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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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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 죽은 소나무뿌리가 기어다니고 /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 선암사 해우소 앞 / 등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시인의 '선암사'란 유명한 시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고 했다.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라고 했다.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것. 또한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단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야 하겠다. 그리고 등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실컷 통곡해볼 만도 하겠다.
이 시를 인용한 필자의 글을 본 'samchi92'란 분이 또 다른 한 시인의 '선암사 해우소'란 시를 올려주었다.

'주머니 불룩한 / 두개 불알 / 천길 단애(斷涯)에 걸려 / 풍경(風磬)처럼 / 달랑대는 뒷간 / 지독히 묵은 바람은 / 아득한 미명(未明)의 어둠 깨쳐 / 천년 너머 분다. 몸뚱이 안에 들끓는 / 백 천 가지 욕망 / 천년 바람에 곰삭이고 / 버섯처럼 피어나는 / 번뇌의 운해 헤치려 / 한번 용 쓰는 찰나(刹那) / 허공을 가르는 / 후련한 해탈(解脫) / 바람은 제 풀에 놀래 / 풍경을 친다. 번뇌는 옛적에 날리고 / 통싯간에 감도는 / 천만년의 고독 / 뒷산엔 한여름 / 뻐꾸기 운다.'

성암 박문석(省巖 朴紋奭)님의 '선암사 해우소(仙巖寺 解憂所)'란 시다.
'두개의 불알이 천길 단애에 걸려 풍경처럼 달랑'거린다는 표현이 재미있다.
'몸뚱이 안에 들끓는 백 천 가지 욕망이 천년 바람에 곰삭이고, 버섯처럼 피어나는 번뇌의 운해 헤치려 한번 용 쓰는 찰나 허공을 가르는 후련한 해탈'이라거나, '통싯간에 감도는 천만년의 고독'이란 것에 담긴 의미도 큰 듯하다.
선암사 해우소 하나도 찾는 사람에 따라 이런 감정의 파노라마를 보이는 것이다.

선암사는 몇 해만에 다시 찾았지만 조계산 산길은 10여년만에 찾았다. 그 사이 선암사도 달라지고, 입구의 집단시설지구도 달라졌지만, 조계산 산길도 달라져 있었다.
순천에 사는 '귀비'님이 중간굴목으로 바로 오르는 길을 안내해 주었다. 그이 덕분에 처음 그 길로 갈 수 있었다.
선암굴목재~송광굴목재 사이의 보리밥집도 지난날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수백명이 몰려들어 붐비는데다 보리밥을 타려고 길게 줄을 짓고 서있는 모습이 진귀하기까지 했다.

보리밥집은 조계산의 으뜸 명소로 봐도 될 듯하다. 잘은 모르지만 휴일 하루에도 이곳의 두 보리밥집에서 배를 두드려가며 맛있게 식사를 하는 이들이 엄청난 인원일 듯했다. 그들에게 보리밥의 진미를 선사하는 것 자체가 축복받을 일이다.
그런데 보리밥 차례를 기다리느라 길게 줄을 짓고 서있는 이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불현듯 태백산맥의 '조계산 숯막' 생각이 떠올랐다. 염상진과 하대치, 그리고 안창민 등이 조계산 숯막으로 찾아드는 얘기가 스산하다.

천은사~태안사~선암사는 지리산 서부권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사찰 순례 코스이다. 화엄사나 송광사와 같은 대규모 사찰보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안고 있어 더 한층 산사(山寺)의 그윽한 멋이 넘쳐나고 있는 곳들이다.
사계절 어느 때나 굳이 불자가 아니더라도 나그네 누구나 찾아가볼만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하지만 '조계산 숯막'이 시사하듯이 이들 아름다운 사찰들도 6.25를 전후한 저 처절한 '지리산 투쟁'의 무대가 되어 엄청난 피를 흘린 곳이가도 하다.

태안사에는 능파각을 지나 아주 뜻밖의 탑과 마주친다.
사찰 경내에 특이하게도 충혼탑(忠魂塔)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높다랗게 세워놓은 현대식 조형물이어서 유서깊은 사찰 분위기와 어울리지가 않는다. 이 충혼탑은 전몰경찰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세워졌다.
사찰 경내에 충혼탑이 서있는 것은 곧 6.25 전후의 '지리산 투쟁'이 이곳에서도 얼마나 치열했던가를 웅변해준다. 태안사 지구에서 숨진 경찰관만도 100명이 훨씬 넘는다고 하니, 엄청난 비극이다.

지리산권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문화 유적을 둘러보는 것은 참으로 즐겁고 보람된 일이다. 지리산 산행 못지않게 지리산권 문화 답사에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우리의 땅에서 어쩌면 그토록 처절한 동족상쟁의 사투를 벌일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 역사적 비극과 상처에 대한 인식과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다만 무엇을 얻기 위해 그런 희생을 치렀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은 2002년 12월13일 필자의 다음 칼럼에 실었던 내용입니다.)
  • ?
    오 해 봉 2007.10.23 23:42
    여산선생님 칼럼을읽고 태안사를 가본다고 하면서도
    못가 보았습니다,
    올가을에는 가볼수 있을런지 의문이군요,
    언제 차를 갖고가서 돌아볼 생각입니다,
    여산선생님 다음달에나 뵐수 있을런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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