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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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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 직후의 초기 지리산 등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부산의 성산(成山)님이 있지요.
1960년대 초 그이가 중봉에서 야영할 때의 일입니다. 저녁에 마시던 술이 떨어지자 후배 한명에게 중산리에 가서 소주를 사오라고 시켰다는군요.
요즘 같으면 뺨맞을 소리를 한 것이지요.
하지만 당시엔 산꾼의 선후배 사이가 어찌나 엄격했던지 그 후배는 군말 한마디 못 하고 밤길을 재촉하여 중산리로 떠났다는 군요. 중산리까지 다녀오는 그 길이 그에게는 얼마나 지루했을까요?

중봉에서 천왕봉으로 올라 거기서 중산리까지 내려가는 그 길도 만만찮은데, 다시 천왕봉으로 올라 중봉까지 돌아오는 길은 얼마나 멀고 지루했을까요?
소주 한병을 사들고 다시 천왕봉으로 올라가던 그이는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요?
'호랑이 선배'의 강짜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심부름으로 생각했다면 그 길이 너무나 멀고 지루했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발품으로 산선배가 산의 정취에 흠씬 빠져들도록 돕는 일을 보람으로 생각했다면 신바람이 났을 법도 합니다.

지이산(智異山)으로 쓰고 지리산으로 읽는 것에 대한 색다른 해석이 있답니다.
어리석은 사람(愚者)이 머물러도 지혜로운 사람(智者)으로 달라진다는, 지혜가 다른 산이란 것이예요.
'지혜로운 이의 산', '지혜 있는 산'이라 하여 지이산으로 쓰되 지리산으로 읽는다는 주장도 있어요.
지리산은 지혜를 안겨주는 산일까요? 어리석은 자도 지리산에선 지혜로운 이로 바뀌어지는 것일까요?
신통력을 얻고자 지리산을 찾는 무속 숭배자들에게는 그럴 듯한 말로 여겨질만도 하지요.

도교적 불로장생술에 심취해 있던 진시황은 불로초를 구하고자 동남동녀 3000명을 삼신산(三神山)으로 보냈다지요.
삼신산은 봉래산(蓬萊山), 영주산(瀛州山), 방장산(方丈山)으로 신선이 살고, 황금구슬의 궁궐에 불로초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3000 동남동녀가 증발되어 불로초도 물거품이 됐고, 시황도 늙어 죽고 말았지요.
그런데 그 3000 동남동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많은 이들이 지리산에 왔다고 말합니다. 지리산은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이기 때문이지요.

당(唐)나라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시 '봉증태상장경균이십운' 첫 구에 '方丈三韓外(방장삼한외)'라 썼어요. 또 이 구절 주석에서 '방장은 대방군(帶方郡) 남쪽에 있는 산'이라 했지요.
이 두보의 시와 주석을 싸고 '방장산이 우리나라 산이 아니다', '바로 지리산을 가리킨다'는 두 주장이 팽팽히 맞섰답니다.
방장산이 지리산임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방호산(方壺山)이 있어요. 방호란 '열자' '탕문편'에 등장하는 명칭으로 대여, 원교, 영주, 봉래와 함께 오산(五山) 가운데 하나지요.

오산의 개념도 삼산신과 같아요.
[...누대와 궁관들은 금과 구슬로 되어 있고, 새와 짐승은 순백색이다. 주옥(珠玉)으로 된 나무들은 모두가 떨기로 자라고 있고, 그 꽃과 열매들은 맛이 좋아서 그것을 먹으면 누구나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신선과 성인의 무리이다...]
그런데 열자는 발해의 동쪽에 다섯 산이 있는데, 오산 중에 방장산을 방호산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낙원이라면 굳이 3000 동자들이 진시황에게 돌아갈 까닭이 없었을 거에요.

방장산, 방호산이란 이름은 신성함과 신비로움의 상징으로 중국에서 이름을 지은 것을 따온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신라 때부터 지리산의 신성함과 신령스러움을 들어 오악(五岳)의 하나인 남악(南岳)으로 일컬었지요.
남쪽을 대표하는 높고 웅장하면서도 신령스러운 산으로 신에게 제사 지내기에 알맞은 곳으로 삼은 거에요.
노고단에 남악사(南岳祠)를 세우고 나라에서 산신에게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중사(中祀)를 지내온 것입니다. 이 제례의식은 고려, 조선시대도 이어졌어요.

지리산의 신령스러움은 또다른 이름 봉익산(鳳翼山), 신산(神山), 부산(富山)으로 불린 것에서도 드러납니다.
산의 모습이 봉황의 날개와 같이 크고 웅장하다고 하여 봉익산, 자원이 풍부하여 주변 사람의 생활이 풍족하다고 하여 부산, 신선이 사는 신령스러운 산이라고 하여 신산이라고도 했다지요.
이처럼 신령한 산이다보니 소주 한병을 사러 중봉에서 중산리까지도 다녀오는 힘과 용기를 주었던 것일까요?
어리석은 사람도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드는, 곧 지혜가 다른 산일까요?  

하지만 불복산(不伏山), 반역산, 적구산(赤狗山) 등으로도 불렸으니 지리산이 신령스럽고 지혜롭기만 했던 산은 아닌 듯합니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뒤 지리산에서 제사를 지냈지만, 제문을 쓴 종이를 태워도 타지 않아 불복산, 반역산이란 이름이 생겨났어요.
적구산이란 빨치산의 소굴이 된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들 별칭과는 별도로 지리산은 정말 지혜와 관계 있는 산일까요? 그렇지는 않지요. 소주 한병을 사러 중봉에서 중산리를 다녀온 것에 그 회답이 있을 법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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