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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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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동은 최치원이 머문 곳이라 하여 그의 호(號) 고운(孤雲)을 따서 이름을 붙인 것이에요.
백운동에는 남명선생이 자연암석에 새긴 '白雲洞' 각자(刻字)가 전해오지만, 그 이름은 누가 지었는지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 '백운동' 각자에서부터 시작되는 계곡에 들어서면 그 이름에 절로 고개가 끄떡여지지요. 하얀 구름 위에 신선이 노니는 듯한 별천지가 펼쳐지니까요.
계곡 전체가 백색이에요. 바위 천국 기암괴석들이 그렇고, 수많은 폭포와 징담으로 떨어지는 옥류가 또한 그러합니다.

남명은 이 백운동계곡에 '龍門洞天(용문동천)'이란 각자도 남겼어요. 그 이름도 계곡을 잠시만 따라들면 수긍이 됩니다.
계곡 전체가 암반을 카피트처럼 깔고 있는데다 폭포와 징담이 쉴새없이 되풀이 되지요. 폭포는 화강암을 칼로 매끈하게 다듬어 계곡을 가로지르는 담장으로 세워놓은 것과 흡사합니다.
똑같은 모양의 이런 폭포가 계곡을 따라 들수록 잇달아 나타나곤 하지요. 계곡을 깊숙이 오르다보면 마치 구중궁궐 속 용의 처소를 찾아드는 느낌입니다.
'용문동천'임을 실감하고도 남습니다.

남명이 새겨놓은 또 하나의 각자인 '嶺南第一泉石(영남제일천석)'이 웅변을 해주듯이 계곡 전체가 거대한 암반과 암석들로만 이뤄져 있어요.
암반으로 친다면 영남에서 첫번째 가는 계곡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네요.
암반과 기암괴석이 어울려 빚어내는 신묘한 조화와 계곡미가 아주 절묘합니다.
용과 같은 상서롭고 신령한 존재의 처소로도 전혀 손색이 없지요.
이곳에 나란하게 자리한 용문폭포(龍門爆布), 용소(龍沼), 등천대(登天臺) 등이 전혀 비현실적으로 보여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지리산의 하고 많은 골짜기 가운데 용문동천으로 불리는 곳은 이곳 뿐입니다.
이 계곡의 신묘한 세계와 환상적인 계곡미를 감히 나의 둔한 필설로 그린다는 것이 무리한 노릇입니다.
다만 그 명당들의 이름만 나열하더라도 짐작이 능히 가능할 것이에요.
백운폭포, 오담폭포, 용문폭포, 탈속폭포, 칠성폭포, 수왕성폭포가 있고, 선녀소, 돼지소, 암소, 말소, 용소, 아함소, 장군소, 다지소, 청의소 등도 있어요.
이를테면 걸출한 계곡미를 구성하는데 있어 갖추어야 할 것은 다 갖추고 있는 셈이지요.

만년 12년을 덕산에서 산천재를 열고 살았던 남명이 왜 다른 지리산 골짜기들을 접어둔 채 이 용문동천을 즐겨 찾았는지 이해가 될 만합니다.
조정에서 등용코자 몇 차례나 높은 벼슬을 내리고 불렀지만, 결코 나가지 않았던 영원한 산림처사 남명은 이 용문동천의 '영남제일천석'에서 이런 시를 읊었지요.
'푸르른 산에 올라보니 온 세상이 쪽빛과 같은데, 사람의 욕심은 그칠 줄을 몰라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도 세상사를 탐한다.'
500년 전 그이의 탄식이 오늘 우리 현실을 그대로 투영해줍니다.

남명이 즐겨 찾았던 것 만큼이나 명당의 이름들도 다른 계곡과 확연하게 구분됩니다.
특히 '다지소(多知沼)'와 '청의소(聽義沼)'란 이름은 남명의 정신세계가 어려 있는 곳으로 더욱 주목됩니다.
다지소란 목욕을 하면 아는 것이 생긴다는 곳이요, 청의소란 옳은 소리만 듣는 곳이란 뜻입니다.
목욕을 하면 어째서 아는 것이 생길까요?
다지소는 몸을 맑게 하면 정신을 밝게 하여 깨우침을 얻는다는 뜻일 것이요, 청의소란 헛된 소리는 듣지 말고 옳은 말만 들으라는 하나의 경구와도 같습니다.

최치원은 '삼신동' '세이암(洗耳岩)'에서 세상의 더러운 소리를 듣게 된 귀를 씻었지요.
남명이 제자들을 가르친 산천재에는 '소부와 허유' 벽화가 그려져 있답니다.
청의소란 이름은 이 벽화를 함께 떠올려주지요.
허유라는 은자는 요 임금으로부터 천하를 맡아달라는 청을 듣고 거절한 뒤, 더러운 말을 들었다며 강물에 귀를 씻었어요.
그러자 소부라는 이는 그 더러운 물을 자기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 하여 소를 강의 상류로 끌고 갔다는 것입니다.
청의소란 이름의 뜻이 얼마나 의미심장한가요!

그런데 천하 절경 용문동천, 곧 백운동계곡을 왜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을까요?
덕산 전방 지리산휴게소 1킬로미터 못 미친 20번 국도의 덕문교가 걸려 있는 곳이 곧 백운동계곡이 덕천강으로 흘러드는 곳입니다.
이곳에선 항아리 주둥이처럼 산이 가로막고 있어 용문동천이 전혀 보이지 않아요.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은 중산리나 대원사로 가기에 바빠 눈길 한번 주는 법도 없지요.
천왕봉 등에 오르는 것도 좋지만, 그 들머리의 남명 발자취가 깃들어 있는 곳에도 한번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 ?
    최화수 2002.02.08 08:16
    '용문동천 다지소와 청의소' 관련 글은 daum.net 칼럼 '문화/예술'의 '최화수의 지리산 통신' 제140, 141, 143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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