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선계곡 은둔자들의 발자취(2)

by 최화수 posted Apr 0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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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부 부대가 1948년 5월 10월 천왕봉에서 무장봉기를 할 계획은 사전에 그 정보가 경찰에 흘러들어갔어요.
그래서 D데이를 사흘 앞둔 5월7일 토벌대가 선수를 쳐 천왕봉으로 새까맣게 몰려들었답니다. 천왕봉으로 통하는 골짜기마다 토벌대가 빼곡이 들어찼을 정도였어요.

토벌 1진은 함양에서 마천을 통하여 칠선계곡으로 밀려왔고, 다른 1진은 백무동계곡을 따라 천왕봉으로 몰려갔어요. 그들은 중산리계곡으로 올라오는 하동의 토벌대 1진과 장터목에서 합류하여 그 세력을 더했습니다.
하동 토벌대의 다른 1진은 중산리에서 법계사 쪽으로 곧장 치고 올랐어요.
산청 토벌대도 1진은 쑥밭재에서 하봉, 중봉을 타고 올라왔고, 제2진은 내원사에서 써리봉을 거쳐 중봉쪽으로 치달아오는 것이었어요.

천왕봉의 남도부 부대는 어떠했을까요? 이 빨치산 부대는 엽총 몇 자루가 무기의 전부나 다름이 없었답니다.
대원들은 거의 죽창이나 농기구로 무장을 하고 있는 형편이었지요.
이런 원시적인 무장으로 소총과 중기, 박격포로 무장하고 벌떼처럼 에워싼 채 죄어오는 토벌대를 상대하는 것이 가능한 노릇일까요?

하지만 천왕봉이란 막다른 땅을 딛고 선 남도부 부대원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지요. 피하고 달아날 구멍조차 없었으니까요.
죽기 아니면 살기였던 셈이지요.
살아남으면 이기는 것이고, 죽으면 지는 것이었지요.

쿠당탕탕...마침내 교전이 벌어졌어요. 그 전투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답니다.
어째선지 토벌대가 전투 개시 흉내만 내더니만 서서히 물러가기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대원 24명이 부상을 입은 남도부 부대도 기다렸다는 듯이 천왕봉에서 슬금슬금 퇴각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빨치산 부대는 지리산을 떠나 비쭉산이라 불리는 야산으로 숨어들었답니다.

"토벌대도 완전무장할 수는 없었다. 우익청년들은 대창만 들고 천왕봉으로 향했다. 당시 국민회 서기이던 김 모는 와이셔츠에 양복 차림으로 토벌에 나서기도 했다. 우리는 빨치산이 없는 줄 알고 히히덕거리며 천왕봉으로 올라갔다."(노가원 지음 '남도부' 상권)

총소리가 들리자 토벌대에 동원된 청년들 대부분이 놀라 도망을 쳤다는 군요. 그들은 설마 빨치산이 그 높은 천왕봉에 버티고 있을 것으로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지요.
와이셔츠에 양복차림으로 따라나선 이가 있을 정도였다면 알아볼 일이네요.
오합지졸 토벌대는 제 총소리에 놀라 뒷걸음질을 친 우스운 상황을 연출했답니다.

남도부의 빨치산 부대도 마찬가지였어요.
엽총 몇 자루와 죽창, 농기구를 들고 벌떼같이 몰려오는 토벌대를 상대한다는 것은 그 한계가 너무 뻔한 것이었지요.
토벌대가 흩어지는 것과 함께 남도부 부대원들도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천왕봉 무장 봉기는 마치 어린이들이 병정놀이를 하는 것처럼 장난스럽게 비춰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1948년 당시의 야산대는 죽창이나 농기구를 무장 수단으로 했던 만큼 어차피 병정놀이 이상은 기대하기 어려웠던 거에요.

토벌부대에 동원된 우익청년단체나 지리산권 각급 기관 단체원들도 그 사정은 비슷했어요.
그들은 빨치산을 내쫓아야 한다는 적개심 같은 것을 지니고 있지도 않았다네요. 그러니까 지리산 상상봉에서의 피비린내나는 전투란 상상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