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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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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소리'의 연원지 운상원(雲上院)은 일곱 왕자가 성불했다고 하여 칠불암으로 이름이 고쳐졌다고 하지요. 그 칠불암의 창건 내력은 어떠할까요?
연담(蓮潭)의 '칠불암 상량문'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신라 신문왕 때 옥부선인(玉浮仙人)이 부는 옥피리(玉笛) 소리를 들은 7왕자가 입산하여 6년만에 도를 깨닫고 이 암자를 창건했다.'
그런가 하면 진응(震應)의 '지리산지'에는 '지리산은 칠불조사인 문수보살이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에 칠불암이라고 하였다'고 쓰고 있어요.

하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채택되는 것은 '사기(寺記)'로 적은 보옥선사와 가락국 7왕자 설화입니다.
보옥선사가 운상원을 짓고 7왕자와 함께 수도하기 6년만인 AD 103년 8월 보름날에 7왕자가 성불하여 '七佛庵(칠불암)'으로 고쳤다는 거예요.
성불한 왕자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김수로왕과 허황옥 왕비가 지리산까지 달려왔던 영지(影池) 설화도 있지요.
수로왕이 머물며 범왕사(梵王寺)를 세웠던 곳을 범왕촌(凡旺里), 허왕후가 머물며 천비사를 세운 곳을 대비촌으로 불렀다고 하지요.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옥부선인이나 보옥선사가 7왕자를 데리고 운상원에서 6년 동안 수행했다는 대목입니다. 그 6년 동안 옥부선인은 옥피리를 불었고, 보옥선사는 인도에서 가져온 한 가닥 현악기 '아크탈'과 퉁소인 '분지'를 타고 불었을 테지요.
'신라 사람 옥부선인'이란 글은 의도적으로 신라를 내세우기 위한 후세의 가장된 기록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보옥선사와 옥부선인은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고, 보옥선사의 악기 연주를 산 아래 사람들은 "신선이 옥피리를 분다"고 생각하고 말했을 법합니다.

한 가닥 현악기인 '아크탈'이란 우리의 고전적 악기인 해금(奚琴)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 제작의 단순성과 음곡의 청아함이 아주 닮았다는 것이지요.
'분지'라 불리는 퉁소도 우리의 단소와 다른 것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와 음악은 불가분의 관계이지요. 이 '신선의 옥피리' 설화는 단지 설화로만 그치지 않고, 이 땅의 토속음악과 합쳐지면서 우리 국악의 원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삼국사기 악지'에 실려 있는 옥보고(玉寶高)에 관한 기록으로도 증명이 되고 있지요.

[신라 사람 사찬 공영(恭永)의 아들 옥보고가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거문고를 배운 지 50년에 새 곡조 30곡을 지어 이를 속명득(續繆)에게 전했다.
속명득은 귀금(貴今)선생에게 전했는데, 귀금선생 역시 지리산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신라왕이 이들이 이룬 금도(琴道)가 끊어질까 염려하여 이찬 윤흥(允興)을 남원으로 보내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 음곡을 전수받도록 하라며, 그곳의 태수(太守)로 삼았다.
윤흥이 부임하여 안장(安長)과 청장(淸長) 두 소년을 가려뽑아 지리산에 들어가 배우게 하였다.

귀금선생이 가르치면서도 그 중 좋은 몇 곡은 가르치지 않았다. 윤흥이 부인과 함께 그곳으로 가서 귀금선생을 찾아뵙고 말하기를...
"임금이 나를 남원으로 보낸 것은 선생의 기술을 전수받게 한 것인데, 지금 3년이 되었으되 선생이 몇 곡은 비밀로 하여 전해주지 않으니 내가 복명할 길이 없다"
윤흥이 술병을 받들고 부인은 잔을 들고 무릎을 꿇고 나아가는 예를 다한 뒤 그가 비밀리에 해오던 '표풍곡(飄風曲)' 등 세 곡을 전수받았다.
그리하여 안장은  자신의 두 아들인 극상(克相)과 극종(克宗)에게 이를 가르쳐 극종은 새로 일곱 곡을 지었다.
이로부터 거문고로 직업을 삼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인용문이 길었지만, 지리산 소리의 진수, 곧 우리 국악의 연원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기록이 아닐 수 없지요.
이렇게 지리산에서 창작하여 정리된 곡들은 평조(平調)와 우조(羽調)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모두 187곡에 이르렀답니다.
'삼국사기'는 또한 그 나머지는 성곡(聲曲)으로 유전하여 기록할 수 있는 것은 얼마 안 되고, 다 흩어져서 모두 기재할 수 없다면서 옥보고가 지은 30곡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의 이 기록 만으로도 지리산이 우리 국악 원류의 진원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지요.

하지만 '삼국사기' 기록은  연대와 운상원의 위치에 대해 상당한 혼란을 안겨줍니다.
옥보고가 통일신라 이후 사람이라면 가락국 보옥선사와는 600년 이상 시대 차이가 있지요.
노산 이은상은 '그 시대를 가락 연대로 맞춰야 하고, 신라인을 가락인으로, 음악에 능한 옥보고를 불교와 선도를 고루 갖춘 옥보명인이라' 쓰고, 옥보명인은 보옥(寶玉)이라 주해했어요.
하지만 이병도 박사는 '삼국사기 주해'에서 '운상원은 운봉(雲峰) 부근인 듯하다'고 했답니다.
과연 운상원은 칠불암이 아닌 운봉이었을까요?
  • ?
    moveon 2002.03.20 12:50
    오래도록 궁금했던 내용의 이야기 랍니다. 이렇게 다시 접할 수 있어 행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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