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5907 댓글 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최참판댁에서 내려다 보이는 악양벌


박경리님의 대하소설 <토지(土地)>.
이 대작 소설로 하여 지리산 형제봉 자락의 평사리 상평마을, 섬진강과 악양벌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 '최참판댁'이 세워졌습니다. 2,880평의 부지에 사업비 30여억원을 들여 안채, 사랑채, 별당채, 행랑채, 문간채, 사당, 초당 등등, 방금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고대광실 한옥 10여채가 들어섰습니다.
소설속의 허구가 현실의 건축으로 둔갑(?)을 한 것이지요.

소설 <토지>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평사리의 최참판댁도 구경꾼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최참판댁은 날아갈 듯한 한옥들 자체가 구경거리가 되고도 남지요. 산청군 단성 땅에 성철 종정 생가를 '삐까번쩍하게' 지어놓은 것에 질 수가 없다는 듯이 하동군은 악양 땅에 최참판댁을 으리으리하게 지었습니다. 하지만 무슨 참판댁이 궁궐보다 더 으리으리한가요?

"들이 넓어 만석꾼 부잣집도 생겨났을 것이다"
최참판댁에서 악양벌을 내려보며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난날엔 무려 15정보에 이르는 동정호(洞庭湖)가 평사리 일대를 둘러싸고 있었지요. 1965년에 섬진강 제방을 쌓았으니 그 전에는 늪지대였지요. 또 섬진강이 곧잘 범람했으니 평사리에는 만석꾼은 커녕 백석꾼도 나오기 어려웠을 법합니다.

작가 박경리님은 이곳을 찾아본 적도 없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더군요. 일부 인사들은 작가가 실제 상황과 다름없이 정확하게 평사리를 그려냈다고 경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악양벌을 동학혁명 당시의 것으로 착각한 거에요. 소설의 허구를 현실세계처럼 형상화했다고 하여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최참판댁'을 으리으리한 궁궐처럼 지어 역사의 실체를 왜곡시켜도 좋을 이유란 없겠지요.

소설 <토지>의 무대를 복원하면서 최참판댁만 궁궐처럼 만들어놓은 것도 문제입니다. 평사리의 기존 마을은 돌담과 담쟁이 넝쿨 등이 뒤엉켜 독특한 정취를 풍겨줍니다. 최참판댁만 환상적으로(?) 지을 것이 아니라, 소설 속에 함께 등장하는 용이, 김서방, 김이평, 봉순네, 월선네 등의 집도 재현하여 당시의 시대 상황에 걸맞는 민속촌으로 가꾸었다면 더 좋았을 거에요.

섬진강 주변에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 먹거리를 행정관청들이 머리를 짜내 잇달아 등장시키고 있지만, 반대로 이상한 바람에 밀려 섬진강을 등지고 떠나가는 것도 있더군요. 최참판댁 같은 으리으리한 집이 엄청난 돈을 들여 새로 세워지는 한편으로 섬진강을 가장 닮고자 하던 '두레네집'은 그만 섬진강에서 밀려나 저 멀리 추풍령으로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두레네집'이 2003년 8월25일 지리산을 떠나갔지요. 왕시루봉 산줄기가 흘러내려 한수내와 더불어 섬진강에 발을 담그는 곳에 자리한 두레네집, 전남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토지초등학교 송정분교가 문을 닫은 뒤 그 자리에 '자연생태학교'의 꿈을 안고 들어섰던 두레네집, 섬진강과 지리산의 새로운 명소이자 지리산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의 정겨운 쉼터가 되었던 두레네집!

지리산을 좋아하는 이들로부터 너무나 사랑을 받았던 '두레네집'은 그러나 자연생태학교의 꿈도 채 펼쳐보기 전에 그만 지리산과 섬진강에서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두레네 가족의 뜻이 아니라, 힘있는 사람들의 농간(?)에 떼밀려 떠난 것입니다. 두레네 가족이 지리산과 섬진강을 떠나는 그 심정이 어땠을까요? 두레네 집 가장 안윤근님이 '두레네 글방'에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이란 글을 올렸었지요.

[옅은 미인의 눈썹처럼 가녀린 달이 걸려있는 섬진강가에 나와 있습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산허리를 가로지르고
달빛과 그 불빛이 어우러진 강물은 물비늘 반짝이며 흘러가는가 봅니다.
아내와 강변에 나와 앉아있는 이 밤은 나에게 우울한 날이자
어찌보면 새로운 기회에 도전해보리라는 다짐을 갖는 밤입니다.
저는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윤동주 시인의 독백을 가슴속에 벼리며 살고자 했습니다.
간도 용정중학교에 방문했을 때 그의 시비를 읽고 또읽고 그의 체취가 남아있을는지도 모를 재래식 화장실까지 기웃거렸던 애틋함을 가졌었지요.
내 하는 일이 순리에 어그러지지 않게 되기를 늘 소망했었습니다.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나 이제 큰 강 건너 떠났다고 대답하라"

제 마음은 늘 이곳 지리산과 섬진강이라는 산하에 있고자 했으나
이제 이 산 기슭과 강 언저리를 떠나야하는가 봅니다.
대학시절 그렇게 불렀던 양성우 시인의 싯귀가 오늘처럼 가슴절절한 날도 드믄 것 같습니다
잡고 싶지만 잡히지 않고 떠나는 애인처럼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순리적인 방법으로 있고자 했으나
저의 뜻과는 다른 결과물을 안고 말았답니다.
(후략)]
                
