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길, 지리산 가는 길(7)

by 최화수 posted Apr 0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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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 정상 300m 아래에 있는 케이블카 승강장(사진 위)과 이 승강장에서 산 정상과 전망대로 이어지는 나무계단(데크) 시설물의 어지러운 모습(사진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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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구름이 산골짜기에 자욱하여 푸른 바다 물결은 포구를 이루었고, 흰 파도가 눈을 몰아내니 산들은 섬이 되어 점점이 깔린 듯하다. 돌담에 몸을 기대고 위아래를 바라보니 정신도 마음도 한가지로 막막하여 몸이 태초의 공간에 안긴 채 하늘과 땅과 더불어 흘러가는 듯했다.’
1489년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김일손(金馹孫)이 성모사(聖母祠)에서 일박하다 밤중에 날이 개이자 밖으로 나와 그 감흥을 이렇게 읊었다.

천왕봉에 세워져 있는 현재의 표석은 1982년 초여름에 세웠다. 높이 1.5m의 자연석을 옮겨 와 세운 이 표지석의 전면은 ‘지리산 천왕봉 1915m’란 글자가, 뒷면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란 글을 새겨놓았다. 
 
표지석을 세우는 바로 그날 그 시각에 필자는 우연히 천왕봉에 올라 현장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니, 사실은 그 앞날 토요일 밤 전세버스를 대절하여 산악회 일행40여 명과 함께 중산리에 도착했었다. 그런데 이 어찌 된 일이랴, 중산리 일원에 경남도 공무원들이 단체로 들이닥쳐 잘 집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우리 일행은 덕산의 원리까지 밀려나와 민박을 했겠는가.

일요일 아침 천왕봉에 오를 때도 등산로에 공무원 행렬이 뒤덮여 있어 정상까지 오르는데 애를 먹었다. 그렇게 천왕봉에 오른 우리 일행의 머리 위에 요란한 굉음을 토해내며 헬리콥터가 접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경남 도백과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 그 헬기를 타고 천왕봉에 발길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다른 공무원들은 1박2일의 일정으로 천왕봉에 올랐는데, 특정인은 헬기로 순식간에 영봉에 내려선 것.

천왕봉 표지석을 세우는 문제로 그 날과 그 앞날 중산리 일대와 등산로에서 수많은 공무원들이 법석을 떨었다. 어쨌거나 그날 우연히 천왕봉을 찾았던 필자는 헬기를 타고 천왕봉에 내려서는 특별한 사람들 때문에 기분을 망쳤다. 아니 그들 스스로도 헬기를 타고 내렸으니 천왕봉을 찾은 진정한 보람을 어찌 제대로 느꼈을까 싶다.

천왕봉에 헬기는 아니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사람들이 오르내릴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최근 환경부의 기준 완화로 지리산과 설악산 등의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가 사실상 허용이 됐다는 보도다. 환경부는 국립공원 탐방서비스 제고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연보존지구 내 로프웨이(케이블카) 설치거리를 2킬로미터에서 5킬로미터로 완화하는 내용의 제도 개선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이 개선 방침이 발표되자마자 구례군은 지리산 온천랜드~성삼재 케이블카 설치 추진위원회를 발족했고, 전북도와 남원시도 고기리 삼거리~정령치 4킬로미터 구간에 50인승 케이블카 설치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산청군도 중산리~장터목 노선을 추진하고 있고, 함양군도 산청군과 케이블카 설치 경합을 벌이고 있다.

케이블카 설치에 따른 환경파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케이블카 설치가 오히려 자연환경보호에 도움이 된다는 일부의 주장도 있다. 과연 그럴까? 통영의 미륵산 케이블카를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케이블카만 운행할 수 없는 노릇이다 보니 산 위 승강장 주변에 상점이며 식당, 전망대 등의 부대시설물 설치를 했다. 자연 훼손 없는 시설물 설치가 어찌 가능하겠는가.

그것도 그렇지만, 남한 육지에서 가장 높은 지리산 천왕봉에 케이블카로 사람을 실어나르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우리 민족의 오랜 세월에 걸쳐 한결같이 숭앙해온 신성한 영봉을 사람들의 발길로 함부로 어지럽혀서야 되겠는가. 아니, 지리산 천왕봉은 멀고 먼 길을 돌아 고생고생 땀을 흘리며 찾는 그런 영봉으로 아득하게 자리하는 것이 마땅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