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마을(1)

by 최화수 posted Jun 1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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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강도 찜쪄서 안주 삼고, 화냥년 경수 받아 술 빚어 먹고, 피똥 싸고 죽을 남원사또 변학도와 사돈해서 천하잡놈 변강쇠 같은 손주 볼 놈..."
이 무슨 끔찍한 욕설일까요.
하지만 놀랄 것까지는 없습니다. 몇 해 전 민학회 광주지회에서 주최한 전국욕쟁이대회에서 으뜸상을 차지한 욕이니까요.

욕설대회니까 변강쇠의 등장 또한  자연스러운 듯합니다.
변강쇠가 누구인가요?
신재효의 판소리 여섯 마당 가운데 한 마당인 <가루지기 타령>의 주인공이지요.
천하의 오잡놈 변강쇠와 오잡년 옹녀가 오다가다 송도(개성) 청석골에서 만났던 것이지요.
옹녀의 고향은 평안도 월경촌이었어요. 과부살이 들어 만나는 서방마다 첫날밤에 변사하자 그냥 두었다가는 사내놈 하나 남아나지 않겠다 하여 추방을 당한 거에요.

'두 남녀가 만나 수인사를 하고 배필삼아 신랑의 고향인 삼남을 돌아다니는데, 옹녀는 들병장사 막장사 넉장질로 돈푼 모아놓으면 강쇠란 놈 고누두기 윷놀기에 막쳐먹기 돈치기 의복전당 술먹기에 계집 치기로 일삼는다. 이에 옹녀가 산중에 들어가 살면 노름도 못하고 강짜도 못할 테니 산속에 들어가 살자고 하여 지리산속을 찾아든다.' ('이규태코너' / 변강쇠의 고향)

왜 또 변강쇠 타령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분도 있을 거에요. 변강쇠와 옹녀가 지리산으로 들어와서 살았던 것은 분명한데, 지리산 어디에서 살았던 것일까요? 지리산 남원 땅인가, 함양 땅인가 그것이 '문제 아닌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전북 남원시와 경남 함양군이 이른바 '변강쇠 줄다리기'를 시작한 것은 여러 해 전부터의 일입니다. 남원에서 민속주인 '강쇠주'를 지난 1999년 상표등록을 하여 생산 판매를 해왔는데, 2001년 벽두 함양에서 '변강쇠술'과 '옹녀주'를 내놓은 것이지요.
남원의 민속주 회사가 '변강쇠술'과 '옹녀주'를 유사 상표라고 하여 이의신청을 한 것이 그 시초입니다.

'변강쇠 줄다리기'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연고 유명 인물을 내세워 관광자원화 하는 것에서 능히 짐작할 수 있겠네요.
역사 인물이나 옛이야기 주인공의 지리적 연고를 둘러싼 자치단체 사이의 다툼은 변강쇠나 옹녀뿐만이 아닙니다.

경남 사천시는 최근 서포면 '비토섬'이 <별주부전> 설화의 무대라는 학계의 고증을 받았다면서 2010년까지 이곳을 테마관광마을로 육성하겠다고 밝혔지요.
사천시는 마을 진입로에 <별주부전> 유래비와 함께 토끼와 자라의 조형물을 세우고, 폐교된 비토초등학교를 고전문학 및 어촌생활문화 체험공간으로 조성할 것이라는 군요.

하지만 <별주부전>의 무대는 이미 몇 해 전부터 충남 태안으로 알려졌답니다.
태안군은 <별주부전>의 무대로 남면 원청리를 주장하고, 유래비를 세우고 관련 축제도 계획하고 있다더군요.
두 자치단체 사이에 <별주부전> '원조 시비'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네요.

역사적 인물이나 옛이야기 주인공의 연고 시비가 적지 않습니다. 심청과 홍길동 등등이 그러하지요.
논개의 출생지와 신분을 놓고 경남 진주시와 전북 장수군이 줄다리기를 해온 것도 그 보기의 하나입니다.
진주에선 '진주 부근의 천민 출신 의기'라고 주장하는 반면, 장수군 쪽은 '장수군 장계면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진주성전투에 지원간 경상우도 우병마절도사 최경회 장군의 후실'이라고 맞서 왔던 거에요.

다른 인물은 또 그렇다고 하더라도, 천하의 오잡놈과 오잡년이란 변강쇠와 옹녀의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좀 무엇하기도 합니다.
아니, 남다른 개성과 특기(?)를 지닌 인물이기 때문에 관광상품성은 더 뛰어날는지도 모르겠군요.
변강쇠와 옹녀가 지리산속에 들어와 살았던 것은 분명한데, 그곳이 남원 땅이냐, 함양 땅이냐에 따라 토산품이나 관광캐릭터 사업 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변강쇠 줄다리기'는 남원과 함양의 민속주 제조 회사에 그치지 않고, 남원시와 함양군 두 지자체로 이미 비화되고 있답니다.
두 지자체의 변강쇠에 대한 집착이 두드러집니다.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확산될 것인지도 관심사가 아닐 수 없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