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길, 지리산 가는 길(3)

by 최화수 posted Feb 04, 200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쌍계사로 가려면 지난날에는 반드시 이 '쌍계석문'을 통과해야 했다(사진 위쪽). 불일폭포 앞 불일오두막 본체는 거의 30년 전인 지난 1981년과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사진 아래). 변규화 옹의 '불일사랑' 역시 한결같았다.
................................................................
1981년 1월, 새해 벽두였다.
그날도 나는 토요일 오후에 배낭을 메고 혼자 집을 나섰다. 76년 2월에 처음으로 찾았던 쌍계별장을 두 번째로 찾아가게 됐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목적지는 쌍계별장이 아니라 불일폭포 오두막이었다.

당시 나는 언론통폐합 조처로 국제신문에서 부산일보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게 됐다. 문화부에 배속된 나는 등산 관련 기사도 맡았다. 한 산악회 산행에 따라나선 나는 불일폭포 깊은 골에 어떤 중년부부가 속세를 등진 채 지리산의 적요처럼 적막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극도로 황폐한 심사였던 나는 불일오두막 중년부부로부터 무엇인가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나는 그 중년부부를 만나고자 4년여 만에 두 번째로 쌍계별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지만 쌍계사로 가는 도로 형편은 여전히 엉망이었고, 버스는 비포장도로를 아예 기어가는 형국이었다. 밤늦게 쌍계별장에 도착한 나는 밤잠을 설치고 아침 일찍 일어났다. 방문을 열자 온 세상이 백설천국으로 변해 있었다. 밤새 엄청난 눈이 내린 것이다.

불일폭포로 가는 길은 내가 처음으로 발자국을 새겼다. 아니, 그 길에는 크고 작은 짐승들의 발자국이 수많이 새겨져 있었다. 불일폭포 앞 오두막은 그야말로 설국의 동화세계 같았다. 남녀의 고무신발이 놓여 있기는 한데 나의 기척에도 응답이 없었다.

불일폭포와 불일암을 다녀오는 길에 다시 오두막 앞에서 서성거렸다. 한참 후에 수염을 길게 기른 주인남자가 밖으로 나왔다. 그이가 변규화 옹으로 훗날 나의 지리산 사랑에 큰 영향을 미친 분이다. 하지만 그이의 부인은 끝내 얼굴을 내밀지 않았는데, 그 후로도 영영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불일오두막에서 기대가 무너진 나는 쓸쓸하게 발길을 돌렸다. 쌍계사로 내려온 나는 무작정 화개천을 거슬러 올랐다. 신흥, 의신. 그리고 삼정마을도 지났다. 겨울의 거센 골바람이 나를 집어삼킬 듯했다. 그런데도 나는 꾸벅꾸벅 빗점골을 따라 무거운 발걸음을 계속 옮겨놓기만 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그때까지는 그랬다) 지리산 골짜기가 나에게는 참으로 아득하게 멀고 먼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