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학(靑鶴)이 금세 날아오를 듯(1)

by 최화수 posted Jun 1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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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뜻한 모습으로 잘 지어놓은 청학동 도인촌의 '천제당(天祭堂)'(사진 위)과 지붕 모습이 인상적인 마을의 한 가옥(사진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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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8일, 삼신산이 흘러내리는 해발 850m의 경남 하동군 청암면 학동 마을.
이른바 ‘청학동 도인촌’을 찾았다.
마을 진입도로는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고, 여기저기 세워놓은 장승이며 솟대 등이 ‘도인촌(道人村)’다운 분위기를 살려주고 있었다.

진입도로는 물론, 마을 둘레를 짙푸른 녹음이 겹겹이 감싸고 있었다.
공기가 어찌나 맑고 청정한지 금세 어디에선가 청학(靑鶴)이 날아오를 것처럼 생각되었다.
거기다 적막감 또한 첩첩이 쌓여 있는 듯했다.
어쩌면 이렇게 마을 전체가 잠자는 듯이 고요할까…!

월요일인 때문일까, 외지에서 찾아든 관광객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주민도 할머니 한 분만 잠시 집밖으로 나섰다가 금세 또 모습을 감추었다.
그렇지만 강아지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들면서 나타나 필자를 졸졸 따라다녔다. 낯선 사람을 유별나게 반기는 귀여운 모습의 강아지였다.

청학동 마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한식 건물의 천제당(天祭堂)이 근엄하게 자리하고 있다. ‘유불선합일경정유도(儒佛仙合一更正儒道)’란 독특한 종교를 신봉하는 마을 사람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곳이다.
천제당 바로 아래편 한쪽에 ‘청학동 전통서당’도 산뜻하게 자리하고 있다.

천제당도 전통서당도 돈을 많이 들여 품격이 돋보이게 새로 지었으니, 지난날의 질박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원래의 서당은 사립문이 굳게 닫혀 있고,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마을 주민들의 가옥 가운데는 폐가처럼 쓸쓸하게 보이는 것도 있었다.

청학동 도인촌이 왜 이렇게 조용할까?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인 1989년 가을 일부 신문에 ‘청학동 폐쇄설’이란 기사가 실렸었다.
매년 수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지리산 청학동이 외지인들의 등쌀을 견디다 못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을 폐쇄 선언’을 했다는 것이었다.

‘현대문명을 외면하고 자연 속에서 옛 풍습과 생활을 고집하며 사는 지리산의 도인촌 청학동 마을 사람들이 수년간 관광객의 등쌀에 견디다 못해 “1990년 새해부터 청학동 출입을 봉쇄한다”는 자구 선언을 했다. …’
한 일간지에 보도된 이 기사를 연합통신이 발췌보도하자 이를 여러 일간지에서 그대로 받아 실었다.

당시 국제신문에 <지리산 365일>을 연재하고 있던 필자는 이 뉴스를 접하고 크게 놀랐다.
마을 주민 가운데는 필자가 잘 알고 지내는 이들이 있었다.
급히 상황을 알아보니, 차량의 마을 진입을 통제한다는 것이 와전되어 빚어진 것이었다.
필자는 ‘청학동 폐쇄설’이 오보(誤報)임을 <지리산 365일>에 밝혔었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세월이다.
그 사이 청학동도 물론 많이 변했다.
새로 지은 천제당과 청학동 전통서당이 변화를 상징한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6월의 녹음처럼 두터운 ‘적막감’이 더 큰 변화로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