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신선(神仙)'의 족적(5)

by 최화수 posted Apr 2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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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 사진은 자연암석에 '喚鶴臺'라고 음각해 놓은 글씨로 환학대로 불리는 자연암석  남쪽 왼편 상단부에 있다. 아래 사진은 위에서 내려다 본 환학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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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최치원이 신선이 되어 가야산과 지리산을 오가며 영생(永生)하고 있다.”
이런 말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것이 어찌 사실이겠는가. 하지만 그이의 발길이 닿은 곳마다 그이의 이름이 새겨졌거나 특별한 사연이 전해오고 있는 것으로 보면 어떤 의미에서든 ‘영생’하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을 듯하다.

지리산 북쪽 함양읍에 가면 최치원이 조성했다는 숲 ‘상림(上林)’이 지금까지 주민들의 휴식처로 각광을 받고 있다.
지리산 동쪽 입구 단속사지(斷俗寺址) 들머리에는 그이가 남겼다는 특이한 필체의 ‘廣齊嵒門(광제암문)’이란 글자가 큰 바위에 새겨져 있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법계사 바로 옆에 문창대(文昌臺)가 있다. 최치원 선생이 책을 읽었다는 문창대는 원래 법계사 남쪽에 돌출한 봉우리로 알려졌으나, 지난 1970년대 법계사 옆에 ‘孤雲崔先生杖履之所(고운최선생장리지소), 최치원이 지팡이와 짚신을 놓은 곳’이라는 글씨가 발견되어 바로잡았다.
문창대 위치를 바로잡은 것은 로타리산장 건립 위치를 현재의 장소로 한 것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여기에는 진주산악회와 로타리산장 건립에 심혈을 쏟은 조재영씨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

지리산 동쪽 들머리인 시천(덕산)에서 쌍계사로 걸어서 오는 길에 고운동(孤雲洞)이 자리한다. 지금 지리산 양수발전수 상부 댐이 자리한 곳으로 그 이전부터 아름다운 산상 마을이었다. 이 마을 이름이 ‘고운동’인 것은 최치원이 머물다 간 것을 기려 그이의 호(號)를 따서 명명한 것이다. 부산 해운대를 고운의 자(字) ‘해운’을 따서 명명한 것이나 같다.

지리산에서 최치원이 가장 즐겨 머문 곳은 화개동천인 듯하다.
쌍계사에서 불일폭포로 올라가는 길에는 그이가 청학을 불러 노닐었다는 환학대(喚鶴臺)가 있다. 불일평전 오두막을 지키던 변규화 옹이 지난 1980년대 이 자연암석이 예사스럽지 않다고 판단, 자세하게 살피다가 ‘喚鶴臺’라고 음각해 놓은 글씨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 신비로운 것이 있으니, 그것은 고운 최치원이 마치 암굴과 같은 바위 속에서 기거하면서 책을 읽었다는 ‘옥천대(玉泉臺)’이다.
옥천대는 참으로 절묘한 곳에 신비롭게 자리한다.
불일협곡 까마득히 깊고 깊은 곳이 바로 그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