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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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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골은 중봉~하봉, 중봉~써리봉에 둘러싸인 첩첩산중의 골짜기로 유평계곡(일명 대원사계곡) 상단부에 자리한다.
워낙 높고 깊은 곳이어서 언제나 조용하고 깨끗한 골짜기이다. 이 적막한 골짜기를 뒤덮고 있는 원시수해(原始樹海) 사이로 청정계류가 흘러내린다.
아무리 서먹서먹한 남녀라도 조개골 오솔길을 함께 걸어가면 금세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 않고는 못 배겨내게 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조개골 원시수해는 삼림이 성장하기 좋은 이상적인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제(日帝) 때 바로 이웃한 장당골과 함께 일본 큐슈대학 등의 대학연습림으로 지정, 관리한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을 가린 그 원시수해가 역설적으로 갖가지 비극을 불러들이기도 했다.
해방 이후 조개골은 인민당 경남도당본부가 일시적으로 설치되는 등으로 빨치산과 군경간의 유혈참극이 간단없이 되풀이 됐다. 그 이후에는 아름드리 나무를 베내는 도벌꾼들이 설쳤고, 숯을 굽는 화전민들도 몰려들었다.

대학생들이 집단적으로 화전민 가옥들을 방화한 사건도 조개골에서 빚어진 어처구니없는 비극 가운데 하나이다.
조개골은 일제가 장당골과 함께 대학연습림으로 경제수종을 가꾸는 등 나름대로 산림경영을 해왔다. 해방 이후 장당골과 조개골의 이 대학연습림을 진주의 한 농과대학이 이어받았다.
대학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화전민들이 골머리였다. 그들은 아름드리 나무를 베내 숯을 굽거나 산림을 불태워 농지로 개간하고는 했기 때문이다. 대학으로서는 화전민들을 연습림에서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지난 1964년 10월8일과 9일 이틀 동안에 걸쳐 이 대학 학생 40여명은 자신들의 대학연습림 보호를 위해 장당골 화전민 가옥 9채와 바로 이웃한 조개골 화전민 가옥 7채를 불살라버렸다.
문제는 추위가 다른 어느 곳보다 빨리 찾아드는 깊은 골짜기의 화전민 삶터를 아무런 사전통보도 없이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방적으로 방화를 한데 있었다.
더구나 2명의 교수와 2명의 조교 인솔로 종합실습차 연습림을 찾았던 대학생들이 전무후무한 일방적인 방화를 한 것이기에 더 큰 충격과 파문을 낳았다.

대학생들은 연습림을 둘러보고 자연발생적으로 화전민 가옥 철거 문제를 거론했다.
"추위가 닥쳐오는데 집을 철거하면 우리는 어찌 하느냐"고 그들이 묵고 있던 집주인이 반발했다. 그래서인지 대학생들은 다음날부터 그저 평온하게 실습만 했다.
그런데 실습 4일 째인 8일 오전 9시 학생들은 갑자기 전체 가옥의 방화를 결의하고, 짚단에 불을 붙인 뒤 지붕 위로 던졌다.
학생들은 장당골의 집들을 불태운 뒤 조개골로 넘어와 같은 방법으로 화전민가들을 불태웠다.

당시 한 신문은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해발 630미터를 가리키는 지리산 중턱의 화전민 마을에는 벌써 찬서리 내린 지가 오래다.
지난 8일과 9일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장당골과 유평리 조개골 두 곳의 대학연습림 관내에서 지성인을 자부하는 대학생 40여명의 등산화 발부리에 짓밟혀 순식간에 보금자리를 불살라버린 16세대 81명의 화전민들은 수년 전 그들이 이곳을 찾아들던 때의 처량하던 신세로 되돌아갔다.
엄습하는 추위를 가누지 못한 어린 것들은 저희들끼리 부둥켜안고 어른들의 눈치만 살피기에 얼떨떨하고, 터만 남은 잿더미를 멍하니 보고 섰는 어른들의 얼굴에는 비애와 분노가 얽혔다….'

이 사건은 지리산의 화전민 문제를 행정당국에서 심각하게 검토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당시의 어려운 경제여건으로 고심하던 끝에 당국에서 겨우 내놓은 것이 '독가촌(獨家村)'이었다. 산자락 곳곳에 흩어져 있던 화전민들이 한 곳에 모여 살 수 있도록 임시피난민 수용소와 같은 일종의 연립형 주택들을 지은 것이다.
단층 슬라브 건물 한 지붕에 두 가족, 세 가족이 함께 살도록 방 한 간, 부엌 한 간씩을 만들어 주었다.
유평계곡의 유평리, 삼거리마을, 중땀, 새재마을이 바로 그렇게 생겨난 독가촌이었다.

