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통에 빠진 핸드폰

by 두레네집 posted Apr 0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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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의 우리 집 화장실은 재래식과 수세식 두 군데가 있습니다.
저는 주로 재래식 화장실을 잘 이용합니다.
왜냐하면 향기로운 냄새도 가득하고 쪼그려 앉아 똥누는 맛이 더 잘 누어지는 것 같아서입니다.
무엇보다도 환경적인 측면을 생각해서라도 똥은 돌고 도는 만물의 자원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어찌보면 자린고비의 흉내일지도 모릅니다.
훗날 이 똥을 거름으로 쓰려면 함부로 물에 희석해 버릴 수는 없다는,
현지 도시인의 생각으로는 잊어버린 자린고비의 똥에 대한 애틋함 말입니다.

그리고보니 시골에 와서 똥푼지도 오래됐습니다.
지리산에서 내가 싼 똥을 거름으로 해서 나무 밑에 뿌려준 뒤로 두 해가 지났네요.
사실 작년에 그 똥을 거름으로 만들어야하는데
이곳으로 이사오고 말았으니 그곳의 화장실에는 해묵은 덩어리가 되어
새로 이사온 이에게는 골칫거리가 됐을지도 모르겠군요.
옛날 농부 같았으면 수지맍은 거름통을 공짜로 얻은 기분이어야 할텐데...

여느때와 같이 밤똥누는 못된 습관에 벗어나지 못하고 야밤에 변소에 갔습니다.
엉덩이를 까고 척 걸터앉았지요.
막 힘을 주어 괄약근이 열리려하는 찰라
"투득"하며 뒷주머니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당혹감과 "어 내 핸드폰"하는 소리와 함께
나오려던 똥이 쏙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이런 젠장, 망할, 쓰벌..."
정말 열이 받아 온갖 푸념이 다 퉈어나왔습니다.
밤중에 보이지도 않는 똥통에 머리를 가까이 대고 어디있는지를 찾아보았지요.
보일 턱이 있나요.
씨근덕거리며 방안에 들어와 내 핸드폰에 전화를 걸고는 랜턴을 들고 다시 갔습니다.
내 핸드폰의 벨소리는 에델바이스입니다.
똥통아래서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전자음이 울려퍼집니다.
참 처량도 맞습니다.
머리를 디밀고 들여다보니 저 구석에서 빨간 점멸등이 깜박거리며 나 여기있다며 울어댑니다.
괭이 두 개를 가지고 꺼냈습니다.
다행히 마른 똥덩이 위에 떨어져 신기하게 오물하나 묻어있지 않더군요.
건져내고 난 후 찜찜한 기분에 알콜을 솜에 묻혀 구석구석을 닦아냈습니다.
딲으면서 이 참에 핸드폰 벨소리를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 로 고쳐 변기 밑에 매달아둘까 하는 생각이 들데요.
누가 우리 집에 와서 밤에 화장실 가면
몰래 전화를 걸어 벨소리를 들려주면 기겁을 할지도 몰라하는 엉뚱한 생각에 말입니다.

화장실 얘기가 나온 김에 옛날 생각이 하나 더 나네요.
그전에는 측간에 멀찍이 구석에 떨어져 있지요. 전기불도 없고...
바람부는 겨울밤에 밤똥누는 타임에 걸리면
엄마 아빠 동기간에 의사타진을 합니다. 같이 가줄 사람 찾는 거지요.
물론 아무도 안나섭니다.
결국 혼자서 신문지 들고 촛불하나 들고 UN팔각 성냥곽 한통 들고 나섭니다.
성냥통은 왜 갖고 가냐고요. 바람이 휙 불면 엉성한 측간에 촛불이 싹 꺼지거든요.
꺼지게되면 그야말로 똥누다 말고 일어나야하는 경험상... 미리 대비하는 차원이지요.
그런데 바람도 안부는 조용한 밤에는 쪼그리고 앉아
성냥통에서 성냥을 하나씩 꺼내 우물정(井)자 모양으로 탑을 쌓습니다.
흔들거릴 정도로 높다랗게 쌓고나면 밑에 불을 착 붙입니다.
치치치직- 호로로롱 다타면 훤한 불빛에 그제야 바지춤을 추수리게 되곤하지요...ㅎㅎ
한번은 그러다 변소 문짝에 못하나 박아놓은 곳에 차곡이 찔러넣은 신문지 뭉치에 불이 붙어 무릎에 바지 걸린 채로 튀어나와 호들갑 떨다
밤중에 똥간에서 불장난에 염병떤다고 무지하게 혼난 적도 있었지요.

도시의 수세식 화장실에서는 생각도 못할
재래식 화장실에서 똥누는 아이들의 재미있는 놀이
UN성냥곽 어디서 구해다 놔야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