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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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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레저 붐은 등산객들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국립공원 1호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사시사철 줄을 지었던 것은 물론이다.
어디 등산객뿐이겠는가. 유산객 관광객 휴양객 , 그리고 각종 단체의 수련회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으로 몰려들었다.
한 해 수백만명의 인파가 찾아들면서 지리산은 엄청난 변혁을 치르게 된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도로 확포장과 산간마을의 민박촌 탈바꿈이라고 하겠다.

지리산은 설악산 등과는 달리 도로 확장이나 집단시설지구 조성이 늦었다. 한국전쟁을 전후한 빨치산의 투쟁 무대였던 데 따른 후유증이 컸고, 1970년대까지 가난을 떨쳐내지 못한 궁벽한 촌락으로 존재했던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지리산 마을들은 화전민을 강제 이주시킨 독가촌(獨家村)이 곳곳에 산재했고, 산자락의 기존마을들도 '땅집' 비슷한 주택들이 대부분을 차지했었다.
지붕이 땅에 내려앉은 듯한 땅집들이었는데, 그나마도 주인이 없는, 빈집으로 버려져 있는 것들도 적지 않았다.

백무동, 반선, 달궁, 심원, 와운, 추성, 삼정, 유평, 거림, 중산리, 곡점, 의신, 신흥, 범왕, 직전마을과 같은 곳들은 지금 피서와 휴양지로 이름나 있다. 하지만 이들 마을들도 1980년대 중반까지는 옛 산간마을의 초라한 모습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까지는 도로 사정이 아주 나빠 비포장에 왕복 1차선이 고작이었다. 철쭉제가 열릴 때의 곡점~내대리나 단풍철의 외곡~직전부락 등지에선 한꺼번에 몰려든 관광버스들이 교행(交行)을 하지 못해 큰 홍역을 치르고는 했다.

그런데 지리산 도로 개설이나 확장, 포장 공사는 성삼재와 정령치 종단도로 개설이 상징하듯이 급속히 이루어졌다. 국민의 자동차 보유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지리산에는 인파 못지않게 자동차의 홍수 사태가 빚어졌다.
인파(人波)와 차파(車波)의 물결은 자연히 지리산 산간마을들을 민박촌으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산중의 주요 등산구 마을이나 유명 계곡을 가까이 두고 있는 마을들은 가가호호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민박' 간판을 내걸기 시작한 것이다.

지리산에는 근래의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모텔들이 있기 전까지는 여관 등의 숙박업소가 빈약하고 숫자도 적었다. 산간마을이 유산객 등이 많이 몰려들자 민박촌으로 바뀐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문제는 땅집과 같은 초라하고 볼품없는 가옥 구조에 있었다. 농사 짓는 시골집보다 더 비좁은 집에 도회지로부터 몰려온 등산객 유산객들을 수용하는 데 문제가 따랐다.
유산객들은 샤워 시설조차 없는 것을 알고 아예 인근 읍이나 시로 숙소를 옮겨가는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 들면서 지리산 민박촌의 집들은 현대식 양옥으로 탈바꿈하는 일대 변혁의 물결이 일어났다. 지리산 가옥들의 '현대화' 바람은 바람직한 것이기도 했다.
지리산 주민들은 집을 반반하게 잘 지어놓으면 '민박손님'이 넘쳐날 것으로 믿었다. 그렇게 되면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넉넉하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낡고 초라한 땅집을 헐고 여러 대의 차량을 댈 수 있는 주차장에 음식점까지 달린 대형 민박집들이 속속 들어섰다. 가난한 삶의 땀이 밴 산간마을들이 새롭고 산뜻한 모습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새 건물은 누가 그저 지어주는 것이 아니다.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의 돈이 들어갔다. 자기 돈으로 자기 집을 고쳐 지었다면 무슨 걱정이 있으랴.
지리산 토착민에게는 그 많은 돈을 수중에 갖고 있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농협이나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새로운 '민박집'을 짓고 음식점도 내게 됐다.
그런 이후에는 어떻게 됐는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IMF 한파가 닥치는 등으로 뜻밖의 시련을 안게 됐다. 그 많던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는가 하면, 손님들의 돈 씀씀이도 지난날보다 오히려 못했다.

