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부모님 지셋날 저녁은 결코 쓸쓸하지 않았다

by 김도수 posted Nov 2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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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뫼마을에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다>

땅바닥에 흐옇게 서리들이 내려 낙엽들이 우수수 다 떨어져 불고
삘거런 홍시들마저 땅바닥으로 하나 둘씩 픽픽 떨어지는 11월이다.
쌀쌀하게 부는 바람은 몇 사람 살지 않는 마을에 노인네들을
방안에 모두 가둬불고 빈 들판을 바라보면 뭔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텅텅 비어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요런맘을 두고 쓸쓸함이 밀려온다고 허는갑다.

어머니는 85년 11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3일만에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부지는 3년 내내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뜨겁디 뜨건 어느 여름 날 후두암 판정을 받고 병마와 싸우기 시작했다.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자 아부지는 “내가 아무래도 너그메
지세 무렵에 죽을랑갑다. 그렇게 되면 지세를 두 번씩 지내지 말고
걍 한꺼번에 지내부러라.”

아부지는 죽음을 미리 알고 계시기라도 한 듯 어머니 지세를 모신
6일 후에 돌아가셨다.
3년 동안 어머니와 아부지 지세를 6일 간격으로 모시다 보니
객지에서 직장생활 하는 자식들이 일주일에 두 번씩 휴가를 내고
모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어머니 지셋날 아부지 지세까지
전주 큰형님 집에서 합동으로 지내다가 98년 고향 진뫼마을 집을
사분 뒤로는 고향마을로 부모님 지세를 모시고 와서 지낸다.

서울,포항,전주,남원,광양으로 다 흐터져 사는 형제들은
전주 큰형님 집보다는 고향 집에서 지세를 모신게 디게 존갑다.
지세 지내러 고향으로 옹게 마을 사람들도 만나고 어르신들께
식사도 한끼 대접하고 고향 집에서 하룻밤 자며 고향 바람을 쐬니
기분이 끝내줘분지 잠을 안자분다.
올해는 일요일 날 저녁에 어머니 지세가 돌아와 토요일 날
형제들이 고향 집에 모두 모였다.
형제들은 정재를 거실로 개조한 방에 앉아 내가 앉은 자리는
큰 솥을 걸어둔 곳이고 니가 앉은 자리가 설겅이 있었던 곳이고
제수씨가 앉은 곳은 나무를 두던 나뭇청 자리라며 부모님과 함께
시골에서 살았던 추억을 하나하나 더듬으며 이야기를 꽃을 피우다 보니
어느새 새벽 4시가 넘어간다.

포항에 사는 누이는 도착하자마자 김장부터 히야헌담서 배추를
소금에 저려 놓고 새벽 4시가 넘어가자 너무 오래 간을 해노면
숨이 푹 죽어붕게 빨리 씻어야 험담서 마당으로 나가 숨이 죽은
배추를 만지더니 언니들 빨리 나와서 함께 씻어불자고 부른다.
낮인지 밤인지 새벽인지 고향 집은 오랜만에 사람 사는 집이 되어
제법 시끌벅적하다.

일요일 아침,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헌다.
빗줄기가 제법 굵어지자 누이는 검정 비닐을 머리에 씌우고
아내는 삘건 수건을 등까지 내려 두르니 밤 손님과 아랍에서 온
패션 아줌마 둘이서 김장을 하는 것 같다.





오랜만에 고향 집 안방에서 따땃하게 누워 잔 내 바로 위에 형은
“고향에 오면 잠자는 시간이 아깝단말여. 새벽 4시까지 놀다
잤는디도 아침에 일어나면 피곤허지를 않고 오늘 가야 헌다는
생각이 앞서니 넓고 넓은 우리나라 땅떵어리에 요로케 작은 고향 집이
맨날 눈에 아른거리니 고향이 뭔지 참말로 알다가도 모르겄단말여.”

부모님께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여 제사를 지내고 일요일 늦은 밤에
모두 떠나는 고향 집.
불 꺼진 고향 집을 뒤로 하며 캄캄한 밤길을 나서는 형제들은
서로에게 조심히서 운전해 가라고 인사를 건네며 삶의 터전으로
다시 되돌아 간다.



승용차 뒷 트렁크에는 부모님께서 평생 농사짓던 밭에서
비랑도 시퍼렇게 자란 무시와 배추로 김장을 해서 고향의 땅 기운을
품고 갔으니 부모님도 먼 발치에서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내년 11월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으리라.
불 꺼진 고향 집이 결코 쓸쓸하지 않았던 부모님 지셋날이었다.

-리장닷컴 펌
▶http://www.rij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