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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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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365일'이란 이름으로 지리산에 관련한 이런저런 얘기를 국제신문에 매일 연재했던 1988~89년의 일입니다.
나는 구형왕릉이 자리한 왕산의 정남쪽에 '왕등재'라 불리는 고개가 있는 것에 주목했어요.
하봉에서 웅석봉으로 흘러내린 지맥에 쑥밭재, 새재, 외고개, 왕등재, 밤머리재란 다섯개의 고개가 있지요. 쑥밭재, 밤머리재라는 토속적인 이름과는 달리 왕등재란 이름은 좀 유별나지 않나요?
왕릉이 있어 왕산이라고 하듯이 왕이 오른 고개라는 뜻인가? 이런 의문이 당연히 따랐지요.

유평계곡에서 외곡마을로 들어가는 삼거리 독가촌에 살던 유평리 마을이장 이상진씨를 찾아갔어요.
그에게 '왕등재'란 이름의 연유를 물어보았지요.
"왕이 올랐던 고개라고 하여 왕등재라 부르고, 왕등치(王登峙)로 씁니다. 왕등재에 왕이 올랐다는 얘기는 결코 전설이 아닙니다. 견고한 토성을 이중으로 쌓았고, 성 한가운데 궁을 지었던 궁터가 남아있어요."
"뭐라구요? 토성과 궁터가 있다구요?"
"예, 남, 북, 서문도 있고, 궁터에는 기왓장이 널려 있지요. 우물용 정교한 석축도 그대로 있어요."

정말 놀라운 얘기였습니다. 2년 전까지 왕등재 아랫마을인 해발 650미터 외곡마을에서 25년 동안 살았다는 이상진 이장은 이곳 일대를 손바닥같이 훤히 알고 있었어요.
아니, 그보다 왕등재의 역사적 자취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이 많았어요.
"이 중요한 역사 유적지가 왜 한번도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지 그것이 이상합니다."
나보다 그이가 더 흥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이는 나를 역사의 현장(?)으로 안내하겠다며 하던 일도 팽개쳐두고 앞장서서 왕등재로 벼락같이 올라가더군요.

[키 큰 관목 숲이 뒤덮고 있는데도 나무 높이 위로 토성(土城)의 띠가 왕등재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잘 드러나 보인다.
왕등재 토성은 천수백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풍화침식작용을 거듭했는데도 워낙 견고하게 쌓아 그 형태가 잘 보전되고 있다.
왕등재 동쪽 1,030 고지를 원형으로 둘러싼 토성은 외성, 내성이 겹으로 쌓여 있다.
성의 높이는 원래 3미터가 넘은 것으로 보이며, 성 안쪽은 골을 파두었는데 아직도 깊이 패어 있다.]-필자도 꽤나 흥분하여 '지리산 365일'에 이렇게 썼던 것입니다.

이상진 이장은 왕등재 토성과 궁터 뿐만 아니라 유평계곡 일원이 가락국 요새였다며 지명을 예로 들었어요.
왕등재 옆 935 고지는 깃대봉으로 불렸고, 망을 보았던 망덕재, 말을 사육한 망생이골, 곡식을 저장한 도장골 등등...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은 양왕이라고도 불리지만, 이곳 왕등재 일대에 토성을 쌓고 항전하다 왕산으로 쫓겨가 최후를 마친 것이라고 이곳에선 대대로 구전돼 온답니다. 왕등재 일대의 학술조사로 역사적 사실이 마땅히 규명돼야 합니다."
그이의 강력한 주장이었어요.

그로부터 십수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왕등재 일원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이나 역사학적 접근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리산 둘레의 골짜기며 능선에 도로를 내거나 동식물을 보호하고 조사하는 일은 눈에 띄게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 산의 고대사는 이상할 만큼 그 베일을 벗겨보려는 조짐조차 볼 수가 없어요.
'달의 궁전'과 '수정궁'의 수수께끼들이 풀리지 않고 있는 것도 학계나 관청의 무관심 때문일 거에요.
일반인의 규명 노력은 어차피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월궁(달궁)'과 '수정궁'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추성동(楸城洞)의 석성 추성(楸城)도 그냥 막연한 추측만 따르는 것이 고작이지요.
[산 속에 옛 성이 있는데, 일명 추성 또는 박회성(朴回城)이라 한다. 의탄에서 5, 6리 떨어졌는데, 우마가 갈 수 없는 곳이다. 안에는 창고가 있고, 세상에 전해오기를 신라가 백제를 방비하던 곳이라 한다.]
'신동국여지승람'의 이 기록이 모두입니다.
하지만 구형왕 사적을 추적한 김경렬님은 이 석성이 '신라 변경 방위성' 이전 그 옛날부터 존재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왕산 자락 수정궁으로 물러나와 있던 가락국 마지막 왕 구형왕이 보다 완벽한 요새인 추성 일원으로 옮겨왔을는지도 모른다.
또 하나는 달궁에 도성을 쌓고 72년간 명맥을 유지했던 마한(馬韓) 최후 왕조가 말기에 달궁을 버리고 이곳 국골로 옮겨왔을 가능성도 있다.]
1964년 칠선계곡 학술조사 및 등반로 개척을 하며 썼던 그이의 글입니다.
그는 정령 주변 토성과 일군의 마애불을 찾아내 세상에 알리고, 학계의 체계적인 학술조사를 요청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뤄진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리산의 고대사는 개산(開山) 역사를 풀 수 있는 열쇠로 아주 중요한 것이에요.
지리산은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크고 넉넉한 품입니까.
이 산의 개산 역사의 베일을 벗길 수 있어야 우리 민족의 발자취도 제대로 추적할 수 있겠지요. 지리산은 우리 민족의 삶이 가장 순수하게 응축된 현장일 테니까요.
지리산이 좋아 능선과 골짜기를 누비고 다니는 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는 오늘이지요.
하지만 지리산의 고대사는 아직도 너무나 두터운 베일 속에 가려져 있기만 하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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