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신선(神仙)'의 족적(4)

by 최화수 posted Apr 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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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없는 고운(孤雲) 최치원 기념관이 중국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에 세워졌다. 지난해 10월 총비용 52억원을 들여 4000여평의 부지에 이 기념관을 완공했는데, 중국 내 유일한 외국인 기념관이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에도 없는 최치원 기념관이 중국 땅에 세워졌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868년 최치원 선생의 부친은 12살 어린 아들을 국비가 아닌 사비로 당나라에 유학을 보낸다. 그의 아버지는 “10년 공부하여 진사에 급제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라 하지 말라. 나도 아들을 두었다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계원필경’ 서문)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18세에 과거에 급제했고, 이후 중국 관리로 근무하며 능력을 인정받아 도통순관(都統巡官)에 올랐다. 그는 특히 879년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무력이 아닌 문장으로 난을 제압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최치원이 지리산, 특히 화개동천을 사랑했던 것은 ‘화개동시(花開洞詩)’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오늘의 화개동천 시조시인 김필곤은 이렇게 읊고 있다.
‘고운(孤雲)도 몸을 숨긴
두류산 화개동천
불심은 따로 없어라
죽로차 그 향기‘

화개동에는 지은이도 모르는 시 한 수가 전해오고 있다.
‘이 절에 놀던 적이 이미 스무 해
예보던 달을 누(樓)에 비치네.
고운 선생 귀 씻던 화개동 물은
천년을 쉬지 않고 흘러만 간다’

최치원 선생이 세상의 혼탁한 소리를 들은 귀를 씻었다는 화개동천 세이암 조금 아래편 맞은 쪽에는 전설어린 푸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최치원 선생이 귀를 씻고 신선이 되어 지리산으로 들어가면서 거꾸로 꽂아두었던 지팡이에서 새싹이 자라 거대한 나무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의 얘기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더 많다.  
(사진은 최치원 선생이 거꾸로 꽂아둔 지팡이가 싹이 나서 거대한 나무로 성장했다는 전설이 있는 푸조나무와 설명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