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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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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미륵산의 케이블카 시설물. 이 산의 정상은 고작 해발 461m로 용화사 입구에선 어느 쪽으로 오르든지 도보로 1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그런데도 더 수월하게 오르고자 이런 시설물을 정상 턱밑에까지 설치했다. 지리산에도 케이블 카 설치를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니...!
..............................................................  

1983년 여름, 나는 처음으로 지리산 단체 종주산행을 시작했다.
남녀 희망자가 40여 명에 이르렀다. 대부분이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였다.
불문곡직하고 남성과 여성을 적절하게 섞어 조(組) 편성을 했다.
막영과 취사 장비 등 모든 준비물은 조 단위로 마련하고, 산행도 조 단위로 하게 했다. 낙오자가 생길 경우 조장 인솔로 조원 전체가 비상탈출을 하도록 규정했다.

처음 만난 젊은 남녀라도 종주산행을 하는 동안 ‘한 지붕 한 가족’이 되었다. 한 텐트에서 잠자고 밥도 함께 지어 먹어야 하니까.
당시에는 텐트와 버너 등의 장비는 물론, 주부식(主副食)까지 무거운 것 일색이었으므로 그 운반을 위해서는 남녀 같은 비율로 조를 편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런 것에 종주산행의 또 다른 묘미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조 편성이 되면 조원들끼리 준비물을 분담했다. 텐트와 취사도구 등은 주로 남성이, 주부식은 여성이 맡았다.
여기에서 웃지 못 할 해프닝도 빚어졌다.
‘찌개거리’를 맡은 한 아가씨가 자갈치시장에서 싱싱한 ‘생선’을 구입, 배낭에 넣어 지리산 주능선까지 메고 온 것이다.
그렇지만 생선은 폭삭 썩고 말았다. 여름날의 그 폭염을 생선이 어찌 이겨내겠는가.

당시에는 산행 채비를 제대로 갖추지도 않고 지리산 주능선에 오른 이들도 적지 않았다.
토끼봉에서 까까머리의 한 젊은이가 나에게 다가와 대뜸 이런 제의를 했다.
“아저씨 배낭을 대신 메어줄 테니 밥만 좀 먹게 해줄 수 없겠수?”
나는 가벼운 내 배낭이 아니라 추리소설가 김성종 님의 무거운 배낭을 부탁했다. 종주산행이 처음인 그이의 지게배낭에는 필요이상 너무 많은 짐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발이 빠른 까까머리 청년을 한번 시야에서 놓친 우리는 그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불현듯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불길한 예감….
‘배낭 도둑’에게 당한 것이로구나!
나는 김성종 님의 배낭을 메달라고 부탁한 ‘원죄’가 걱정이 되어 어찌 할 바를 몰라 했다.

하지만 괜히 남의 선심까지 의심한 나의 또 한번의 잘못을 부끄러워해야만 되었다. 그 까까머리 청년은 야영지인 세석고원에 먼저 도착하여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청년은 제대를 한 기념으로 지리산을 찾기는 했는데, 장비가 없어 맨몸으로 주능선에 올랐다는 것이다.
건전한 청년을 괜히 도둑으로 의심을 한 부끄러움이 참으로 컸다.

우리는 그로부터 매년 여름 어김없이 단체 지리산 종주산행을 했다.
지리산 주능선에 지금과 같은 현대식 산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우리들은 ‘한 지붕 한 가족’의 갖가지 해프닝을 연출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어렵고 힘들었던 것일수록 더 그립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살아난다.
‘멀고도 먼 지리산’이었기에 그 하나하나의 삽화들은 더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이리라.

지리산을 찾아다닌 세월이 어느새 30년을 훌쩍 뛰어넘었다. 한번 찾아가기에도 참으로 멀고 먼 지리산 길이었다.
동족상잔의 비극, 빨치산 투쟁이 안겨준 어두움의 공포 때문에 지리산은 유독 더 멀리 생각되었던 것도 같다.
그 지리산이 요즘 부쩍 가까워졌다. 산허리와 능선을 자르고 도로가 개설되었다.
요즘은 그것도 모자라 천왕봉 턱밑에까지 케이블카를 놓겠다고 야단들이니….
  • ?
    푸르니 2009.03.18 15:56
    여산 선생님이 지리산 등반 산악회를 오랫동안 이끄셨다는 얘기 도봉 스님께 잠깐 들었습니다! 요즘은 안 하신다고 하시던데요...
    천왕봉 가까이에 케이블카 설치는 저도 정말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 ?
    최화수 2009.03.18 17:51
    <우리들의 산>이라는 좀 독특한 커뮤니티를 이끌었습니다. 지리산 관련 글을 집중적으로 실은 책을 다달이 펴냈으니까요.
    그 책 이야기도 앞으로 곧 늘어놓을 생각입니다.

