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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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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필자는 왕시루봉 외국인 선교사 수양촌을 집중적으로 찾게 됩니다. 1962년에 세워진 수양촌,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흐른 이후 그 곳에 발걸음을 들여놓게 된 거에요.
노고단과 달리 왕시루봉 선교사 수양촌은 한결같이 전형적인 목조 오두막으로 세워졌습니다. 겉보기로는 질박하면서도 그 내부 구조는 대단히 과학적이었어요. 채광 방음 방풍 방광은 물론, 벽난로 등 아름답고 실용적인 서양식 주거 공간이 돋보였습니다.

1992년, 필자가 집중적으로 왕시루봉을 찾게 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잠시 미뤄두기로 합니다. 그에 앞서 존 A 린튼, 한국명 인(印)요한과 수양촌과의 관계를 조금 더 언급하겠습니다.
왕시루봉 선교사 수양촌은 필자가 찾았을 때는 건립 30년이 지났고, 그 사이 이미 건립 목적을 상실하고 있었습니다. 한여름철 풍토병으로부터 생명을 구하고자 해발 1,200미터의 이 높은 곳에 오두막집들을 지었지만, 그동안 의학의 발달 등으로 서양 선교사들은 더 이상 수인성 질환 등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왕시루봉 선교사 수양촌을 세웠던 선교사들도 본국으로 돌아갔거나, 이 세상을 떠난 이도 있었지요.
이렇게 하여 선교사들의 발걸음이 뜸해지면서 왕시루봉 선교사 수양촌은 점차 썰렁해지기 시작했어요. 무엇보다 빈집으로 비워둔 채 거친 풍상을 맞고 있던 오두막들은 급속도로 피폐해지기 시작한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천정이 뻥 뚫려 하늘이 올려다보이거나, 벽면의 판자가 썩어 저절로 떨어져 나가는 경우도 있었지요.

인요한은 아버지 인휴(印休)가 주축이 되어 세운 왕시루봉 선교사 수양촌을 지켜내는 것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자,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는 묘안을 짜냈지요. 신앙심이 깊고 신망이 높은 산악인이나 산악사진작가들에게 오두막을 임대하는 것이지요. 임대 조건으로 오두막의 보수 유지 관리 책임까지 물론 함께 떠맡겼어요.
지리산 사진작가 임소혁의 '에이텐트'도 바로 그렇게 탄생한 거에요.

인요한 가족이 사용하는 오두막 바로 옆 오두막은 부산의 산악인이자 '지리산 종주 챔피언'인 '자이언트' 이광전님이 임대하여 사용했습니다. '지리산 곰' 여승익 등 부산의 젊은 산꾼들이 섬진강변 단산마을에서 이곳까지 무거운 짐들을 날라 오두막 곳곳을 보수하고는 했어요.
필자는 이광전님의 이 오두막에서 인요한은 물론, 그 가족들과 얘기를 나누고는 했습니다. 인요한의 가계(家系)가 우리나라와 맺은 특별한 인연도 그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1959년과 60년, 61년의 3년 동안에 걸쳐 인휴 등은 노고단이 아닌 제2의 선교사 수양촌 장소 물색을 거듭했다. 그들은 현재의 질매재~왕시루봉 등산로 가운데 유일한 샘인 싸리샘 일원을 비롯하여 10여 곳의 후보지를 찾아냈다. 이들 후보지에 대한 정밀 답사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왕시루봉 서남쪽 기슭 현재의 자리가 결정됐다.
이곳은 대학연습림 지역으로 키 큰 잣나무 등이 하늘을 뒤덮고 있는가 하면, 넓은 초원의 개활지도 열려 있다. 무엇보다 계곡이 없는 데도 맑고 시원한 샘물이 콸콸 솟아나고 있다. (중략)
1961, 62년 2년 동안 새로 옮긴 자리에는 교회 1동, 창고 1동, 10동의 소담한 오두막이 세워졌고, 야외예배당과 간이 풀장, 테니스 코트도 마련됐다. 수양관은 모두 목조 건물로 노고단 시절보다 규모가 축소되고 질박하게 세워진 것이 특징이다.
이곳에서 새 수양관을 짓고 있을 때 아버지 인휴의 등에 업혀 해발 1,200미터를 오르내렸던 어린이가 곧 지금의 인요한이다. 그는 지난 84년 아버지 인휴가 교통사고로 타계하고, 형인 스티브마저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재직하게 됨으로써 자연히 왕시루봉 선교사 수양관을 계승한 주인공이 되었다.' (필자의 졸저 <지리산 1994년>)

