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섬진나루>두레네이야기

두레네
/두레네(추풍령) /두레네(지리산) /두레네크리스마스이야기(지리산)

두레네 글방입니다.
2001.09.20 11:52

우리 동네 밤농사

조회 수 156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우리 동네의 밤 수확기는 이른 밤(올밤이라고 함)이 떨어지는 9월 초순부터
끝물 늦밤이 시월 말까지 나온다고 하니 무척이나 깁니다.
밤이 많이 떨어지게 되면 집안 식구들만으로는 채 줍지 못해
그때 일꾼을 사게 되는데 그 시기는 대략 한달 가량이라고 합니다.
물론 밤농사의 규모에 따라 사람 사는 기간이 달라지겠지요.
농촌의 일손이라야 할머니와 아주머니인데
이분들이 하루에 줍는 밤의 양이 대략 40Kg짜리 3가마니라고 하더군요.
우리도 노느니 뭐해 연초에 이장님께 부탁해서 요즘 밤 일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밤일이라니까 누가 "낮에 놀다 왜 밤에 일 나가냐"고 해서 웃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리 줏어도 둘이 합해 하루에 4가마 반을 넘긴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일손이 서툴러도 할머니도 세 가마를 한다는데
어떻게 그리 많이 주을 수 있는지 현재 저의 요량으로는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아마도 평생 이 고장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일이라 그리 단련 되어있다고 볼 밖에요.
조금만 허리 굽히고 오래 있다 싶으면 허리가 뻐근해 오는데
이곳 할머니들의 허리를 생각해보니 휠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밭은 평탄한곳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동네 밤밭은 한수내 개울서부터 왕시루봉 중턱까지 있는데
아저씨들은 모두 지게로 밤가마니를 지고 산중턱까지 오르내립니다.
많이 지는 이들은 한꺼번에 2가마니를 지고 다닙니다.
이장님의 옛 젊었을때의 이야기로는 세가마까지 지었다고 하니
그저 입이 떡 벌어질 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 분들은 봄이면 고로쇠 물을 말통으로 세 개씩 지어나르며
단련된 몸이라고 하나 대단한 근력들입니다.
동네에서는 제가 몸이 아파서 시골로 내려온 걸로 아시기 때문에 힘든 일은 시키지 않으십니다. 그래 우리 하는 일이 시원치 않아도 그저 지켜보아주십니다.
변변찮은 일꾼을 일 준 것만으로도 저희는 고마울 뿐입니다.
그런데 그 일도 제가 힘들어 해서 오늘은 쉬고 싶다고 말해(일종의 땡땡이)
툭하면 쉬는 날나리 일꾼입니다. 사실 시골 일은 비가 오면 쉬는 날인데
올해는 가뭄이 심해 8월이후 비가 온적이 없습니다.
밤은 비가 와야 알도 굵고 빛깔도 좋아 값이 나가는데
날이 가물다보니 밤 벌레도 많이 생길뿐더러 말라있는 쭉정이들이 너무 많아
주으면서도 너무 안타까워 비좀 내렸으면 하는데 왠간히 비가 안오는군요.
제가 이토록 비 오기를 기다리는 이유는 밤에도 좋지만
그 덕에 저도 맘편하게 하루 제끼고 싶은 맘에서 일껍니다.

저도 산짐승들의 먹거리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일전에 어느 분이 사람이 짐승 먹을 양식을 안남겨둔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아마 그 분도 환경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신가 봅니다.
산에 가면 떨어진 밤을 씹다버린 멧돼지의 흔적이 아주 많습니다.
밤이 떨어져 날이 가기 전에 줍지 않으면 산짐승들의 것이겠지요.
그런데 밤농사의 경우 원래 산에 저절로 나는 밤을 사람이 채취하는 것이 아니라
밤 묘목을 심고 3년후에 수확이 있기까지
봄이면 지게지거 산 구석구석에 20Kg도 넘는 퇴비며 비료푸대를
수백번씩 지고 나른 사람의 손길이 오간 농작물이라는 점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원래 없던 밤을 수확하고 남은 것을 동물들이 갖게되는 셈입니다.
동물들의 몫을 빼앗기보다 사람에 기대어 동물들이 사는 것이라 보는게 좋겠지요.
옛날에는 산골짜기마다 바랑이 논이 가득했지만
요즘은 돈 안되는 쌀농사보다는 모두 밤이나 매실 두릅 등의 산농사로 전환되어 있습니다.
산에서 농사지어보아야 들농사만 했겠습니까
모두들 가난한 시절이라고 기억하더군요.
그런데 오히려 산농사로 되니 그 전보다 소득이 나아졌다고들 합니다.
물론 이런 전환은 국가 경제의 발전에 기인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만
이렇게 저렇게 얽히고 섫힌 마을의 농사 이력을 살피게 된것 같습니다.
소득의 증대나 짐승의 먹거리가 늘었거나 변하지 않는 것은
농사는 사람의 손길이 세세한 곳에 미쳐야하는 힘든 일이라는 점입니다.
심거나 가꾸거나 거두거나 모두 땀방울이 맺혀야만 된다는 점입니다.
땀 안흘리고 날로 먹던 不汗黨(불한당)은 말 그대로 생명의 순환에 그리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괜히 스트레스만 많은 일이지요.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