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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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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의 자연을 복원하듯이 노고단은 그 역사도 복원해야 합니다.
노고단은 남악사(南岳祠)와 같은 아주 오래된 역사적 자취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에서 관리한 그런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들도 자리합니다.
지리산의 근대 등산사와 산악운동사를 상징적으로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곳이 노고단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노고단에서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우리의 등산역사입니다.
지리산의 근대 등산 역사의 발자취가 가장 먼저 체계적으로 새겨진 곳이 노고단이니까요.
지리산의 근대 산악사를 이끈 주인공은 구례의 연하반(煙霞伴)산악회입니다. 이 산악회의 열정이 상징적으로 서려 있는 노고단은 그래서 지리산 산악운동사의 시발점인 셈이예요.

연하(煙霞)란 안개와 노을, 고요한 산수의 경치를 뜻하는데,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매우 사랑하고 즐기는 성벽을 연하지벽(煙霞之癖), 또는 연하고질(煙霞痼疾)이라 일컫습니다.
연하반(煙霞伴)이란 이름도 산수의 아름다운 경치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으로 구례중학교 초대 교장 백경이 붙였다고 합니다.

연하반산악회가 창립된 시기는 한적한 지리산록의 고을로 본다면 놀랄만큼 빠릅니다.
빨리 발족한 산악회의 선구자 답게 이 단체는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운동을 비롯하여 지리산 등산사를 빛내는 획기적인 일들을 하게 됩니다.
지리산 등산로 개척과 지리산 등산지도 제작 등 그 공적은 그야말로 놀랄만하지요.

연하반산악회는 지리산지구 공비 토벌작전이 끝난 다음 해인 1955년 5월5일 구례중학교 우종수 교사의 주도로 창립이 됐어요.
그는 공비 토벌작전을 끝낸 수도사단이 54년 12월 철수하자 55년 4월 구례중학교 동료 교사들과 함께 처음으로 노고단 등정을 시도했답니다.
하지만 전쟁 소동 여파로 종전의 등산로는 찾을 길이 없고, 작전용 소로(小路)가 거미줄처럼 뒤엉켜 혼란만 주더라는 군요.

첫 노고단 등정에 실패한 우종수는 노고단 뿐만아니라 지리산 전역의 등산로 개척에 대한 강한 집념을 불태우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그는 구례의 산악동호인들을 모아 '구례 연하반'이란 산악회를 만든 것이지요.
1955년 5월5일, 연하반산악회는 창립총회를 겸한 기념산행으로 노고단 등정에 나섰답니다.

하지만 연하반산악회의 창립 기념 노고단 등정마저도 그만 실패하고 말았답니다.
그들은 잡초와 잡목에 막혀 해발 1200미터 지점에서 어쩔 수 없이 되돌아서야만 했던 것이지요.
우종수는 그해 5월을 넘기기 전에 세번째로 노고단 등정 도전에 나서 마침내 해발 1506미터 정상에 올랐답니다.

우종수의 연하반산악회는 평화를 되찾은 지리산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매료되어 이 때부터 본격적인 지리산 등산로 개척에 나서게 됐어요.
그들은 56년 반야봉까지 올랐고, 57년에는 노고단~천왕봉의 주능선 종주 등산로를 개척하는데 성공했답니다.
현재의 종주산행 코스는 바로 이들이 순수 산악 열정 하나로 천신만고 끝에 개척한 것이랍니다.

우종수 회장은 천왕봉에서 처음 맞았던 일출의 장관을 잊지 못합니다.
"해발 1915미터의 영봉 아래 온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어가던 장관은 바로 천지창조의 그 순간이었다."
연하반산악회는 '지리산 8경'을 선정할 때 이 천왕봉 일출을 제1경으로 꼽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는 군요.

연하반산악회는 창립 10년이 지난1965년 지리산산악회로 이름을 바꿉니다.
당시 회장은 우종수, 그리고 부회장은 훗날 노고단산장에 정착한 함태식이 맡았답니다.
지리산산악회는 지리산 종주 코스 등을 개척한데 이어 그 등산지도를 제작하여 배포했습니다.

지난 80년대, 지리산 등산구 마을이나 산장 등에서 팔던 '등산 안내도'에는 거의 빠짐없이 구례의 지리산산악회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 관례로 돼 있다시피 했어요.
'이 지리산 안내도는 구례읍의 지리산산악회에서 제작한 지리산 등산지도를 참고했습니다. 지역 산악회로 오래 전부터 지리산 보호와 등산객 안전산행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은 지리산산악회(회장 우종수)에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 ?
    야생마 2005.06.10 20:29
    저도 지리산산악회에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전쟁의 상흔이 가시기도 전에 등산로 개척을 하셨구만요.
    그분들의 노고로 만들어진 등산로와 등산지도 덕에
    요즘 쉽게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게 되었나 봅니다.
    노고단의 '역사'복원은 어떤식으로 이루어져야 할지요.
    기념관이나 기념비등이 많이 세워지는것도
    어떤면에선 좋은것만이 아닌듯 한데요.
  • ?
    최화수 2005.06.11 12:01
    그렇습니다. 야생마님의 지적처럼 기념관이나
    기념비 등이 많이 세워지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노고단의 자연생태계를 복원하고 탐방코스를
    만들어 안내를 하고 있듯이, 지리산 등산사를
    엿볼 수 있는 작은 기념관이나 기념비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 ?
    정진도 2005.06.13 17:06
    이렇게 해서 지리산종주길이 개척되었군요.
    우종수님, 함태식님, 그리고 연하반산악회원여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
    최화수님의 탐구정신에도 경의를 표합니다.
  • ?
    야생마 2005.06.15 22:15
    자연생태계나 여러 안내판등이 세워져 있는판에
    중요하고 기억해야할 등산사 같은것들은 등한시 하는것도 같네요.
    선배님들을 기리는 최화수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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