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길, 지리산 가는 길(2)

by 최화수 posted Jan 2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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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아름다운 집 '쌍계별장'. 지리산 나그네에게 품격 높은 사랑방으로 자리하던 이 별장은 근년에 원래의 암자(挑園庵)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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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1974년 12월18일 것이다. 어쩌면 1975년 12월18일(또는 17일)인지도 모르겠다. 35년쯤 전이다. 강산이 세 번씩이나 바뀐 오랜 세월이 흘러가버렸으니, 기억조차 선명하지 못하다.
어쨌든 필자는 그날 해가 뉘엿뉘엿 떨어질 무렵 난생 처음으로 눈으로 하얗게 덮인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그것도 혼자였다.

천왕봉에 처음으로 오른 소감?
그대로 얼어 죽을 것만 같았다.
비탈을 오를 때는 잘 몰랐던 강풍이 어떻게나 거센지, 순식간에 온몸이 동태처럼 얼어붙는 듯했다.
눈밭을 헤치며 내려오다 일몰에 걸렸고, 넘어지고 엎어지고 하며 캄캄한 법계사 초막에 되돌아왔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다.

그런데 그날 천왕봉에는 웬일로?
등산? 산행장비도 없이 무슨! 천만의 말씀이다.
회사에서 취재 출장명령을 받았다. <산>을 새해 특집기획 시리즈로 한다며 필자와 사진기자를 느닷없이 지리산으로 내몬 것.
부산을 출발한 우리는 진주에서 1박, 이틀째 날에야 법계사 초막에 도착했다. 단화(短靴)를 신은 사진기자가 초막에 주저앉는 바람에 필자 혼자 천왕봉에 다녀온 것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 창립된 삼천리탐승회는 부산에서 15박16일의 일정으로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왔다.
당시 부산에서 진주까지는 기차를 탔고, 진주에서 천왕봉에 가려면 하루 1편뿐인 버스를 타고 덕산(德山)에 닿은 뒤 40~50㎏의 짐을 메고 걸어갔는데, 중산리까지 2~3일 걸렸다.
또한 전란 직후여서 등산로가 제대로 나있지 않아 짐을 두고 1~2㎞ 전진, 등산로를 확인한 다음 짐을 올리는 식으로 등정을 했다.’(이종길의 <지리영봉>요약)

1976년 2월7일.
필자가 두 번째 지리산을 찾게 됐다.
등산복 차림으로 신혼여행에 나섰다.
이번에도 차편 때문에 첫날은 진주에서 묵고, 다음날에야 화개동천 쌍계별장에 닿았다.
직업 없이 놀고 있던 한 대학 선배가 부조금을 내는 대신 신혼여행지를 소개해 주었다.
쌍계사~연곡사~화엄사를 알려주면서 쌍계별장에서 묵고 불일폭포도 가보라고 한 것.
삼천리탐승회가 처음으로 지리산 탐승에 나선 때로부터 20년이 더 흘렀지만 지리산은 여전히 먼 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