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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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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명당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는 곳이 남원 구룡(九龍)계곡이지요.
구룡계곡은 남원시가 자랑하는 관광 명소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울창한 수림 사이로 비단결 같은 계류가 기암괴석을 굽이쳐 흐르는 심산유곡입니다.

구룡계곡은 '용호구곡', 또는 구룡폭포라고도 합니다.
옛날 음력 4월8일이면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홉 군데 폭포에 한 마리씩 자리잡고 노닐다가 다시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지요.

구룡계곡은 육모정 매표소 조금 못 미친 송력동폭포의 제1곡을 시작으로 제9곡 경천벽에 이르는 10리 협곡입니다.
하지만 통상 제2곡에 있는 육모정이 유명하다보니 육모정계곡이라고도 불리지요.

육모정은 원래 지리산 북부관리사무소 구룡분소 앞의 옥룡추라는 넓은 반석 위에 있었으나, 지난 1960년 수해로 유실되었는데, 근래 다시 복원한 것입니다.
구룡폭포는 남원 8경의 제1경이기도 한데, 옛날 시인묵객들이 많이 찾았던 육모정은 남원 사람들의 긍지가 배어 있는 곳이지요.

육모정 일대는 남원 관광의 한 코스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
관광명소 육모정을 찾는 이들은 무엇을 느낄까요?
9곡 가운데 제2곡은 높이 5미터의 암벽에 이상만이란 이가 썼다는 '龍虎石門(용호석문)'이란 글이 음각돼 있고, 절벽 아래로 흰 바위로 둘러싸인 소(沼)가 있지요. 지난날에는 '불영추'라 불렸는데, 지금은 그냥 '용소'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용소 위로 계곡을 건너는 아치형 다리가 놓여 있어요.

옥룡추 넓은 암반과 계곡을 뒤덮고 있는 수림 등 자연의 빼어난 경관이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서 자연경관보다 더 감탄할 것이 따로 있지요.
용소로 가는 길 옆에 납작 엎드리고 있는 작은 돌비석 하나가 우리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명창 권삼득(權三得) 추모비'
조선 8명창인 권삼득을 기리는 글을 새긴 얕으막한 비석!
그마저 길가 풀섶에 가려 있다시피 합니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도 않지요.

아무런 치장이나 장식도 없는 밋밋한 돌 하나!
마지 못해 세워놓은 듯한 권삼득 추모비가 왜 우리의 마음을 통째로 사로잡게 하는 것일까요?
아, 그것은 그 글의 내용입니다.

"권삼득은 노래 공부를 하러 콩 세 말을 메고 이곳에 찾아와 판소리 한 바탕을 부르고 콩 한 알을 용소에 던져넣고, 다시 소리 한 바탕을 하고 콩 한 알을...이렇게 콩 세 말을 용소에 다 던져넣도록 노래 공부를 하여 마침내 득음(得音)했다"는 것이에요.
아, 콩 세 말은 콩이 몇 개일까요?
그러니까 도대체 노래 몇 바탕을 불렀다는 것일까요!?

권삼득은 전북 익산의 양반 가문 출신입니다. 양반 자제가 천대받던 광대가 되겠다니 안동 권씨 문중에선 난리가 났다네요. 권삼득을 죽여서 가문의 수치를 막기로 했지요. 덕석에 말아 죽이기 직전에 권삼득은 마지막으로 노래 한 마디만 부르게 해달라고 간청했다는 군요.

권삼득이 마지막으로 노래 한 마디를 불렀는데, 어찌나 애처롭고 처량하게 들리던지 그를 죽이는 대신 족보에서 이름을 지우고 문중에서 추방했다는 군요.
권삼득은 그로부터 콩 세 말을 메고 이 구룡계곡으로 들어왔답니다.
마침내 득음한 그가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덜렁제'는 그를 8대 명창의 반열에 오르게 했지요.

그런데 이 '권삼득 추모비'가 안겨주는 감동과는 정반대로 너무나 황당한 느낌을 안겨주는 것도 있습니다.
바로 권삼득 노래비를 내려다보고 자리한 무슨 왕릉과도 같은 거대한 성역(?)이 그것이에요.
권삼득 추모비를 세우는 것보다 아마도 1만배나 10만배 이상의 돈을 더 들여 조성했을 '성춘향(成春香) 묘소'가 울창한 산림 대신 자리하고 있는 거에요.
춘향 묘소 입구의 안내 표지석만도 권삼득 추모비보다 10배는 더 큽니다.

1962년 육모정~정령치 도로 공사를 하다가 '成玉女之墓'라고 새긴 돌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것을 근거로 경주 왕릉보다 더 대단한 '성춘향 묘소'를 만들었다나요.
하지만 성춘향이 누구인가요?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속의 인물이 아닌가요?
소설속의 인물, 그러니까 허구의 존재이지요.

성춘향이 실존인물을 모델로 해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설혹 그렇다고 해도, 성옥녀라 새긴 돌이 성춘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못 되지요.
정말 성춘향의 묘소가 맞다 하더라도 기생 딸이었던 그녀의 무덤을 왕릉과 같이 거대하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성춘향에 대한 남원의 정서가 워낙 특출하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역사적 리얼리티에 부합되는 것이어야 감동도 따르는 법입니다.

구룡계곡, 육모정에서 우리를 정녕 감동케 하는 것은 거대한 성춘향 묘소가 아니라, 너무나 초라한 권삼득 기념비입니다.
지리산의 감동과 허식이 교차하는 것이 어찌 구룡계곡 뿐이겠습니까.
800리 지리산 그 둘레에 간단없이 묘한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지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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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거사 2003.08.27 09:12
    지리산에 깔린 내력 하나하나가 차분히 소개되는군요.참 좋습니다.
  • ?
    솔메 2003.08.27 12:53
    권삼득선생의 '덜렁제'는 동편제,서편제에서 맴돌고있는 저의 소리상식속에서 일대 감동입니다...
    춘향이 묘소라고 덩실하게 성역화(?) 해놓은 모양이
    정녕 우리시대의 '일그러진 초상'인듯 싶습니다..
    그 좋은 구룡계곡의 濁水는 지금쯤은 걷혀졌을지요?
    아무래도 운봉쪽의 저수지공사가 끝이나야 되겠지요?..
  • ?
    정진도 2003.09.02 08:45
    엊그제 육모정을 지날때 최선생님의글과 솔메님의느낌을 생각하며 지나가니 같은길도 의미가새로왔습니다.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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