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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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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평전에서 불일폭포로 찾아드는 300미터의 길은 지난날과 달리 넓고 안전하게 잘 닦여 있다. 절벽의 날카로운 바위를 쪼아내 길을 넓혔고, 돌계단이며 쇠난간에 쇠사슬까지 이어 놓았다.
이 안전한 길을 따라가면서도 발 아래를 내려다보면 백길 낭떠러지가 현기증을 일으킨다. 아찔한 느낌 속에서도 백학봉과 청학봉 사이 깊은 협곡의 신묘한 자연세계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찌기 김일손은 이 협곡을 내려다보며 "신선이 살 만한 곳으로 청학동이 분명한 듯하나 지형이 험난하여 원숭이가 아니고는 찾아들 수가 없다"며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천여년 전 신라의 석학 최치원은 이 깊은 협곡으로 들어가 천연 암굴에 기거하면서 '공부'를 한 끝에 신선이 되어 영생의 천수를 누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바로 최치원이 공부했다는 천연 암굴이 '옥천대(玉泉臺)'이다.

'옥천대'는 불일폭포로 가는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불일폭포 아래 협곡으로 내려가서 계곡을 따라 500미터 가량 더 돌아가야 만날 수 있다. 누구나 그곳에 가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옥천대로 가는 것 자체가 아주 힘들고 위험하다. 무엇보다 길이 없어 그곳은 아주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나 같다.
그래서 불일폭포를 찾은 그 수많은 사람들도 대부분이 '옥천대'란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

변규화님이 그 '옥천대'로 필자를 안내했다. 그는 자신의 집 뜨락에서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슬리퍼를 신고 갈까, 운동화로 갈아신을까" 하며 잠시 망설이더니 운동화로 갈아신었다.
'슬리퍼를 신고도 갈 수 있는 길이라면...' 하고 필자는 별로 어려울 게 없을 것으로 안심했다.
그런데 변규화님은 길이 아닌, 거의 수직의 낭떠러지를 성큼성큼 걸어서 내려가는 게 아닌가. 그 모양이 사람이 아니라 마치 신선만 같았다.

그가 바람처럼 아득한 협곡으로 내려서는 것을 지켜보며 필자는 당혹감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지리산의 구석구석을 나름대로 누비고 다녔던 필자가 생각지도 못했던 진퇴양난에 직면했다.
그의 뒤를 따라 절벽으로 내려서긴 하면서도, 자칫하면 까마득한 석벽 아래로 곤두박질칠 것 같은 두려움에 작은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그 자리에 아주 얼어붙은 듯이 서있고는 하였다.

겨우 협곡에 내려서고 보니 번잡한 세상과 단절된 별세계가 펼쳐져 있다. 이 협곡 바닥에서야 비로소 불일폭포 아래 또다른 폭포가 걸려 있는 것을 알았다.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폭포가 20미터 높이로 쏟아져 내리고, 그 아래 '겹용소'(옛 문헌에는 '학연(鶴淵)'으로 기록)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의 큰 용소 바깥에 또 하나의 용소가 겹으로 이뤄져 있어 사람의 접근을 어렵게 하는, 참으로 신통한 모양의 '겹용소'였다.

"저쪽 안쪽 용소 깊은 곳에 여기서 가야산까지 통하는 터널이 있고, 그게 최치원선생이 신선이 되어 두 산을 오가는 길이라고 전해온다. 내가 몇 차례나 그 터널을 찾아보려고 시도했지만, 워낙 깊고 안쪽 용소로의 접근이 어려워 실패했다."
변규화님의 말을 들을수록 신비로움에 빨려들었다.
저 속에 신선세계가 있다는 것인가? 이곳에서 '三神洞(삼신동)'이라 새겨진 돌이 발견됐다고도 한다.

원시 상태의 바위들을 타고 계곡을 따라 한동안 내려갔다. 사방에는 오직 바위덩이들 뿐인데, 한 곳에 이르니 키가 큰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물보라가 시원하게 일고 있어 에어컨 바람같은 시원함이 느껴졌다. 그곳의 집채같은 큰 바위가 바로 '옥천대'라고 했다.
놀라운 것은 그 바위 아래에 있는 천연암굴이었다. 아파트 거실 크기의 넓직한 공간이 있고, 그와 별도로 그 안쪽에 또 하나의 서재와 같은 자리(방)가 있었다.

"최치원선생이 이 서재에서 공부할 때는 책 하나 크기로 자연광선이 비춰졌다고 한다. 그가 그 빛을 받아서 공부를 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오랜 세월이 흘러 침식작용 등으로 그 빛이 흘러들지 않는다."
변규화님의 설명이었다. 사실의 진위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천년 전의 한 지성인이 이 협곡에서 홀로 추구했던 '깨달음의 길' 그 자취가 불일폭포의 신선한 바람속에 담겨 가슴 속까지 적셔주는 듯했다.

*부기(附記)
이상의 내용은 필자의 졸저 <지리산 365일> 제3권에 실려 있는 '옥천대'를 요약해서 옮긴 것이다. 필자는 지난 1990년 변규화님의 안내로 이 '옥천대'를 처음으로 찾아보고 큰 감흥을 느꼈다.

그로부터 10년이 더 흐른 2001년 봄 필자는 변규화님을 만나 다시 한번 '옥천대'를 안내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때는 수십명의 단체 인원을 데리고 갔었다. '떼거리'여서 쉽지 않을 듯했는데 그이는 의외로 흔쾌하게 응낙해주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씀이-
"나도 그때 최선생과 함께 가본 뒤로는 한번도 가지 않았어요. 10여년 만의 '옥천대' 방문이로군요."

[이 글은 지난 2001년 3월29일 'Daum 칼럼' <지리산 통신>에 실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옥천대를 안내한 그 변규화님도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안 계시니...]


  • ?
    오 해 봉 2008.01.09 22:11
    그렇게 정정하시든 불일평전 변규화님도
    이제는 옛날사람이 되었군요,
    기회가 닿으면 여산선생님을 따라서 옥천대에
    가보고싶은 욕심이 생기네요,
    올해는 지리산 어디서든 꼭 만나기로 하지요,
    올봄 ofof.net 모임에 꼭 오시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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