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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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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南冥 曺植)은 일찍이 몸을 의탁하고자 여러 차례 지리산을 찾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안타까워하다가 눈물을 흘리며 돌아나오고는 했어요.
그럴 때의 심정을 '황소 갈비 같은 두류산 골짝을 열 번이나 답파했고, 썰렁한 까치집 같은 가수마을에 세번이나 둥지를 틀었네'란 시(詩)로 읊었어요.
그 첫 대목 '頭流十破黃牛脇(두류십파황우협)'의 '황우협'이 곧 지리산 별칭의 하나지요. 황소가 누워있는 것처럼 크고 웅장하여 모든 것을 포용하고 여유 있는 형상을 지닌 산이란 뜻입니다.

황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란 표현이 잘 어울릴 듯합니다. 백두대간이 흘러와 마지막 용틀임을 하고 머문 곳이니 산의 높이나 형세가 대단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고려 초기부터 지리산을 두류산(頭流, 혹은 頭留山)으로 간간이 쓰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지리'보다 '두류'로 더 많이 불려졌어요.
그러나 두류산이란 이름에 대해 다른 의견도 있답니다. 햇살이 가장 먼저 비치는 제일 높은 으뜸산이란 뜻의 '머리뫼'란 것이 두류산(頭流山)으로 됐다는 거어요.
고유음의 한자식 표기라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두류'의 두 가지 한자 표기 '頭流', '頭留'는 백두대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頭流'는 백두산의 맥이 흘러내려왔다고 하여 붙여졌고, '頭留'는 백두산의 맥이 흘러오다 지리산에서 멈추었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것이에요.
두류라는 이름은 한자가 우리나라에 정착한 훨씬 뒤에 생겨났기 때문에 고유음을 한자로 표기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백두대간의 맥이 지리산까지 내려와 멈추었다는 것은 신라 말 도선(道詵)이 정착시킨 분명한 개념이지요.

'智利山'이 맞는 이름이란 주장도 있었어요.
진응화상은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舍利菩薩)이 지리산에 상주하면서 설법했다는 옛 전설에 따라 산 이름을 지리(智利)라고 하였다. '智異'는 '智利'가 와전된 것이다" 라고 주장했어요.
하지만 불교와 관련시킨 이름인 '智利'란 명칭은 다른 문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군요.
또 국립지리원은 명칭 유래를 "지리학설에 지식인이 배출된다 하여 '지이산'이라 한다"거나, "지혜스럽고 이상한 산이란 뜻으로 '지이산'이라고 한다"고 밝히기도 했지요.

이렇게 지리산의 이름을 더듬어간다면 그 끝이 없을 거예요. 아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이제는 아주 지루하여 멀미를 느낄 만도 하겠습니다.
'지리산 이름이 몇개인가요?'를 시작하면서 나는 지리산 이름에 대해 경상대학교의 이정희님이 아주 명쾌한 해석을 내린 글을 한국산서회 회지 '산서'에 실었다고 먼저 밝힌 바 있어요.
위에 대충 언급한 지리산 이름에 관한 얘기들은 이미 여러 글들로 알려져 있는 것들이지요. 이제부터는 지루한 얘기는 그만 접고, 그이의 명쾌한 해석을 들어볼까요.

이정희님은 지리산 이름에 대한 위의 여러 가지 주장은 지리산의 명칭을 굳이 한자의 의미로서 풀이하려는 데서 비롯된 오류라고 주장합니다.
'지리산' 이름은 한자로서 풀이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 발음에서 풀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지리'는 순수 우리말로 경상도 방언 '지리하다'에서 따왔다는 거에요.
'지리하다'는 '지루하다'의 사투리로 '루'가 '리'로 변한 것이지요. 경상도에서는 '가루'를 '가리'로, '시루'를 '시리'로, '골무'를 '골미'라 하는데 그와 같은 경우로 본다면 된다는 것입니다.

지리산은 '황우협'이란 별칭이 있듯이 황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지요.
둘레 800리에 걸쳐 높고 넓은 산괴로 버티고 있으니 옛날 사람들은 짐을 지고 넘어가기도 힘들고,  돌아가기에도 지루했을 법합니다.
물물교환을 하던 당시 사람들에게 지리산은 얼마나 '지리한(지루한)' 산이었겠습니까!
남원 사람들이 등짐을 메고 화개장터를 다녀오거나 할 때 그 길이 얼마나 지루했을 것인지 짐작할 수 있어요.
지금도 반야봉 갈림길의 '운봉 무더미'가 지루함과 고통스러움의 상징처럼 남아있지 않나요.

지리산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지리한 산'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순수한 우리말로 '지리산'으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자가 들어온 뒤 유식한 이들이 순수 우리말을 굳이 한자로 옮겨 적다보니 '智異', '智利', '地而', '地理', '知異' 등등으로 기록했다는 것이에요.
이것은 '삼국사기'의 '고구려 유리왕조'에 '유리왕'이란 순수한 고유명사를 '瑜璃(유리)', '類利(유리)', '孺留(유류)'로 표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순수 우리말을 한자를 빌어 표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에요.

전란 직후에 중봉에서 야영하다 중산리까지 소주 심부름을 갔던 한 친구 얘기를 잠깐 언급했었지요.
그가 선배 강짜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갔다면 그 길이 한없이 지루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찌 소주 심부름에 한정되는 일이겠습니까. 지리산을 찾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겠지요.
누구의 심부름으로 지리산을 오른다면 정말 지루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지리산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지리산의 자연세계와 심신수련의 도장으로서 스스로 좋아서 찾고 있는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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