    도봉 스님은 <우리들의 산>을 할 때 알게 되었고, 1990년에 펴낸 <지리산 365일> 3권에 집중적으로 기술이 돼 있습니다.
    도봉 스님과의 인연이 계속 이어져 '문수암 사랑회'가 석축을 고쳐 쌓는 일을 돕기도 했어요. 스님이 부산에 오시면 우리 집에서 하루 머무르시기도 합니다. 푸르니 님 내외분과 함께 멀잖아 부산에서도 스님을 한번 뵐 날이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 ?
    푸르니 2009.03.20 10:58
    선생님, 지리산 365일은 이미 품절되었네요. 검색해 보니까요...

    그리고 篤志晩悟 는 퇴계 선생이 처음으로 하신 말인가요?
    불가에서 전해오는 말이 아니구요?

    제가 초짜 불교인이라서 그날 혹시 스님께 실례를 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습니다^^
    저는 불교를 수행 또는 마음과학으로 이해하고 있거든요!
  • ?
    최화수 2009.03.20 15:59
    푸르니 님, <지리산 365일>은 절판이 된 지 오래 됩니다. 우리 집에 여러 권을 여분으로 뒀었는데, 인터넷이 활성화 되면서 책을 달라는 이들이 많아 모두 나눠주고 지금은 나도 겨우 한 권씩만 가지고 있습니다.

    '篤志晩悟'란 말을 누가 처음 했는지 모릅니다. 이 말의 정확한 뜻조차 잘 모르겠으나 '대기만성(大器晩成)'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독지(篤志)란 도탑고 친절한 마음이고, 만오(晩悟)는 늦게 깨닫는다는 뜻이니 대기만성을 떠올려 줍니다.

    하지만 불교 전문용어일 수도 있겠네요. 나는 불교 경전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 없습니다. 아무래도 스님에게 직접 여쭤봐야 하겠네요.
  • ?
    푸르니 2009.03.20 17:35
    도마마을에서 삼불사 가는 길에 있던 그 폐쇄된 것처럼 보이던 초막을 선생님께서 혹시 아시나 해서 한번 여쭤 봤습니다.

    저는 대충 '깨달음에 대해서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뜻은 굳건하게 지녀라...초지일관해라...' 정도로 생각했는데 '대기만성' 과 정말 비슷하네요!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인터넷서점에 검색해 보니까 선생님께서 내신 책들이 다 품절로 나오던데요
    일단 지리 마당에 있는 옛 글들 읽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하겠습니다.
  • ?
    푸르니 2009.03.24 18:30
    다시 잘 검색을 해서 '빛깔있는 책들' 시리즈로 나온 '지리산' 책 주문해서
    받아서 읽고 있습니다^^
    요즘은 노고단-천왕봉 거리를 25.5 키로라고 하는데 그때는 45 키로라고
    하셨나 봐요. 혹시 반야봉 왕복 거리를 포함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아직 반야봉은 못 가봤어요. 칠불암에 대해서 써놓으신 글 읽으니까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남부능선 쪽도 못 가봤어요.
    거림으로만 한번 내려와 봤구요.

    28일 산행은 불참인데 다음에 지리산 갈 때를 대비해서 문자로 제 전화번호
    보내 놓겠습니다. 부끄러워서 직접 전화는 하기가 좀 그래서요^^
    아직 진원님하고도 문자만 주고받고 있답니다~~~
  • ?
    최화수 2009.03.25 11:35
    푸르니 님, <지리산 365일>을 제외한 다른 지리산 관련 책은 드릴 수 있습니다. 28일 산행 불참이면 문자 보내주기 바랍니다.

