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골에 왜 조개가 없나요?"

by 최화수 posted Feb 0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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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에 붕어가 없다”거나 “고시원에는 고시생이 없다”는 말들을 한다. 우리 사회 현상의 한 단면을 희화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이런 식의 우스개 말을 지리산에서도 듣게 된다. “조개골에 조개가 없다”거나 “토끼봉에 토끼가 없다”는 말 따위가 그러하다.
그런데 다른 이름은 두고라도 골짜기 이름에 왜 강이나 바다에 서식하는 패류인 ‘조개’가 붙었을까? 중봉에서 새재마을 쪽으로 깊숙이 흘러내린 ‘조개골’은 그 이름부터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하겠다.    

필자의 졸저 <지리산 나의 사랑과 고뇌>에 실린 글 가운데는 1991년 4월27일 그룹산행으로 새재~쑥밭재~하봉~치밭목산장~조개골~새재마을로 한바퀴 돌아온 산행기가 실려 있다. 그 글에는 우리 구룹산행 팀이 치밭목산장에서 민병태님의 도움으로 조개골로 내려가는 오솔길로 찾아드는 대목의 얘기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민병태님은 조개골로 찾아드는 지름길을 가르쳐 주느라 우리 일행보다 앞장서 산장을 나섰다. 우리들은 산장에서 하봉 쪽으로 가는 지름길을 10분가량 되돌아간 뒤, 길도 아닌 숲 속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길이 아닌 듯했지만, 그것은 길을 숨겨두기 위한 '위장'이란 사실을 곧 알게 됐다. 그곳에서부터 부드럽고 확실한 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민병태님은 그 호젓한 오솔길을 잠시 벗어나 우리 일행을 숲 속으로 이끌고 갔다.
아, 거기에는 참으로 놀랍고도 신비한 큰 수석(壽石)이 지리산의 비밀처럼 몰래 자리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바위도 큰 돌도 없는, 그저 호젓한 삼림과 부드러운 흙의 풀밭일뿐이었다. 그런데도 기기묘묘한 형상의 수석들이 별천지를 이루고 있었다.
주변의 부드러운 흙, 풀밭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자연의 불가사의였다. 마치 조물주가 지나가다 '장난’을 해놓은 것처럼 생각되었다...]

우리들은 지리산 산길을 한번 지나가면 "갔노라, 보았노라" 하고 그곳의 모든 것을 죄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말하지는 않는가?
민병태님의 안내로 만나본, 숲 속에 몸을 감추고 있던 천연 수석의 그 절묘한 신비를 한번이라도 보게 된다면 그 생각의 잘못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지리산의 깊고도 넓은 자연세계의 신비에 말문을 잃지 않을 수 없다. 자연세계의 신비로움, 그것은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이나 그 어떤 상상력으로라도 제대로 헤아릴 수조차 없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조개골 루트를 걷는 동안 "이름이 왜 조개골이냐?”거나, “조개골에 왜 조개가 없느냐?"는 질문을 곧잘 받고는 한다.  
지리산에서도 가장 높고 깊은 계곡에 패류(貝類)인 조개가 살 까닭이 없다. 그런데 왜 '조개골'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이런 의문을 갖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다.
사실 어떤 사물이든 그 이름의 유래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름이 모든 의문을 풀어주는 열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개골의 이름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가장 설득력이 있는 주장으로는 사찰의 이름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6.25 이전에 이 골짜기 입구 동쪽 양지쪽에 '조계사'가 있어 '조계골'로 불렸는데, 그것이 슬그머니 '조개골'로 바뀌어졌다는 것이다.
'뱀사골'이란 이름도 '배암사'란 절이 있었던 데서 생겨났는데, 그와 같다고 보면 되겠다.

전혀 다른 주장도 있다.
"조개골에 분명히 조개가 있었다. 그래서 그 이름이 조개골이다."
지리산의 달인(達人) 성락건님은 "조개골에서 조개 화석(化石)이 발견됐다. 그 옛날에는 해변이었는데, 침식융기 작용에 의해 산으로 바뀌어진 것이다. 히말라야 고산준봉에서도 그런 화석들이 발견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치밭목산장 민병태님도 이 의견에 동조했다.

치밭목산장 뒤편의 거대한 수석세계가 웅변하듯이 지리산의 자연이 지니고 있는 그 오묘한 신비의 세계를 우리가 어찌 다 꿰뚫어볼 수가 있겠는가?
다만 짐작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조개 화석이 발견된 때문에 조개골이냐? 조계사란 절이 있었기 때문에 조개골이냐?
물론 그 어느 쪽도 의견이나 주장(說)으로 보면 된다.
아니면 한 쪽 주장을 맞는 것으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