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2)

by 최화수 posted Feb 1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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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태식님의 밝고 환한 웃음!
필자에게는 참으로 안도와 기쁨을 안겨주는 웃음이었습니다.
1989년 5월7일, 필자는 노고단에서 피아골대피소로 내려와 있던 함태식님을 만나고자 그날 아침 달궁에서 출발하여 반야봉을 넘어 피아골을 찾아갔었어요.
'노고단 터줏대감'이 노고단에서 피아골로 밀려난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 것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지요.
하지만 그이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이는 술기운으로 맑은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시각이 고작 오후 3시쯤이었는데...!

그런데 왕시루봉의 함태식님은 피아골의 술에 쩌려 있던 그이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이는 싱글벙글 웃으며 나의 손을 끌고 왕증장 부엌으로 가는 것이었어요.
좁은 부엌에선 그이를 돕고 있는 한 여성 산악인이 취나물을 된장에 버무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여기 온다는 연락을 받고 아침에 부드러운 취나물을 일부러 뜯은 거요. 자아, 이 산나물로 무애주 한 잔씩을! 카아~!"
"카아~!"
왕시루봉 긴 능선을 뒤덮은 철쭉 화원을 헤치고 천상인냥 오른 왕시루봉, 미처 땀을 훔칠 겨를도 없이 그이가 내미는 됫병 소주의 톡 쏘는 맛과 된장으로 버무린 취나물의 상큼한 향기라니...!

함태식! 그이는 지리산, 특히 노고단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지요.
구례에서 태어난 그이는 초등학교 소풍 때 처음 노고단에 올랐는데, 이 때 벌써 어린 소년의 가슴에는 '노고단 사람'이 되고자 하는 어떤 결의가 새겨졌나 봅니다.
전쟁이 끝난 뒤 그이는 노고단으로 올라 잿더미로 변한 서양 선교사 수양촌을 지켜보았습니다.
그이는 벽체만 남아있는 한 건물을 발견, 산장으로 복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산장 형태로 갖추어진다면 아주 이곳에 눌러앉아 살기로 작정한 것이지요.

그런데 벽체만 남은 건물을 어떻게 산장 형태로 복구를 할 수 있을까?
함태식님은 고심 끝에 구례중학교 교장을 찾아갔답니다.
학생들이 노고단에 오를 때 섬진강 모래 한 줌씩을 날라다 줄 것을 부탁했어요.
그러나 당시엔 노고단을 찾는 학생이 적어 한 줌씩 나르는 모래가 늘어나기는 커녕 바람에 날려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낙심한 그이는 노고단산장 건립 계획 꿈을 포기하고 구례를 떠났던 거에요.

함태식님은 연세대를 거쳐 인천의 조선기계에 근무하고 있었어요.
1971년 노고단에 40평 짜리 단층 슬라브의 무인산장이 세워졌다는 소식을 접한 그이는 직장도 팽개치고 당장 노고단으로 달려왔습니다.
세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산장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답니다.
유리창은 모조리 깨어지고 없고, 건물 내부에서 불을 지펴 벽과 천장이 새까맣게 그을려 있는가 하면, 실내에 쓰레기며 분뇨가 쌓여 악취가 진동을 하고...

하지만 그이는 그대로 돌아설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이 무인산장의 관리인이 되겠다고 자청하고 나선 그지요.
실제로 그이는 그 다음해인 72년 8월 단신 노고단을 다시 찾습니다.
그이는 피폐한 산장을 보수하고 주변을 말끔하게 정리합니다.
그이는 날이 어두워지면 장명등을 산장 앞에 내걸고 길잃은 등산객의 등대수가 되었어요. 그이는 등산로 안내는 물론, 조난객 구조 작업에도 헌신하게 됩니다.

그런데 잠깐!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대목 한 부분이 있습니다.
함태식님은 노고단산장의 최초의 관리인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이에 앞서 이 산장 안에서 장사를 하며 지내던 이가 있었습니다.
구례 산동 사람인 이종기 노인과 그 부인이었어요. 이 노인은 천왕봉 토굴산장의 김순룡 노인처럼 전란이 평정되자 재빨리 노고단으로 올라와서 사탕, 소주, 성냥, 음료수 등을 등산객들에게 파는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게지요.

함태식님이 노고단산장 관리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인산장 안에서 장사를 해온 이종기 노인 내외를 하산시키는 일이 먼저 필요했습니다.
함태식님은 지리산 생활을 돌아보는 <단 한 번이라도 이곳을 거쳐간 사람이라면>이란 책을 펴냈습니다.
그 책에는 자신에게 떼밀려 하산하게 되는 이종기 노인의 얘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것은 그로부터 16년 후,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영의 새 노고산장에 떼밀려 피아골 대피소로 내려가는 자신의 운명을 미리 보게 되는 것이나 같았으니, 아주 기가 막힌 일이라고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