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류의 합창 '상선약수(上善若水)'

by 최화수 posted Aug 2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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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계곡의 물소리가 우렁차다. 푸르면서 때로는 흰 포말이 되기도 하는 계류는 또 얼마나 청정한가.
폭염이 다른 해보다 유별난 2010년이다. 절기로는 여름이 끝나가는 8월 셋째 주말(21일) 피아골을 찾았다.
직전마을에서 피아골대피소까지 오르내리는 동안 우렁찬 계류의 함성이 뒤덮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아름다운 관현악곡이자 웅대한 합창곡이었다.

지리산 계곡이라면 관현악곡과 합창곡이 넘쳐나지 않는 곳이 없다.
유평계곡, 백무동계곡, 중산리계곡, 거림계곡, 대성계곡, 뱀사골, 칠선계곡….
어떨 때는 웅대한 교향곡으로, 또 어떨 때는 실내악곡을 들려주기도 한다.
수백 명이 들려주는 합창곡으로, 또 2중창이나 3중창일 때도 있다.
음악이 넘쳐나는 계곡들로 하여 지리산은 늘 꿈결처럼 아름답다.

백무동 느티나무집 앞마당의 평상은 음악 듣기에 참으로 좋았다.
지난 1980~90년대, 필자는 그 평상에 앉아 밤을 새우다시피 한 적이 있었다.
백무동계곡 본류와 하동바위에서 흘러내리는 지류가 관현악을 스테레오로 들려주었다.
음표에 의해 작곡된 것이 아닌, 자연이 빚어내는 선율은 또 얼마나 황홀했던가.
온몸에 충만한 전율과도 같은 환희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지리산 계곡을 가장 처음 인상적으로 지켜본 것은 뱀사골이었다.
1981년 8월 하순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청정 계류가 집채 같은 석실을 감돌며 쏟아져 내리는 것에서 무엇을 생각했던가?
“빨래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지리산 청정 계류를 빨래와 결부 짓다니…! 참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다.

지리산 계곡에서 빨래를 떠올리다니, 참 부끄러운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그 빨래가 어디 옷가지를 씻는 것으로만 그치겠는가.
옷을 씻고, 몸을 씻고, 나아가 마음을 씻는 것이라면…!
물론 지리산 계곡에선 세탁은커녕 몸을 담그지도 말아야 한다.
다만 눈으로 마음으로 계류에 동화, 세심(洗心)에 이르러야 할 일이다.

지리산 계류의 관현악곡이나 합창곡들은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떠올려 준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말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도 그 공을 다투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낮춘다.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이야말로 우리들에게 너무나 많은 얘기를 들려준다. 온갖 탐욕에 찌든 인간의 속성이 참으로 부끄럽다.

지리산 청정 계류는 언제나 아름다운 관현악곡과 합창곡을 들려준다. 지치는 법도 없이!
더불어 ‘상선약수’의 가르침으로 우리들 마음을 씻게 해준다.
‘최상의 선’을 어찌 온몸으로 새기고 또 새기지 않으랴.
지리산은 찾으면 찾을수록 더 좋다.
청정 계류 그 하나 만으로도 참으로 넉넉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