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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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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글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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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월 29일) 낮에 전화가 왔습니다.
지리산 음악회를 연출하신 박성일 선생님의 전화였습니다.
"실감이 안나, 내가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아"
한해의 시작과 끝의 기점을 음악회로 잡고 계신 아름다운 사람의 말이었습니다.
언제나 골똘히 음악회와 그에 어우러질 좋은이들과의 만남을 염두에 둔
박선생님에게는 이번 가을비 속의 음악회가 기억에 남을 사건이라 하더군요.
저 역시 내가 인생의 주인공이 되던 내 결혼식 이후
모처럼 주인의식을 갖는 행사가 이번 음악회였습니다.(남이 보면 비록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행사를 갖기 위해 제가 한 일이라곤
누구에게나 잘 보이도록 도로변에 플랭카드를 내걸고
운동장을 청소하고 서늘한 가을밤을 따스히 밝힐 장작더미였습니다.
전날부터는 멀리 서울과 추풍령의 친우들이 와주어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마음같아서는 오시는 모든 이들에게 대나무 통속에 삼겹살을 넣어 숯이 될 때까지 굽는,
두레엄마가 돼지고기의 완성버전이라고 하며 좋아하는 대통구이를 구워주고 싶지만은
다들 그렇게 하면 망한다고들 만류하길레(실은 그럴 돈도 없지만...) 그냥 말았습니다.
다만 미리 출연진과 팀원들에게는 간단한 찌개로 저녁을 대접하고
넉살좋은 손님들도 밥을 찾기에 잔치집 기분으로 드리니 맛있다고들 하더군요.
두레엄마 말로는 사실 손님들께 음식에 늘 자신없어 하는 자기를 대신할 친구가 있었기에 여유를 떨었다는군요.
사실 저희 집은 큰 행사를 치르기에는 문제가(다량의 주차공간 등)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음악회를 여러차레 진행하신 박선생님의 경험은
우리 집이 갖고있는 한계를 쉽게 해결하시더군요.
이러저러한 행정절차나 순간 상황에 대한 대처력에 늘 골치 아파하는
저의 고민거리가 산적해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이제 주변부적인 뒤처리는 각설하고 본 행사 이야기를 하렵니다.

무대와 조명장치를 하고 그리고 음향시설을 위한 발전차가 오고서야
정말 그리던 음악회가 열리게 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준비가 끝나고, 심지어 마이크 테스트까지 끝냈는데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9월 이래 거의 두달간 비 한방울 오지도 않던 이곳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약간 오거나 가을비가 으레히 그렇듯이 큰 비는 아닐거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공연을 하기에는 무리인 비가 쏟아지더군요.
이미 교실에는 5시부터 오신 분들께 다도와 가사문화에 대한 슬라이드 상영 등의 행사가 진행되며 어둠이 서서히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었습니다.
풍물패 <하늘 땅>이 움직이면 그 비싼 북과 장구 등이 다 젖어들기에 열릴 수 없는 상황으로 점점 몰리게 된 셈이었습니다.
왠만한 공연 단체면 다 이런 상황은 피해야 현명할 터인데 그럼에도 선뜻 공연하겠다는 연출가와 <하늘 땅>의 이민영 선생님의 용단이 있었습니다.
급히 무대 위로 대형 천막을 설치하고 관객을 위해서도 서너개의 천막을 더 설치하느라 7시까지 공연을 늦추었습니다.
이후로는 천막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또다른 하모니가 첨가된 양상이 되었던 것이지요.
어둠이 짙어졌습니다.
하늘을 보니 조명탑 불빛 아래 쏟아지는 빗줄기가 장관이었습니다.
제각기 우비를 걸쳐 하얀 백의 민족이 되고 손에 손에 형형색색의 우산을 들고
질펀한 운동장으로 말 그대로 질펀한 소리 가락이 퍼져나갔습니다.
