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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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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속세를 등지고 지리산의 자연세계에 몸을 던진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지리산 산신령'이 되어 지금까지 영생한다는 고운 최치원을 비롯하여 녹사 한유한, 남명 조식 선생 등이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지리산에 유배돼온 인물은 흔치가 않지요. 지리산이 정치적인 유배지가 아닌 때문일 거에요.

그런데 무슨 관리도 아닌, 조선 왕족이 유배를 와서 삶을 마감한 것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라 하겠습니다.
세조 2년(1455년) 세종대왕의 열두번째 왕자, 한남군이 단종 복위운동에 가담한 죄로 지리산 엄천의 새우섬에 유배됩니다.
한남군은 새우섬 유배 4년만인 세조 5년(1459년) 마음의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고 맙니다.

한남군은 세종대왕의 열여덟 왕자 가운데 열두번째로 세종 11년(1419년)에 태어났어요.
세종대왕의 뒤를 이어 문종이 왕위를 이었으나 병약한 문종은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성삼문, 박팽년 등 신하들에게 아들 단종의 보위를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하지만 단종 즉위 후 수양대군은 조카 단종을 대신하여 세조로 등극하게 되지요.
한남군은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운동에 적극 가담했으나 실패합니다.

한남군은 왕족인 덕분에 극형은 면했어요.
부왕인 세종의 유지를 받들어 장형인 문종의 유명을 받들고 의리를 지키고자 했던 것이니, 사실 잘 못한 것도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는 천리 먼길 함양 땅 지리산 엄천 새우섬에 유배가 됐어요.
6천여평의 새우섬에서 한남군은 왕손의 절개를 지키다 삶을 마감한 것이에요.

한남군의 육신은 함양읍 교산리 봉강마을 뒷산에 묻혔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한남군이 유배돼 살다가 생을 마감한 뜻을 기려 새우섬이 있는 곳을 한남마을이라고 부릅니다.
함양의 유림들도 한남군의 지조와 절개를 기려 지난 1867년 정자를 세우고 '한오대(漢鰲臺)'라 편액하고 추모해 왔어요. 하지만 이 누대는 1936년 병자년 홍수 때 물에 휩쓸려 가고 말았다네요.

그런데 왜 조선 왕족인 한남군이 유독 지리산 엄천으로 유배가 된 것일까요?
그 까닭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세종대왕과 단종의 태실지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경남 사천군 곤명면에서 마주보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 새우섬은 위의 두 태실지와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지, 짐작만 될 따름이에요.

단종의 유배지인 강원도 영월 청령포는 사적지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지요.
하지만 단종의 복위운동에 가담했던 한남군이 유배된 지리산 끝자락의 새우섬에는 '한남마을'이라는 이름과 '한남교'라는 시멘트 다리만 남아 있을 뿐이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세종과 단종의 태실지와 새우섬을 연계하여 역사의 현장으로 지정하고 보존하는 것도 좋을 듯한데요.

지리산은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되어 이런저런 법령과 제도의 보호를 받고 있지요.
그렇지만 지리산 주변에 묻혀 있는 우리 역사의 편린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외면받고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아요.
아름다운 자연세계를 더욱 아름답게 가꾸고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민족의 역사와 선조의 숨결이 깃든 것들을 올바로 살펴보고 살려내서 제대로 보존하는 것 또한 우리들의 몫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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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규 2004.08.24 14:33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참모였던 이숙번이가 유배를 갔던 곳이 함양의 까막섬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한남마을의 새우섬과 가깝습니다.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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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화수 2004.08.24 16:29
    엄천 절골 남호리가 고향인 김용규님께서 주변 일대 사적과 관련한 좋은 말씀들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선왕조 최초의 과거시험 합격자이자 1, 2차 왕자의 난을 승리로 이끌어 태종 이방원의 핵심측근으로 승승장구했던 이숙번이지요. 하지만 거만방자하게 행동하다 탄핵으로 삭탈관직 당하고, 45세에 함양으로 유배됐지요. 그런데 그곳이 새우섬과 가까운 까막섬이란 사실은 김용규님으로부터 처음 듣습니다.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시기적으로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겠네요.
    조선초기 유배지의 한 곳으로 다시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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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 2004.08.24 18:14
    고려,조선조대에 정적이나 범법자들을 유배 보낼때 죄질을 고려하여 '도성으로부터 몇백리밖'이라는 기준으로 山間島嶼 -삶의 취약지만 골라서 보냈던바, 지리산도 그 예외지역이 아니었던 것이군요.
    지리산 언저리에 골골이 박힌 깊은 사연들의 울림이 새삼 크게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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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규 2004.08.24 21:14
    최화수님께서는 지리산과 관련된 역사에 대해서 달관하셨군요. 산청군 금서면 오봉 마을 뒷산, 함양군과의 경계지점(지리산중턱)에 무게 약 1톤이상의 돌멩이 5개가 일직선으로 올려져 있는곳이 있습니다. 인공을 가한 유적인데 그것이 무엇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곳에서는 5개 공개바위(공기돌 놀이용)라는 전설로만 알고 있거던요. 어릴때 직접 가 보기도 했습니다. 지리산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곳이 너무 많아요. 앞으로 연구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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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호정 2004.09.03 20:32
    역사적 고찰의 장입니다 이곳은요~ 늘 많이 배우고 새롭게 인식하게 됩니다. 또한 그 역사이야기 후세인으로서는 흥미롭기도 하고 재미있습니다. 그 당시의 당사자들은 아픔의 고초를 겪는 일생을 보내었겠지만, 왕조시대에 왕족을 멀리 유배보내어 사지에서 유명을 달리하게한 그 세조도 지나칩니다. 물론.어느시대이건 정치 정권에는 개입치 않아야만 삶이 평화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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