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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668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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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달이며는
쌍계사의 학이 울고
천년 전 솔바람도
어느새 와서 불고
화개골 흰구름 같은
고운 생각도 피어난다.

댓닢 이슬 받고 자란
지리산 그 죽로차
눈 속에 번져가는
담록색 머언 향기 따라
꽃사슴 지순한 꿈도
영을 넘고 있구나.'
                         <김필곤 / 지리산 죽로차>

조태연 김복순 부부가 만든 '선차(仙茶)'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부산 광복동에서 '고려민예사'를 열었던 금당 최규용(錦堂 崔圭用)옹을 통해서였습니다.
1965년 한긿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인들의 부산 나들이가 잦아지면서 고려민예사가 그 사랑방 역할을 한 거지요. 일본인 관광객에게 조태연 김복순 부부의 선차는 한국전통상품의 하나로 소개가 되었답니다.

조태연은 또 부산의 대표적인 차인(茶人)인 금당 선생을 앞세워 통도사 경봉(鏡峰 )스님과 삼락자(三樂子) 스님을 찾아갔어요. 특히 경봉 스님은 선차를 크게 칭송했고, 조태연 내외에게 격려 법문을 내려주기까지 했답니다.
경봉 스님이 선차를 즐겨 마시게 됨으로써 우리나라 절집에서 선차 주문이 이어져 이들 부부가 간신히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네요.

화개와 그리 멀지 않은 곤양 다솔사에 효당 최범술 선생이 있었지요. 특히 효당 선생은 '선차'라는 이름 대신 '죽로차(竹露茶)'라는 이름이 더 좋겠다는 도움말을 주었다고 합니다.
조태연 김복순 부부는 1965년부터 '지리산 죽로차'와 '지리산 작설차'라는 두 이름도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극심한 어려움 속에서도 조태연 부부의 선차는 계속 만들어졌어요.
이들의 선차는 농산물 품평회 등에서 입상하기도 했지요.
1967년에는 경남도로부터 식품허가를 받아서 본격적인 녹차 생산을 하게 됩니다.
이들 내외가 받았던 식품제조허가(명의는 조태연)는 우리나라 녹차 제조 역사상 최초의 것이었답니다.
홍차 등 다른 식품분야는 허가제도 시행 이후 많은 허가증이 발급되었지만, 녹차만은 정확한 제조법을 몰랐기 때문에 허가를 신청하는 사람이 없었던 거에요.

하지만 이 세상의 현실은 녹차처럼 향기롭지만은 않았답니다.
어깨 너머로 녹차를 만드는 기술을 배운 이들이나, 얼렁뚱땅 녹차를 만들어 돈벌이를 해보자고 나선 이들에게 조태연 부부는 몹시 불편한 존재로 생각됐다는 거에요.
엄격한 법 절차를 거쳐 발급된 식품제조허가증을 가지고 녹차를 만드는 조태연 내외가 자신들의 돈벌이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조태연의 식품제조 허가를 취소시켜라!
이런 정말 얼토당토 않은 무서운 음모가 시작됐다네요. 음모꾼들은 조태연의 식품제조허가를 취소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수립했고, 거기에 따라 하급직 공무원 한 사람을 매수했다는 것입니다.
이 공무원은 조태연에게 허가증을 반납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허가증의 규격이 바뀌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으로 교체해 준다고 한 것이지요.

하지만 여기에는 어처구니없는 함정이 있었던 겁니다.
한번 반납된 허가증은 두번 다시 조태연의 손으로 돌아오지 않았답니다.
담당자는 이런저런 변명을 대면서 새 허가증을 내주지 않았다네요.

몇 달 뒤 허가증을 재발급 받으라는 공문이 왔습니다.
조태연이 관청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재발급 신청기간이 한 달이나 지났기 때문에 식품제조 허가증은 자동으로 취소가 되었다는 거였어요.
담당자가 재발급 신청 공문을 묵혀 두었던 때문이지요.
이렇게 하여 조태연 부부는 녹차를 만들 수 있는 허가증마저 잃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허가가 취소된 뒤부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군요.
무허가 식품인 줄 알면서도 이들 부부가 만드는 차만 찾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는 거였어요. 특히 주요 고객 가운데는 높은 분에게 선물하겠다는 공직자가 많았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요.
  • ?
    솔메 2003.08.12 11:45
    '죽로차'란 이름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해왔는데 작명하신 분이
    다솔사의 효당선생이시군요...수년전에 가본 다솔사 금당에 누워계시던 와불이 눈에 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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