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길, 지리산 가는 길(4)

by 최화수 posted Feb 14, 200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사람도 다니지 말라며 출입금지 팻말을 세워놓은 지리산 견성골(사진 위), 그렇지만 그 팻말을 지나 한참 더 오른 높은 곳까지 차량이 치고 올라 있다(사진 아래).  (지난해인 2008년 초파일 때의 광경이다).  사람도 출입이 안 되는 곳에 차량은 버젓이 오를 수 있는 묘한 현실(?)에서 '지리산의 오늘'을 상징적으로 엿볼 수 있다고나 할까.
.........................................................................................................
1955년 부산에서 15박16일의 일정으로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온 산악인 성산(成山) 씨.
그이는 1957년 6월23일부터 7월3일에 걸쳐 천왕봉을 두 번째로 등정했다. 당시에는 부산에서 출발하여 천왕봉 등산구 중산리에 도착하는 데만 꼬박 사흘이 걸렸다. 성산 씨의 두 번째 천왕봉 등정기에서 당시의 장비와 휴대품 면면을 엿볼 수 있다.

‘쌀 여섯 되, 미숫가루 두 되, 군용텐트 시트 겸 판초, 군용침낭, 김칫독, 간장 된장 고추장 버무린 독(아기 머리만한 독), 마닐라로프(자일이 아닌 로프), 20㎜ 카메라, 쌍안경, 삽, 톱, 야전도끼, 야전곡괭이, 간식, 부식, 세면도구, 보온주, 석유와 알콜 한 되씩, 깡통 항고 등등 ….’
원시적인 장비로 무장했으므로 한 사람의 짐 무게가 40~50㎏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리산을 향한 산악인들의 열정은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더욱 불타올랐다. 또한 교통편도 차츰 편리해져 1966년 성산 씨는 2박3일 일정으로 지리산 시민안내등반을 주재했다. 1979년 10월12일, 성산 씨는 마침내 부산에선 최초로 천왕봉 당일 등정을 시도하여 성공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성산 씨 등은 당일 일정으로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왔지만, 필자에게는 지리산이 여전히 멀기만 했다.
1980년대 초반에는 부산에서 뱀사골, 백무동, 청학동, 피아골 입구에 이르는 것만도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1974년 필자의 첫 천왕봉 등정 때 단성~덕산 구간의 왕복 1차선 도로를 2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때부터 지리산에 갈 때마다 도로 확장 공사로 하여 차량 운행에 어려움을 겪고는 했다.

1982년 여름이었다. 필자는 1박2일 일정으로 피아골 산행에 나섰는데, 미술학원 학생들이 우리 산악회를 피아골까지 따라나섰다. 부산에서 오후 2시에 출발한 대절버스는 순천을 거쳐 구례까지는 제대로 달렸다. 그런데 구례~화개 19번 도로를 2차선으로 확장하느라 파헤쳐 놓았는데, 장마로 뻘 구덩이가 돼 있었다.

뻘 구덩이에서 버스가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피아골 직전마을에 도착한 시각은 거의 한밤중이었다. 산악회원들은 두고라도 미술학원의 어린 학생들이 배가 고파 아우성이었다.

지금 지리산권을 지나는 고속도로와 왕복 4차선, 또는 2차선 국도를 지켜보노라면 격세지감을 금할 수가 없다. 세월이 흐르면 강산(江山)이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로구나. 요즘은 지리산도 반나절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