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신선(神仙)'의 족적(3)

by 최화수 posted Apr 0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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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쪽은 최치원이 청학동(靑鶴洞)과 유사한 개념의 '三神洞'이란 글자를 새겨놓은 자연석. 마모 현상이 심해서 사진에서는 '三'자만 희미하게 보인다.
아래 사진은 최치원이 귀를 씻었다는 '세이암(洗耳岩)'. 이 바위에는 후세 사람이 쓴 것으로 보이는 '洗耳岩' 각자가 자연석 바닥과 건너편 입석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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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나라 화개동은
병 속의 별천지라
신선이 옥베개를 밀치니
순식간에 천 년이 되었네.
일만 골짜기엔 우레 소리 울리고
천 봉우리엔 비 맞은 초목 새로워
산승은 세월을 잊고
나뭇잎으로 봄을 기억하네.’

지리산 화개동천을 특별히 사랑했던 고운 최치원 선생은 화개동의 아름다운 4계절을 노래한 ‘화개동 시’를 남겼다.
‘화개동은 병 속의 별천지라 신선이 옥베개를 밀치니 순식간에 천 년이 되었네’
…이렇게 시작되는 시에서 우리는 그이가 얼마나 화개동천을 사랑했는지 엿보고도 남음이 있다.  

조선 선조 24년(1591년) 산사를 찾아가던 한 노승이 지리산 깊은 골짜기를 헤매다가 바위틈에서 여러 권의 책을 발견했다.
시 16수 등이 씌어진 이 책은 구례 군수 민대륜(閔大倫)이 입수했는데, 민 군수는 조선 중기 명신 이지봉(李芝峯, 수광)에게 책 감정을 의뢰했다.
이지봉은 고운 최치원 특유의 정교한 필적이 담겨 있는 것을 확인하고 크게 놀랐다. 책에 담긴 글은 천하의 대문장가 최치원의 것이 분명했고, 시 또한 그의 작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지붕은 그의 저서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이 시를 옮겨 실었다. 그 가운데 8수가 지금까지 전해온다.
이 시에서 화개동천의 가을을 찬미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비밀스런 뜻은 말할 것 있나?
강 맑으니 달그림자 두루 미친다.
긴 바람은 앞산에 불고
붉은 단풍은 가을 산을 비우네.’

쌍계사에서 화개천을 따라 거슬러 오르면 10 리 채 못 미처 신흥마을에 닿는다.
지난날 신흥사가 지리했던 곳인데, 조선시대에 이 절의 스님이 신선이 되어 말을 타고 나타난 최치원을 만난 증언을 한 것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이 신흥동은 일찍이 최치원이 청학동(靑鶴洞)과 그 뜻이 유사한 ‘삼신동(三神洞)’으로 명명한 곳으로 유명하다.
신흥동에서 칠불암으로 오르는 도로가 열리는 곳에 자연석 바위 하나가 외롭게 서 있다. 이 바위에 최치원이 새긴 ‘三神洞’ 각자(刻字)가 지금까지 전해온다. 다만 1000여 년의 세월이 흘러오는 동안 마모현상이 심해 가까이서 측면으로 보지 않으면 판독이 어렵다.

삼신동 화개천 바닥에는 최치원이 귀를 씻었다는 세이암(洗耳岩)과 그 각자가 둘이나 있다. 그이는 신라 말기의 타락한 권력과 세상사를 등지고 이곳에 들면서 혼탁한 세상에서 들었던 더러운 말들을 잊기 위해 귀를 씻었다고 한다.
또는 왕이 사람을 보내 국정에 참여할 것을 종용하니까 “나는 안 들은 것으로 하겠다”며 귀를 씻었다는 설도 있다.
여기서도 최치원의 고고한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