이 빗 속에 음악을 듣는 이나 무대 위에 서있는 이들이나
무엇이 이들을 이런 상황속에서도 웃음으로 즐길 수 있는지...
누군가가 여기 있는 우리가 다 미친 것 같다고 하더군요.
추우면 한쪽 천막아래에서 끓여주는 뜨거운 차를 마시러 오가면서 모두들
신발이 빠져도, 흠뻑 적신 물에 무거워진 바지단을 가벼이 놀리면서 말입니다.
가을 분위기에 맞는 노래들(가을편지, 살다보면, 기차는8시에 떠나네, 여보게 등과 흙피리인 오카리나의 무향이란 곡을 연주)이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는가 봅니다.
두드리는 북과 징, 꽹가리 소리는 투득이는 비의 장단을 넘어서 내 귀를 넘나들고,
터지는 불꽃놀이의 폭죽 소리는 또 무슨 장단인지
어둠을 번뜩이는 휘황(輝煌)이 빗물 젖은 내 눈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구름이 별을 덮어도 무수한 빗방울이 별보다 빛난 밤이었습니다.
아주 가까이 다가온 별을 맞이한 셈입니다.
한시각이 넘어섰습니다.
함께 열기를 식히겠다며 무대 위에 섰던 박문옥씨가 윗도리를 벗은채
반팔차림으로 기타를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바람이 함께 거세지며 빗줄기가 대각선으로 내려칩니다.
그 순간이었는데 후에 추풍령에서 온 친구는 온몸이 씻겨나가는 전율이 느껴졌다 하더이다.
"우리는 만나야한다"
는 소리가 여태 귓전에 맴돕니다.
저와 집사람은 이날 솔메거사님을 만나뵈었습니다.
저번날에 한번 오셨는데 그날과 또 다른 따스한 체온을 지닌 손을 제게 건네주었습니다.
사모님의 부드러운 음성에는 다덩다감함이 곁들여 있었습니다.
침 보기좋은 빗속의 만남이었습니다.
mbc에서 인터뷰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비에 대한 야속함보다는 가을비속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니
이게 왠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입니다.

공연이 끝났습니다.
장작을 지펴 일렁이는 불을 보며 예정된 뒷풀이를 하지못한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교실 마루에 앉아 새벽까지 각자의 노래솜씨를 주고받은 이들의
또다른 음악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침에 모두들 정말 찬란한 아침해가 뜬 것을 보았습니다.
꼭 여름 햇살처럼 새들 지저귀는 소리도 가득했지요.
간밤이 새들에겐 정말 사나왔나 봅니다.
노래하는 새들이 부리를 닫은 밤 저희들이 대신한 것이지요.
말라가던 개울물도 다시 힘찬 소리를 들려주는 가을 아침이었습니다.
이제 모두들 지리산 단풍보러 가는 가을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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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엄마 2001.10.29 23:38
    많은 정성어린 선물도 받았습니다.오고싶은데 왔다며 법성포굴비,콩나물과 가을에 귀한 풋고추,포도,쌀까지도.주신분께 거듭 감사 감사함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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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브 2001.10.30 00:28
    두레네 음악회 후기를 읽으니 참석 못한 큰 아쉬움이 빗발칩니다.^^ 정말 열정적이고 마음이 따뜻한 자리였네요.. 오신 분들도 마음의 선물을 챙겨오시고.. 정말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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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희 2001.10.30 08:55
    정말 멋진 만남이었네요.(배아파라^^) 갑자기 발칙한 생각이 드는 것이.. 한여름이었으면 온몸으로 비를 맞는 즐거움(?)이 더 컸을텐데라는..히히.. (농담이 좀 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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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거사 2001.10.30 10:35
    출중한 글솜씨에 아름다운 음악회가 다시 살아옵니다. 이번 주말에 직원 20여명과 다시 내려가 만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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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봉신 2001.10.30 18:25
    이렇게 후회할 줄 알았습니다. 정말 가보고 싶은 자리였는데..정말 후회막심입니다. 담에 또 기회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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