보잘것없고 형편없는 이 독가촌은 지리산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1967년을 전후하여 만들어져 산속의 화전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독가촌은 화전민들을 철수시키는데 나름대로 기여한 셈이다.
하지만 이 불편하기 짝이없는 가옥들은 지난 1990년대 중반까지 주민들이 임의대로 손을 대지 못하게 하여 지리산의 '흉물 아닌 흉물'로 방치되기만 했다.
1990년대 후반기에 독가촌 가옥에 대한 당국의 행정규제가 겨우 풀려 증개축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지금은 이들 독가촌 가옥 대부분이 산뜻한 양옥으로 탈바꿈을 했다.

유평계곡 상단부에 자리한 새재마을과 그 안쪽의 깊고도 깊은 조개골은 지금은 아름다운 휴양지로, ‘연인 사이로 만들어주는’ 환상적인 오솔길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수십 년 전에서 불과 몇 해 전까지는 처절한 동족상잔의 비극의 현장이자 가난한 민초들이 질곡의 삶을 꾸려가던 곳이었다.
그렇다면 지난날의 ‘독가촌'에서 근년에 많은 돈을 들여 산뜻한 민박촌으로, 휴양촌으로 탈바꿈을 한 새재마을 등은 축복과 행복이 넘치고 있는 것일까...?

  • ?
    김용규 2008.01.14 16:53
    지리산과 관련된 아이러니한 이야기이군요. 제가 알기로는 유평계곡뿐 아니라 함양군과 산청군의 지리산 구석구석에서 숯을 굽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1962년도에 사찰경찰이었던 문영만이가 선녀굴에서 이은조를 사살하게 된 이면에는 지리산에서 숯을 굽어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필요 이상의 월권행위에 재미를 붙여 사냥겸 지리산을 오르다가 선녀굴에서 개가 죽자 이은조를 사살하게 된 동기이기도 했으며 다음해에 정순덕 생포, 이홍이 사살들의 사건이 발생햇지요. 산청군 오봉 방곡등에서도 무진장 벌목이 이루어졌으며 당시에 도로가 없었어도 유림 마천 지방도에서 휴천면 남호리 아래 강으로 임시 길을 내어 방곡까지 트럭이 가서 수없이 많은 벌목 나무를 싣고 오는 광경을 보면서 자랐었습니다. 가끔은 어둑한 날 산중에서 짚으로 포장을 한 숯을 지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참 많이 보았었습니다.

    당시에는 환경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산에 있는 것은 마구잡이로 이용해도 괜찮은 것으로 인식을 하지 않았나 여겨지는군요.
    1966년도에 지리산에 탄피를 줏으로 갔을때 불이 난 산중턱 곳곳(지금의 공개바위 뒷산)에 벌목을 하고 난 이후 소나무가 썪고 관솔덩이만 남은 것이 수없이 나뒹글고 있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으니까요.
  • ?
    東窓 2008.01.15 15:35
    지금은 듣기에 생소한 단어이지만
    불과 3~40년 전에는 바로 우리 이웃들이었던 도벌꾼과 화전민..

    수천년에 걸쳐 만들어진 소중한 자연유산이
    그들의 삶의 방편으로서 너무 쉽게 파괴가 되었기에 안타깝지만
    그 분들 처지에서는 먹고살아야 하는 절박함이 우선이었겠지요?

    최화수선생님처럼 지리산을 사랑하시는 분들이나 단체가 많고
    탐방객들 역시 자연보호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아름답게 보호되리라 믿습니다.
  • ?
    오 해 봉 2008.01.15 15:47
    조개골을 여러번 다녔어도 진주 그대학의 학생들이
    화전민들에게 그런아품을 안겨준걸 몰랐습니다,
    2002년6월 월드컵기간에 법계사 근처에서 진주 그대학
    학생들과 교수가 빨치산 장기수3명을 데리고와서 현장답사운운
    하면서 토론하기에 항의하면서 그대학 학생들과 다툰일이 있습니다,
    교수들에게 당신들 월급을 북한김정일이 주느냐고 했더니
    대답을 못하드군요,
    대학생들이 폭력을 행사할려고해서 솔차니 난감하드군요,
    속터지니 이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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