사 작황을 둘러보던 중 우뚝한 봉우리를 우러러보고 간절한 마음이 절실하였습니다. (중략) 그런데 병예(구름과 비를 맡은 신)가 심술을 부려 구름이 자욱합니다. 보름달을 보지 못할까 두려워 마음이 조급하고 답답합니다. 삼가 성모님께 바라건대, 이 술을 흠향하시고 신령스런 힘을 내리소서. (후략)"

조선 성종 3년(1472년) 함양군수로 재직하던 점필재 김종직이 천왕봉에 올라 성모(聖母)에게 고유(告由)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김종직 일행은 저녁 무렵 천왕봉에 올랐는데, 운무가 자욱하고 산천이 어둑어둑하여 중봉마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동행했던 두 스님 행공과 법종이 성모묘(聖母廟)에 들어가 날씨게 개게 해달라고 기원하였다는 군요.
김종직도 그들을 뒤따라 기도를 하는데, 자신의 두류산 기행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나는 갓을 쓰고 띠를 매고 손을 씻은 뒤 돌층계를 잡고 사당에 들어가 술과 과일을 차려놓고 성모에게 다음과 같이 고유하였다.'

김종직은 이 기행록에서 당시의 성모사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사당 건물은 세 칸뿐이었다. 나무판자로 지은 집으로서 못질이 매우 견고하였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바람에 날려가버리기 때문이다. 이른바 '성모'는 석상인데, 눈과 눈썹, 그리고 머리 부분에 모두 색칠을 해놓았다.'

성모석상과 성모사에 대한 얘기는 미로처럼 이어지는데, 지리산과 민중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