    노고단~천왕봉 거리는 종래 45킬로미터라고 했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1997년 5월 이를 32.3킬로미터로 수정발표했고, 2001년 1월 다시 25.5킬로미터로 수정발표했습니다.
    여기 쓰고 있는 '최화수의 지리산 산책' 제210, 211호(2007년 11월1일, 11월12일)의 '늘었다 줄었다 고무줄 산길'(1) (2)가 바로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을 쓴 것이지요. 참고삼아 한번 읽어보기 바랍니다.
  • ?
    해무 2009.03.26 15:16
    28일 산행도 무사히 잘 다녀오시길 바라며 봄바람 치곤 꽤나 거친듯한
    바람미 며칠째 불고 있습니다 여긴...봉래산을 어느쪽으로 가시든 한창
    벚꽃들이 만개할 즈음이라 아련한 봄내음을 만끽할수 있는 산행되시길
    바랍니다...건강하시구요 선생님
  • ?
    해무 2009.03.26 16:41
    모처럼의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지린 오두막한채를 꿈꾸다를 1-50편
    까지 읽었습니다. 그간의 많은 꿈들과 시련과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
    가득하지만 결국은 마음속 한켠의 오두막 한채가 선생님이 진정으로 바라던 오두막집이 되버린게 아닌가 하는 소견입니다만..
    아니면 너무 난해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건지요 제가..
  • ?
    최화수 2009.03.26 17:29
    해무 님, 건강하게 근무 잘할 것으로 믿습니다. 문인들과의 봉래산 산행이 기대가 됩니다. 부산의 다른 산에서 늘 바다쪽으로만 바라보았는데, 봉래산에서 반대로 지켜보는 그림도 아주 좋더군요.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지리산 오두막 한 채'는 그야말로 꿈에서 꿈으로 끝나버리고 말았지요. 하지만 가슴 한 편에는 오히려 더 좋은 지리산 오두막이 자리하고 있는 듯합니다. 언제 지리산에 함께 가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 ?
    해무 2009.03.30 17:45
    봉래산의 봄자락은 어떻하였는지요 선생님??
    잘다녀오셨으리라 믿으며 해운대 장산에도 봄은 여지없이 찾아왔지만
    부는 바람은 쌀쌀하기 그지없습니다...
  • ?
    최화수 2009.03.30 20:00
    봉래산 봄빛이 아주 좋았습니다. 산정에서 지켜보는 부산항과 바다 정경이 아주 인상적이더군요.
    영도 목장원 앞바다에 화물선이 너무 많이 떠있더군요. 불황의 그늘을 짐작하게 해주었지만...!
    산행이 끝난 뒤 동삼중리 횟집에서 봄도다리 맛도 즐겼습니다. 다음번 산행에는 해무 님도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
    서화숙 2009.03.31 15:47
    최선배님, 90년쯤 인터뷰한 기자입니다. '우리들의 산'에 원고 써달라고 한 청탁을 지키지 못한 게 아직도 빚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때는 스스로에게 너무 엄정해서 원고 한 편 쓰려면 머리카락을 죄 뜯어야 했던 시절이라...^^;;;)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되어 가끔 들여다봅니다. 여전히 지리산을 사랑하면서 살고 계시니 존경스럽습니다.
  • ?
    최화수 2009.03.31 16:28
    서화숙 편집위원님! 참 놀랍고 반갑습니다. 여기 찾아주신 것도 그렇고, 이름을 잊지 않고 있는 것도 그렇습니다. '서화숙 칼럼'을 읽으며 나 혼자만 서 위원 님을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답니다.
    그러잖아도 여기 '지리산 통신'에 '지리산 글 누가 먼저 썼나?'를 쓰고 있는데, 서화숙 기자님이 김경렬 이종길 최화수 셋을 지리산에 불러모아 인터뷰를 했던 얘기를 하고자 하던 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때 잘못한 게 너무 많아 지금도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언제 한번 서 위원님 뵐 수 있어야 할 텐데...!
  • ?
    서화숙 2009.04.01 02:18
    어이쿠, 최선배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정말 잘못한 게 있는 줄로 알겠습니다. ^^
    제가 인왕산과 북악산 옆에서 사니, 혹시나 이렇게 작은 산도 등산하시면 서울 오실 때 연락주세요.
  • ?
    최화수 2009.04.01 12:03
    서 위원님, 제가 큰 산만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은 부산의 작은 산들을 더 좋아합니다.
    전국의 웬만한 산은 다 찾았는데, 이상하게도 서울에 있는 산에는 발길이 잘 닿지 않더군요.
    서 위원님, 가족과 함께 부산에 오시면 꼭 전화 주십시오. 나중에 따로 메일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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