기업이든 지리산 민박집이든 무리한 투자에 따른 휴유증을 앓게 되는 것은 다를 바가 없었다. 빚을 내어 시설투자를 했지만, 가득률이 형편없다보니 매달 내는 이자 감당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출받을 때 연대보증을 선 이들도 고충을 겪게 되었다. 부작용으로 빚어지는 후유증은 또다른 후유증을 낳게 된다.  
지리산 산간마을 주민 가운데는 가옥의 현대화, 곧 겉모습의 화려한 변신과는 달리 안으로는 엄청난 고통과 갈등을 치통(齒痛)마냥 앓는 이가 적지 않았다.
(필자와 친근하게 지낸 주민 가운데 그 후유증을 견뎌내지 못해 자살한 이도 있다.)

안타까운 일은 또 있다. 지리산 산간마을 주민 다수는 번드레한 음식점과 민박집으로 바뀐 뒤 농사며 산나물이나 산열매 채취와 같은 일을 손에서 놓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또 어떻게 되었는가? 지리산 사람들 특유의 넉넉한 인심도 점차 퇴색되고, 지리산 속의 다양한 경험들을 들려주는 일도 줄어 들었다. 지리산 등산 안내를 기꺼이 해주는 일도 점점 볼 수 없게 됐다.
지리산 사람들에게 점차 '탈(脫)지리산적 생활과 생각'이 지배하기 시작한 것일까... 지리산이 좋아 지리산을 찾는 이들에게 이래저래 아쉬움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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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털보 2008.01.23 14:43
    글쎄...
    지리산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의 생각과 살고 있는 사람의 차이 일겁니다. 그러고 여기 사람들이 변한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이 변한거지요.
    진심으로 다가간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것이 없을 겁니다.
    단지 세월에 겉은 조금씩 변해 갔겠지요.

    현실적인 글에 공감을 느끼지만 저의 마음을 한번 비처 봤습니다.
    지리산에서... 김문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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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화수 2008.01.23 16:15
    "지리산 사람들이 변한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이 변한 것'이라는 털보님 말씀... 깊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래요, 정말 그럴 것 같기도 합니다.
    털보님 말씀에 많은 생각들을 다시 해보게 됩니다.
    좋은 지적과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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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규 2008.01.24 22:27
    옛날의 소박했던 분위기는 조금 약해졌지요. 지리산 구석구석까지 현대화된 문화가 스며들었고 지리산 아래 사람들도 자동차, 노래방, 인터넷 모든것을 갖춰 놓고 살고 있으니 옛날의 오지 마을의 분위기는 거의 없어졌다고 봐야 할것입니다. 지리산 아래 토착민들은 연세 많은 분들이 대부분이고 절은 사람들은 90% 이상이 외지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이면에는 지리산 아래에서는 경제활동이 미약하니 그럴수 밖에요.
    대신 요즘에는 지리산 아래로 도시에서 귀농을 하신분들이 많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더군요.
    지리산 중턱에 한두채씩 머물러 있던 독가촌들은 정부의 이주 정책으로 아래 마을로 내려 왔고 그 자리에는 집터의 흔적만 있을 뿐 참 고요했습니다. 울창한 숲들이 대신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지리산 동부자락에요.

    그래도 지리산 아래에는 옛 정취가 다른곳보다는 많이 남아 있고 짙은 향수를 느껴 보기에는 최적의 곳이 아닌가 합니다.
    개발을 하면 할수록 옛것의 분위기는 사라져 버리는게 자연의 섭리이겠지요.

    가끔은 민속촌처럼 지리산 아래 한 마을정도 지정하여 완전히 옛날 모양으로 꾸며 놓아 보는것도 이상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청학동에 가 보아도 이상적인 지리산 마을의 분위기가 사라진 느낌이었습니다.
    디딜방아, 절구통, 물레방아, 초가집, 돌담장, 소로 밭을 가는 모습, 화로불 분위기등 지리산과 민속적인 것을 재현해 놓아 보는것도 멋진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 여겨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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