인요한의 친조부 윌리엄 린튼은 장인의 뒤를 이어 주로 목포와 광주 등 호남지역에서 선교활동을 벌였지요. 그는 목포의 경우 사형수 처형장으로 귀신이 나온다며 버려놓은 땅을 사서 선교부를 세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인요한의 아버지 인휴(휴 린튼)는 한국전쟁 참전 이후 전남 광양군 골약면에서 대대적인 간척사업을 벌여 옥토 50만평을 개간했습니다. 그는 또 순천 결핵요양원을 설립하여 의료사업에도 신명을 바쳤고, 무엇보다 농어촌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열성적인 선교활동을 벌였다는 군요.

인휴는 지난 84년 순천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졌는데, 당시 앰뷸런스 등 비상구급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의 아들 인요한은 그 사실을 무척 애통해한 끝에 사비 5천5백만원과 친지로부터 거둔 성금 5천만원을 합쳐 자동차 안에서 응급진료 수술이 가능한 앰뷸런스를 도입, 순천소방서에 기증하고, 연인원 89명에게 1년 동안 미국 기술자로부터 교육실습을 받도록 뒷받침하기도 했지요.

인휴의 한국에서의 결핵퇴치사업은 현재 그의 아들들에 의해 북한에 의약품을 보내주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진 벨재단 이사장인 스티브 린튼(컬럼비아대 교수, 인요한의 형)은 재단을 통해 6천명 분의 결핵약품과 식량 1만여톤, 액스레이 검진차 4대 등을 북한에 보냈어요.
인요한 역시 응급 처치가 가능한 특수 앰뷸런스와 결핵 예방 및 치료제, 액스레이 촬영 필름 10만장을 북한에 보냈답니다.
이들 형제의 부인은 모두 한국인(인요한의 부인은 칫과의사)으로 남편을 대신하여 북한에 다녀오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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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전 2004.01.09 17:09
    예전에 순천의 의료기관들이 빈약해서 교통사고 환자들이 광주로 이송 도중 많이 숨졌다고
    합니다. 인선생님이 아버님을 그렇게 잃으시고 슬픔이 상당하셨겠어요. 지금은 순천에
    의료기관들이 많이 확충 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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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바다 2004.01.09 18:30
    예.. 교통사고는 정말 안타까움을 던져 주는군요... 아직도 그 가문의 업으로 봉사활동이 이어지고 있다니 고개 숙여질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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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거사 2004.01.10 10:38
    지리산에 담긴 이국인의 뜻있는 행적이 또한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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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도 2004.01.10 12:18
    린튼가문 의 한국사랑은 정말이지 소설같이 아름답군요.......보존유지하여 지리산 또하나의 전설으로남겨야 합니다....... 고개숙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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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없는여행 2004.01.11 00:34
    스티브린튼박사님 역시 한국인보다 더 열정적으로 한국사랑을 펼치시는 분이지요. 그 인품과 열정은 존경스럽고 아름다웠습니다. 특히나 북한동포돕기운동에 의약품과 식량 전달뿐 아니라 이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공론화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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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해 봉 2004.01.11 09:48
    인요한과 형스티브린튼이 그렇게 큰일을하고 있었군요.처음들어보는 생소한 이야기같고 4대에걸쳐서 우리를위한 선교활동에 머리숙여 감사드리고 싶습니다.이들가문에 노벨상을 드려야할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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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도옹 2004.01.11 21:42
    길게 이어지는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합니다. ^^* 최화수님 tv 제작자와 의논한번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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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 2004.01.12 13:09
    린튼일가의 한국사랑은 종교적인 신념위에 한단계를 더 초월하는 그 무엇이 있는듯 싶게 감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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