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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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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여담이지만, 나는 2000년 3월1일부터 Daum 칼럼 '생활/건강' 색션에 '최화수의 아침산'을 싣기 시작했습니다.
그 칼럼을 쓰게 된 까닭은 아내 때문이었지요. 아내에게 아무리 아침산행을 권해도 도무지 말이 먹혀들지 않아 글로써 설득해보고자 했던 거에요.
아침산이 좋다는 것을 있는 말, 없는 말 다 동원하여 글을 올렸지만, 아내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습니다.
12월 말까지 100편을 채워도 소용이 없자 나는 맥이 풀려 '아침산' 칼럼 글쓰기를 중단하고 말았어요.

매일 아침 산을 찾게 되면 건강은 물론, 눈과 마음이 맑아집니다. 웬만한 지병이나 정신적 고통에서 말끔하게 벗어날 수 있지요.
나의 아내는 오랜 기간 여러 질환에 시달렸습니다. 아침산행을 권유한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아내는 아침산은 커녕 뒷동산에도 갈 수 없다는 겁니다.
이런 아내에게 불가사의한(?) 일이 있답니다. 해발 1,000미터의 지리산 문수암만은 매년 두서너 차례씩 거뜬하게 오르니까요.
눈이 무릎까지 찰 때도 제 발로 올라갑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산을 오를까요?
두 발로 걸어서 오른다구요?
그렇습니다. 튼튼한 두 발이면 우리나라에서 못 오를 산이 없지요. 하지만 나의 아내는 몸이 부실하여 별로 높지도 않은 아침산도 도무지 오르지 못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아침산보다 몇 갑절 험하고 체력 소모가 많은 지리산 문수암은 거뜬하게 잘 오릅니다.
이 불가사의는 사실 알고보면 별 것이 아닙니다. 아내는 두 발이 아닌, 마음으로 산을 오릅니다. 부실한 몸을 산 위로 이끌고 가는 것은 발이 아니라 마음이지요.

'산은 양지 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神)을 뫼신다' - 김광섭(金珖燮) 시인이 노래한 '산'의 한 대목이지요.
우리나라 산들은 그 꼭대기가 거의 모두 신(神)의 성소(聖所)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하늘로 우뚝 솟은 산의 정상에 신령이 있다고 믿었어요.
그리스 신화에서 올림포스산은 신들의 처소였고, 모세는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았다지요. 중국 황제들은 태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어요.
산정에 신을 뫼신 것은 우리나라도 다른 어느 나라 못지 않습니다.

지리산 천왕봉은 우리나라 무조설(巫祖說)의 시원지이자 1,000년 세월을 성모석상(聖母石像)을 모신 성모사(聖母祠)가 자리했어요.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에 성모사에 치성을 드리는 민초들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영남 호남 경기지방 농부들이 늦봄부터 가을까지 6~7개월 동안 천왕봉 성모사에 모여 법석댔다...이들 기도객은 해가 저물면 잠잘 곳이 없어 헤매었다. 바위틈에 한데 웅크리고 앉았다가 갑자기 추워지면 서로 부둥켜 안고 추위를 면했다.]

우리들이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당시의 민초들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천왕봉에 올랐다는 사실이에요.
'택리지'도 천왕봉은 '하루에도 몇 번 비가 내리고 거센 바람이 몰아치며 안개와 구름이 덮여오는 고산 특유의 기상'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텐트가 있는 것도 아니요, 방한 채비를 제대로 갖출 수가 없는 민초들이었지요.
밤이 되어 기온이 급강하하면 바위틈새에서 낯선 남녀끼리도 서로의 몸을 부둥켜 안고 비비적거리며 추위를 이겨내는 것이 고작이었다네요.

이러니 남녀의 풍기문란이 문제가 될 수밖에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일이었어요.
그보다 그토록 무모하게, 아무런 대책도 없이 어떻게 그 많은 남녀 민초들이 천왕봉으로 몰려들었을까요?
1610년 9월 천왕봉에 올랐던 박여량(朴汝樑)의 '두류산일록(頭流山日錄)'에도 '복을 비는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봉우리에 낟알이 어지러이 널려 있고...'라고 적고 있어요.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는 민초들, 그들은 무엇으로 그 높은 천왕봉까지 올랐을까요?

물론 그들은 두 발로 걸어서 올랐을 테지요.
짚신을 신은 두 발 만이 전부였을까요? 두 발보다는 오히려 마음이지요. 신령에게 복을 빌기 위한 그 일념이 험한 길에 맨몸도 마다않고 산위로 오르게 했을 겁니다.
신에게 간구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함으로 하여 지리산 상상봉을 올랐을 거에요.
'팔만대장경'에 '산은 마음의 고요와 고상함'이라고 했거니와, 찌든 가난과 힘든 노역으로 병들고 지친 민초들은 오로지 마음으로 산에 올라 정신적인 위안을 얻었을 것입니다.

산정에 오르는 것을 극단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는 없겠지요.
시인 단테는 산 위에서 이 세상을 굽어보는 것을 즐기려고 높은 산에 자주 올랐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역사학자 부르크하르트는 '등산을 위한 등산'을 한 최초의 인물로 단테를 꼽았습니다.
등산을 위한 등산, 이것이 오늘의 일반적인 산행 형태이겠지요.
하지만 여기에도 그 바탕은 마음인 것입니다.
기복(祈福)을 위한 것이든,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든, 마음에서 시작하여 마음으로 그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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