두레네집--송정분교

섬진강의 그 아름답던 그림에 얼룩이 번져나고 있습니다.
섬진강의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서정을 밀어내고, 섬진강과 어울리지 않는 풍경들이 늘어나면서 그 얼룩 자국은 나날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섬진강의 아름다운 그림에 얼룩이라니요, 너무 안타깝지 않습니까!
  • ?
    허허바다 2003.11.10 19:54
    그렇군요, 한탕주의.. 경쟁의식.. 우리 문화 수준이 이러한 단어로 먼저 채워져야 하는 상황인 것 또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오로지 사업성 그것도 거의 폭리에 가까운 상업적 사기에만 관심이 쏠려 문화라는 것을 하나의 장식물로만 생각하는 우리의 민족자본.. 쓸쓸함만 남아 있는 송정분교.. 거기엔 또 무슨 괴물이 들어 설려나요.. 참! 안타깝습니다...
  • ?
    여신(麗蜃) 2003.11.10 19:56
    허구가 진실보다 더 매력적인가 봅니다...이상과 현실 상상과 실제처럼 말입니다...작은 것에 공허해지지 않는 순수함이 그리워집니다...내 마음이 순수하여 생긴 섬진강 애정이 세속의 욕심에 속절없이 허물어 내리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 ?
    김현거사 2003.11.10 20:45
    '토지' 때문에 악양에 건물 세운 것은 그렇다쳐준다고하더라도,건물이 초당만 제외하곤 전부 운치없는 날림이라는 것은 정말 문제더군요.최화수님이 지적한 섬진강 다리와 더불어 몰취미의 쌍벽...
  • ?
    오 해 봉 2003.11.11 00:20
    이글을 읽으며 왠지가슴이 찡하네요.
    어린 서희한테 혼나며 서희와 더불어 성장하던 길상이.넉넉한 마음씨의 용이.연곡사.지리산.
    소설속의 최참판댁.
    평사리가 그래도 없는것 보다는......

    무엇보다 한수내 송정분교를 타의에 의해 추풍령으로 떠나버린 두레네집 이야기는 지리산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허전함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두레네집은 우리들 가슴 속에 언제까지나 자리잡고 있지 않습니까.
  • ?
    솔메 2003.11.11 09:30
    허구의 표본인 최참판댁을 보고 돌아나오며 골목길의 '박적시암'(바가지로 퍼내는 우물) 앞쪽, 돌담집의 홀어미가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한 해 전에 돌아가신 남편이 경운기로 옮겨놓은 참나무표고목에 자라고있던 표고버섯을 보며 눈물바람을 하던 모습이 눈에 아슴합니다.
    그이는 마당에 열려있던 단감을 직접따서 맛보라며 헛간에서 남편의 체취가 물씬한 사다리를 꺼내주던 인정많은 시골아지메였습니다.
    작년 요맘때의 일입니다.
    섬진강이 더 이상 얼룩이 번져나지않고 흐르기를 저도 빌어봅니다.

    아름다운 섬진강에 더이상 얼룩이 번져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 ?
    최화수 2003.11.11 14:36
    moveon 정진원님이 글 앞뒤에 섬진강과 악양벌 사진을 실어주셨네요. 허허바다님의 사진 등으로 칼럼의 부족한 자리를 채우게 되어 얼마나 고마운지요. 솔메거사님, 김현거사님, 오해봉님, 산유화님, 여신(麗蜃)님, 허허바다님의 좋은 글에도 감사드립니다,
  • ?
    두레아빠 2003.11.12 21:27
    아내가 읽다 눈물을 흘리고 일어서길레 왜그러나 싶어 모니터를 보니...선생님의 글에서 두고온 강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산과 물처럼 변하지않는 사람의 절개가 더욱 그리운 요즘 선생님의 변하지 않는 깊은 애정에 감사드립니다.
  • ?
    까막 2003.12.10 15:29
    제 마음 속에도 뜨거운 것이 흐릅니다.
    두레아빠 글이 최화수 선생님의 글에 액자처럼 들어가더니 더욱 절절한 글이 되는군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2 얼룩 번져나는 '섬진강 그림'(1) 8 최화수 2003.10.27 5492
191 얼룩 번져나는 '섬진강 그림'(2) 9 최화수 2003.11.03 5453
» 얼룩 번져나는 '섬진강 그림'(3) 8 최화수 2003.11.10 5907
189 왕시루봉의 '선교 유적지'...(1) 9 최화수 2003.11.25 8816
188 왕시루봉의 '선교 유적지'...(2) 10 최화수 2003.12.12 7003
187 왕시루봉의 '선교 유적지'...(3) 6 최화수 2003.12.28 8768
186 왕시루봉의 '선교 유적지'...(4) 8 최화수 2004.01.09 8793
185 왕시루봉의 '선교 유적지'...(5) 5 최화수 2004.01.20 10526
184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1) 4 최화수 2004.02.10 9454
183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2) 4 최화수 2004.02.15 6863
182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3) 3 최화수 2004.02.26 5826
181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4) 5 최화수 2004.03.07 5820
180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5) 2 최화수 2004.03.17 5699
179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6) 2 최화수 2004.04.09 5747
178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7) 2 최화수 2004.04.16 5186
177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8) 4 최화수 2004.05.03 5677
176 잔치잔치, 피아골의 대축제(1) 3 최화수 2004.05.16 5725
175 잔치잔치, 피아골의 대축제(2) 4 최화수 2004.05.19 5185
174 잔치잔치, 피아골의 대축제(3) 4 최화수 2004.05.23 5625
173 잔치잔치, 피아골의 대축제(4) 5 최화수 2004.06.02 561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4 Next
/ 14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