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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5744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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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대한 왜구의 노략질은 아주 끈덕진 것이었어요.
그것은 삼국시대, 곧 신라시대부터 시작이 됐습니다.
왜구의 노략질은 고려정권 말기인 14세기 후반에 특히 격심했지요.
충정왕 2년(1350)부터는 왜구가 매년 침범, 공민왕과 우왕을 거쳐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40여년간 극성으로 만행을 저질렀답니다.

왜구(倭寇)란 왜인들이 침략하여 노략질을 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왜구의 노략질이 왜 하필 고려 후기에 집중이 된 것일까요?
그것은 일본의 국내 사정 때문이었답니다. 일본은 막부의 교체로 왕조가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 싸웠지요.
백성들의 생활은 극심한 곤경에 빠졌고, 그 탈출구로 고려에 침입하여 노략질을 하게 된 것이지요.

고려 말 왜구 침략은 우왕대 380 차례, 공민왕대 70여 차례로 이 시기에 집중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1380년 8월, 왜구는 500척의 대선단으로 진포(鎭浦, 지금의 금강 어귀)로 쳐들어왔습니다.
수천명의 왜구를 이끈 적장은 놀랍게도 15, 6세의 아지발도(阿只拔都)였다네요.

왜구는 타고 온 배를 밧줄로 단단히 묶어놓고 상륙하여 충청, 전라, 경상 3도 연안의 주(州), 군(郡)으로 진출합니다.
그들은 곳곳에서 약탈과 방화, 살육을 일삼아 시체가 산야를 덮었는가 하면, 그들이 배로 운반중에 흘린 쌀이 길 위에 한 자나 깔릴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처절의 극이었던 것이지요.

이 때 우리 전사상(戰史上) 아주 기념비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그것은 세계 해전사상 처음으로 함포 사격으로 적의 선단을 괴멸시킨 것이에요.
최무선(崔茂宣)이 발명한 화약과 화포로 무장한 고려 군함 40척이 왜구 선단 500여척을 하나도 남김없이 격침시킨 것입니다.
최무선의 이 화포는 그로부터 200년이 더 흐른 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의 흐름을 바꿔놓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를 하게 됩니다.

진포 앞바다의 이 해전이 세계 해전사에서 처음으로 선박에 화포를 설치 운영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화포를 사용하여 해전을 벌인 것은 고려보다 200년이 더 늦은 1571년 10월7일이에요.
베네치아, 제노바, 에스파냐 연합함대가 트르쿠 함대를 격파한 레판토 해전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최무선의 화포 사용에서 그보다 더 주목하는 사실이 따로 있습니다.
최무선의 화약 발명에 이어 군함에 화포를 도입한 것이야말로 조선 왕조를 탄생시킨 원동력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최무선의 함대가 진포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이성계 장군이 지리산 운봉에서 그 패잔병들을 궤멸시키는 황산대첩을 가능하게 하는 길을 열어준 때문이랍니다.

이성계는 삼남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은 악랄한 아지발도의 왜구들을 황산대첩으로  궤멸시킴으로써 고려인들의 신망을 얻게 됐다는 거에요.
최무선의 해전에 대한 획기적인 발상과 대비가 없었다면 이성계는 왜구를 격퇴시키기는 커녕 패장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견해입니다.
과학자들은 이순신 장군의 승승장구도 최무선이 화포 발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도 주장합니다.

최무선은 각고의 노력 끝에 숯과 초석(礎石), 유황(硫黃)으로 화약을 발명했지요.
숯은 지천에 널려 있고, 황은 유황의 중요성을 몰랐던 왜로부터 들여올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초석, 즉 질산칼륨을 얻는 데 있었지요.
1375년 최무선은 20년의 연구 끝에 자신만의 초석 제조비법을 개발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진포해전 5년 앞이지요.

그런데 최무선의 초석 제조 비법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오래 된 집의 부뚜막이나 마루, 또는 온돌 밑에서 채취한 흙을 사람과 가축의 오줌, 나뭇재와 섞은 후 비에 맞지 않게 쌓아둔다. 그 위를 말똥으로 덮고 불을 지피고 나면 흰 이끼가 생기는데, 4~5개월 지난 다음 물로 씻어내고 졸이면 거친 초석이 얻어진다. 이 초석을 다시 물에 녹인 후 정제하면 화약에 사용할 수 있는 초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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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규 2005.01.24 11:29
    조선의 건국과 지리산! 황산대첩의 승리로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한 이성계, 마천의 군자사에 유래한 신라왕, 가야 구형왕, 빨치산, 한남군, 목은 이색, 유의태와 허준, 변강쇠, 흥부와 놀부, 최치원, 서산대사등등 우리네 역사속의 많은 사연과 함께 유명 인사들이 지리산과 많은 인연을 맺게 된 셈이군요.
    지금은 전국의 산악인들의 사랑을 받고 오브넷 가족들이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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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 2005.01.24 16:44
    최무선의 화포가 이성계의 내륙의 왜구정벌을 효과적으로 가능케하고 그것이 麗末의 혼란기에 위화도회군, 조선왕조창업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연결고리 역할이 될 수 있었다니, 우연속에서 필연을 찾아 역사를 인식하는 계기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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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도 2005.01.27 21:01
    최화수선생님 질문있습니다.
    왜구와 관련하여 얼마전 매향리 사격장 말입니다.
    언젠가 kbs 에서 왜구를 막으려고 불력을 동원하였는데 그때 부처님의향기 침향목을 바다입구에 묻어놓고 부처님의 원력을 기원했다고 하는데 매향리의 한문을보면 埋香里 향을 묻고 침략을 막자는 의미의 지명같은데 지금에 와서 미군과 관련되어 문제가 되는데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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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화수 2005.01.27 23:05
    정진도님. 모처럼 질문을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왜구를 막기 위해 침향목을 묻었다...고 하는 것
    등은 제가 모르는 일입니다.
    埋香里와 지금 미군과의 문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도 제가 답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로군요.

    정진도님, 언제 지리산길을 함께 걸으며 산 얘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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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도 2005.01.28 09:49
    감사합니다.........
    언제 한번 산에서 직접뵙게 되길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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