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같은 여인, 불꽃같은 사랑(3)

by 최화수 posted Apr 0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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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흥록 듣거라, 나를 한번 웃기고 울리면 300냥의 상을 내릴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너의 목을 베리라!"
진주병사 이경하의 입에서 떨어진 으름장이었어요.
맹렬이가 불같은 질투심으로 송흥록을 의심하여 앙심풀이를 하고자 이 병사에게 간청하여 그렇게 꾸민 것이었지요.

송흥록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 쓰라렸지만, 진주병사의 호령 앞에 어찌 하겠습니까.
무엇보다 당장 이 병사를 웃기고 울리는 일이 급하게 된 것이지요.
송흥록은 이 병사를 웃기려고 우스꽝스런 익살과 재담, 해학 등 모든 것을 동원하여 <수궁가>를 불렀어요.
하지만 이 병사의 얼굴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기만 했답니다.

송흥록은 좀체로 이 병사를 웃길 수 없음을 깨달았지요.
그래서 소리를 하다 말고 느닷없이 이 병사 앞으로 와락 달려들었답니다.
이 병사와 얼굴을 맞댄 그는 이렇게 말한 것이지요.
"아이고 아자씨이! 어째서 웃지 않으시오? 날 죽이고 싶소오?"
그렇게 얼굴을 들이밀자 이 병사도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우라저씨가 웃으셨는디, 또 어떻게 해야 우실까?"
송흥록은 그러나 이번에는 아주 정색을 하고 토끼 배 가르는 대목을 열창했답니다.
그가 얼마나 애원처절한 성음으로 슬프게 불렀던지 듣고 있던 모든 이들이 눈물을 쏟아내는 것이었어요.
이 병사 또한 자신도 모르게 울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대는 과연 명창이로고!"
이경하 진주병사는 송흥록의 소리에 진정으로 감탄을 했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그에게 300냥의 상금을 내렸어요.
어디 그뿐이었겠습니까?
맹렬은 그 자리에서 송흥록과의 관계를 이 병사에게 솔직하게 고백을 했다네요.
이 병사는 그런저런 사정을 양해했고, 맹렬을 다시 송흥록과 결합하여 운봉으로 돌아왔답니다.

하지만 맹렬은 사사건건 송흥록과 맞서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어요.
오죽했으면 송흥록의 동생 송광록(宋光祿)이 그 싸움짓을 보다 못해 정처없는 가출의 길에 오르기까지 했겠습니까.
맹렬은 송흥록 한 남자에 머물고만 있을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었나 봐요.
그녀가 하루는 "간다"는 말 한 마디만 남기고는 봇짐을 싸들고 집을 나가버리는 것이었어요.

송흥록은 어떻게 하든 맹렬을 달래서 다시 화합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의 남다른 자부심과 오만한 성품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답니다.
그는 맹렬에 대한 증오와 격분, 비애감이 일시에 폭발하는 것이었어요.
대문밖으로 나서는 맹렬의 등을 바라보며 그는 비통한 심정을 노래합니다.
아, 그것은 저 유명한 진양조의 단장곡(斷腸曲)으로 나타난 것이었어요.

"맹렬아 잘 가거라.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잘 가거라

네가 가면 정마저 가져가지
몸은 가고 정만 남으니
쓸쓸한 빈방안에 외로이 애를 태우니
병 안 될소냐 맹렬아 잘 가거라"

송흥록이 맹렬을 부르는 이 소리가 얼마나 비장했던지요!
표독하고 쌀쌀맞게 등을 돌렸던 맹렬도 발걸음을 더 떼놓을 수 없었다네요.
맹렬은 그 애절한 노래소리에 발길을 되돌렸어요.
다시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그에게 사죄하고 화해했어요.
이때 그가 부지불식간에 불렀던 자탄가(自嘆歌)가 '진양조'를 완성하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송흥록과 맹렬은 그런 뒤로는 잘 살았을까요?
아닙니다. 불행하게도 아니었답니다.
그 뒤에도 송흥록과 맹렬의 불화는 가실 날이 없었어요.
송흥록이 용단을 내렸습니다.
"여난의 상이니 여색을 조심하라!"던 월광선사의 당부를 떠올린 거에요.
둘은 끝내 갈라서고 말았어요.
불꽃같은 여인의 불꽃같은 사랑은 불꽃처럼 사그라들고 말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