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워 잠 못자는 반달곰'

by 최화수 posted Feb 2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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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 자기 정말 힘드네. 등산도, 고로쇠물도 원망스럽다오!"
재작년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가슴곰 가운데 장군이가 사람들이 시끄럽게 구는 바람에 겨울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고 하네요.
23일 '연합통신'은 반달가슴곰 수컷 반돌이는 작년 말 15㎝의 눈이 내리면서 먹잇감을 찾기 어려워지자 달콤한 겨울잠에 빠져 들었지만, 다른 또 한 마리의 수컷 장군이는 단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리산의 잠 못 이룰 반달가슴곰이 딱하기만 합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장군이가 지난달 말부터 겨울잠 채비를 갖추고 가수면 상태에 들어갔지만 틈틈이 일어나 잠자리를 옮기는 등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목걸이형 추적장비가 보내는 신호를 분석한 결과 장군이는 가수면에 들어간 지난달 말 이후 지금까지 20여일 동안 5차례나 잠자리를 옮겼다는 거에요.
먹잇감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이다 동면시기를 놓친 채 느지막하게 동면장소를 찾아 잠을 청했지만 결국 잠깐씩 졸기만 한 셈이라는 군요.

장군이는 이달 중순까지는 3차례 밖에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지만, 지난 1주일 사이엔 주변이 부산해 2차례나 잠자리를 바꿨다고 합니다.
국립공원 반달가슴곰 관리팀은 "날씨가 풀리면서 등산객이 늘어나기도 했고, 변비나 위장병, 신경통에 효과가 있다는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자 인기척에 놀라 잠자리를 옮긴 것같다"고 분석했습니다.
반달가슴곰이 겨울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만큼 지리산이 시끄러워졌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군요.

지리산이 시끄러운 것은 등산을 즐기는 순수 산악인들보다 고로쇠 수액 채취를 하는 주민들의 발길이 더 문제가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리산의 고로쇠 수액 채취는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광범위하고 세밀하게 이뤄지고 있어요. 빗점골 상단부 등을 비롯한 지리산의 대부분의 새 등산로는 고로쇠 채취 주민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지요.
고로쇠 수액을 받는 파이프라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을 정도이니 곰인들 제대로 잠자기 어려울 거에요.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는 "장군이는 원래 성격이 예민하기도 하지만 사람들과 조우를 피하던 습성상 깊은 잠에 빠져들지 못하고 잠자리를 계속 옮기는 것 같다"면서 "며칠 전부터 또 가수면 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부터 푹 자더라도 2월말에서 3월초면 겨울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게 되므로 장군이가 겨울잠을 잘 날은 10일도 채 남지 않은 셈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겨울잠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란 사실이에요.

국립공원 지리산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반달가슴곰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때 겨울잠에 든다"며 "날씨가 덜 춥고 눈도 덜 쌓여 먹잇감을 찾기 쉬울 때는 동면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는 군요.
한편 다른 수컷인 반돌이는 등산객이나 고로쇠 수액 채취자들의 인기척에도 아랑곳없이 겨울잠에 푹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리산 방사 반달가슴곰의 동면 상태 여부를 걱정해야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지요.

지리산은 광활한 면적에 깊은 골짜기가 겹쳐 있고, 무성한 원시수해가 하늘을 가린 곳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겨울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로 주위의 분위기가 시끄럽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요?
반달곰의 동면을 방해할 정도로 시끄러운 것은 사람 발길이 간단없이 지리산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반달곰만이 아니라 지리산 자연생태계가 얼마나 피곤할 것인지 짐작케 해주는 셈이지요.

지리산 주민들이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여 높은 소득을 올리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넓고 촘촘하게 수액을 채취하는 것은 냉정하게 재검토 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등산객은 걸어가는 것조차 통제를 하면서 주민들은 드릴과 같은 공구로 나무에 구멍을 뚫어 수액을 채취하게 한다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도 어긋나지요.
어쨌든 등산도 좋고, 고로쇠 수액 채취도 좋지만, 방사한 반달가슴곰이 겨울잠조차 자지 못하여 방황하게 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옳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