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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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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주릉 북쪽의 물줄기는 그 흐름을 이어가면서 몇 개의 이름으로 바뀝니다.
인월(引月)에서 가흥(馬川)까지는 만수천(萬壽川), 가흥에서 용류담까지는 임천(臨川), 용류담에서 생초(生草)까지는 엄천(嚴川) 또는 휴천(休川), 생초에서 원지(院旨)까지는 경호강, 그 다음은 남강(南江)으로 불립니다. 이 남강의 물줄기는 진주를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듭니다.

지난날 지리산을 탐승했던 선비들의 기행록에는 이 북쪽 물줄기를 따라가며 지켜본 자연경관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
특히 김종직과 김일손은 휴천계곡(엄천) 주변의 경관을 찬탄했고, 당대의 석학 정여창은 "바로 이런 곳이 살만한 곳이 아니겠느냐"며 난세에 은둔하기에 알맞은 명소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지리산 주릉 북쪽의 물줄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대로 흘러내립니다.
만수천에서 임천으로, 다시 엄천에서 경호강으로 그 흐름은 달라질 것이 없지요.
하지만 물줄기는 그대로지만 자연경관은 옛모습 그대로가 아닙니다.
임천과 엄천의 분기점인 용류담 한 곳만 보아도 지난날의 신비로움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자연의 세계 대신 때묻은 문명이 개발의 상처 자국들을 내놓고 있지요.

구형왕릉 아랫마을인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와 함양군 유림면 서주리 사이의 엄천강에 엄천교가 놓여 있습니다.
이 엄천교에서 지리산 주릉 북쪽 물줄기를 거꾸로 거슬러 오르며 남원군 동면 인월까지 60번 지방도로가 이어져 있습니다.
지방도로이기는 하지만 왕복 2차선 포장도로입니다.
자동차가 거침없이 달릴 수 있어 좋기는 하지만, 이 도로 확장공사 때문에 원래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형편없이 훼손되고 만 것이지요.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그나마 지리산 물줄기로 흘러내리는 이 흐름마저 막고 거대한 댐(문정댐)을 건설하겠다는 당국의 계획이 있기도 합니다.
지리산을 원상 그대로 지키고자 하는 환경운동단체의 줄기찬 투쟁이 몇년째 이어지고 있지요. 개발과 문명의 바람, 그 때문에 지리산 주릉 북쪽 물줄기는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지요.

지리산 주릉 북쪽 물줄기를 자동차를 타고 그냥 따라가보는 것도 좋겠지요.
하지만 쏜살같이 지나가기만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지리산 주릉 북쪽 물줄기를 따라 흩어져 있는 우리 옛 역사의 파편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이를테면 지리산의 새우섬을 아시는지요? 지리산 북쪽의 이 물줄기와 함께 새우섬이 있고, 그 새우섬에는 슬픈 역사가 자리하고 있답니다.

임천, 엄천은 옛 선비들이 '은둔의 명소'로 불렀었지요. 그 주인공인 김일손과 정여창은 무오사화의 희생자이고, 김종직은 부관참시의 비극을 맞기까지 했습니다.
'은둔의 명소'라는 말도 무오사화, 갑자사화 등 선비들의 대학살을 예견하고 했던 말인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당시 선비들이 은둔해 살만하다고 본 곳은 아마도 엄천 주변의 문정, 남호리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문정마을은 원래 탄촌(炭村)마을로 영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그대로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지요.
남호리는 동호, 원기 한남 세 마을을 안고 있는 곳으로 지난날 엄천사가 자리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지리산 주릉 북쪽 물줄기에서 용류담에서 생초까지를 엄천으로 부르는 것도 이곳에 엄천사가 있었던 때문이에요.

엄천(嚴川)이란 말은 불교의 계율을 엄하게 계해한다는 것이지요. 엄천사라는 절 이름도 이런 깊은 뜻이 담겨 있답니다.
엄천사가 있던 곳을 엄천골이라고 하고, 그 앞으로 흐르는 지리산 물줄기를 엄천이라고 불렀던 것도 같은 연유이겠습니다. 엄천이란 이 지역의 지명을 딴 것이 아니라 불교 용어인 것이지요.

한남마을 앞 엄천에는 시멘트 콘크리트 교량이 놓여 있습니다. 엄천의 자연경관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량 건너편이 바로 새우섬입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섬이 아니라 그냥 강언저리로 변해 있지만, 지난날에는 엄연한 섬이었고, 그래서 새우섬으로 불린 것이에요.
500여년 전, 세종대왕의 열두번째 왕자인 한남군(漢南君)이 바로 이 섬에 유배되었다가 유명을 달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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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규 2004.08.20 23:04
    지리산 구석구석을 해부하고 계시군요. 아주 정확하고 해박하신 지식으로 말입니다. 제 자신도 휴천면 쪽은 눈을 감고도 알수 있는 부분이지만 오히려 더 상세하게 묘사를 하시니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새우섬에서 휴천면 송대마을 위 해발 약 1000M에 위치한 선녀굴과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과의 일화도 아주 재미있는데요. (실록 정순덕)에서는 조금 언급되어 있던데 이홍이 이은조 정순덕이가 1963년도 2월까지 은둔해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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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도옹 2004.08.22 13:56
    최화수님의 글을 읽으면 역사와 지리공부를 한꺼번에, 그것도 알기쉽게 배웁니다.
    말씀 해주시는 모든 이야기들이 발로 뛰어다니며 직접 알아냈을거라 생각하니 더욱 소중하고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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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호정 2004.08.22 16:53
    새우섬~세종의 12번째 아들 한남군의 유배지로 그 넋을 기리는 고을 이름으로 남았군요.
    역사의 뒤안길 가슴 찡한 한 끗 사연을 알게 됩니다.
    흘러간 역사를 두루 밝게 펼쳐주시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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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해 봉 2004.08.22 19:47
    새우섬에 그런사연이 있었군요,
    올가을엔 그곳도 가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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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 2004.08.23 11:41
    지리산 北麓에서 발원하는 소하천에 그러한 여러 이름이 붙여지고 결국 남강으로 흘러들어 진주벌을 적시며 낙동강에 합류하는 군요.
    사화를 거치고 이겨내던 선비들의 고고한 정신도 소리없이 깊이 흐르는 그러한 물줄기와 함께했을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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