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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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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 바로 코 아래에 성삼재가 있습니다.
이곳까지 2차선 포장도로가 연결돼 있고, 관광버스가 오르내리고 있지요.
요즘은 관광버스로 성삼재에 오른 중학생, 고등학생 수백명이 줄을 지어 노고단으로 오르는 모습을 곧잘 목격합니다.

수학여행인지, 수련대회인지, 노고단으로 오르는 학생들의 발길이 경쾌합니다.
왁자지껄 떠들면서 활보하는 그들을 지켜보노라면 함태식님의 옛 이야기가 저절로 떠오르게 됩니다.
그이는 그 옛날 학생들이 노고단에 오를 때 섬진강 모래 한 줌씩만 날라다 줄 것을 부탁했다더군요.

구례에서 태어난 그이는 초등학교 소풍 때 처음으로 노고단에 올랐는데, 경이의 자연세계에 흠뿍 빠져들었답니다.
그이는 특히 외국인 선교사 수양촌에 자리한 52동의 아름다운 건물에 크게 매료가 되었다더군요.
하지만 그 수양촌 건물들은 여순병란의 여파로 그만 잿더미가 되고 말았지요.

함태식님은 전쟁이 끝난 뒤 누구보다 먼저 노고단에 올랐어요.
그이는 벽체만 남아있는 수양촌 건물 한 곳을 택해 산장으로 복구하기로 했어요.
그이는 산장 형태만 갖추어진다면 노고단에 아주 정착할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저 걸어서 오르기도 힘든 노고단까지 누가 어떻게 건축 자재들을 올려주겠습니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이는 구례중학교 교장을 찾아갔다는 군요.
"학생들이 노고단에 오를 때 모래 한 줌씩만 날라주게 해주세요."
그이의 간곡한 부탁이었답니다.

하지만 전란직후였던 당시 노고단에 오르는 학생이 많을 까닭이 없었습니다.
학생이 한 줌씩 나르는 모래가 늘어나기는 커녕 바람에 날려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군요.
낙심한 그이는 노고단 산장 건립 꿈을 접고, 그만 구례를 떠나게 되었답니다.
대학을 나온 그이는 인천의 조선기계회사에 다니게 됐어요.

1971년, 나라에서 노고단에 40평짜리 단층 무인산장을 세웠어요.
그 소식을 들은 함태식님은 당장 노고단으로 달려왔지요.
그러나 눈앞의 현실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세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산장인데도 유리는 모두 깨어지고, 내부에서 불을 지펴 벽까지 새까맣게 그을려 있고, 실내에 쓰레기며 분뇨가 쌓여 악취가 진동했고....

함태식님은 이 무인산장의 관리인이 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어요.
바로 다음해인 72년 8월, 그이는 단신으로 노고단에 올라 피폐한 산장을 보수하고 주변을 말끔하게 정리했어요.
그이는 또 날이 어두워지면 산장 앞에 장명등을 내걸고 길잃은 등산객들의 등대수가 되었으며, 등산로 안내는 물론 조난객 구조작업 등에 나섰어요.

'노고단의 터줏대감'이 된 그이는 무엇보다 산행문화를 정립하는데 열성을 쏟았어요.
세월이 지나면서 산행인구가 늘어나는 반면 산행현장은 급속히 혼탁해진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이는 지리산을 찾는 모든 등산객에게 이렇게 당부를 했답니다.
"조용히, 그리고 깨끗이!"

산행문화를 정립하기 위해 노고단 터줏대감은 '호랑이'로 행세해야만 했지요.
그 '노고단 호랑이'도 1987년 11월13일, 16년 동안 정든 노고단산장에서 등을 떠밀려 하산해야 했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영 현대식 3층 '노고산장'이 88년 1월9일 준공되는 때문이었지요.

새 노고산장은 개관과 함께 한국 최초의 '무장비 등산 시대'를 선언합니다.
  • ?
    부도옹 2005.07.13 20:40
    산장, 등산의 편리성을 제공하는 이면에 접근하기 수월하다는 것으로
    이제 더 많은 유산객으로 인한 노고단의 황폐함이 시작되었겠네요.
  • ?
    오 해 봉 2005.07.14 18:58
    전에 여산선생님 칼럼에서 읽었어도 좋기만 합니다,
    노고단의 역사와 함태식님의 노고를 잊지안고 기억하고
    칭송해주시는 여산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 ?
    야생마 2005.07.21 01:12
    노고단의 역사에 그런 애틋한 과정이 있었군요.
    함태식님의 노고와 헌신이 새삼 숭고하게 여겨집니다.
    그런 노고단을 16년만에 떠나게 되었을때 많이 서운하셨겠네요.
    '무장비 등산시대' 사실 저도 그 덕에 종주를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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