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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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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글방입니다.
조회 수 99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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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집에 있으면 아침부터 저녁 내내 쿵쿵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앞의 국도에서 윗 내한 마을(송정리 본 동네)로 올라가는 도로공사 때문입니다.
저는 그 길을 좋아했습니다.
왕시루봉에서 갈라져 나온 봉애산 자락을 구비구비 돌아 들어가며 오르는 길입니다.
한 2-3km정도인데 내려오는 길에 멀리 백운산이 보이고
그 아래로 섬진강으로 흐르는 한수 계곡과 우리 학교를 내려다 보며 산책하는 길.
봄이면 산수유로 시작해 매화와 벚꽃이며 5월의 밤꽃내와
늦가을 길섶에 심은 하얀 녹차꽃까지 보는 차 한 대 지나가는 좁은 길입니다.
그런데 그 길을 이차선으로 그것도 반듯하게 공사한다며
언덕자락 깍아내고 깍은 돌과 퍼낸 흙을 계곡에 메워
결국은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아스팔트 도로를 만든다니...
마을민을 위한 도로공사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녀보면 알지만 낭떠러지 옆을 차 두 대가 함께 지나지 못해 상대 차량이 보이면 그나마 넓직한 장소까지 되돌아가곤 하는 번거로움을 보면 당연히 넓힐 일입니다.
하지만 공사비 엄청나게 그리 깍아내야만 하는지
산허리 생긴대로, 휘영청 휘면 휜대로 그렇게 휘돌아가면 더 운치있는 길이 될텐데,
고속도로 횡허니 빨리 가야하는 길도 아닌데,
마을길 돌아들어간다고 3-4분 더 걸리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공사한다는게 영...
아무리 뜯어먹을게 많은 나라의 도로공사지만 다 우리 세금인데
위로 산업단지 있는 것도 아니요, 기껏해야 30가구 사는 산골마을에
너무 낭비가 심한 개발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건설업자 먹여 살리는 국가의 시책이라고 구실 붙이기라도 이왕이면
산하의 생긴대로 어울리는 길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앞섭니다.
그 나마도 직선으로 뚫리지 못하는 이유는 학교 앞 언덕 위의 괴목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동네에선 제일 오래된 풍상을 겪어놔서 그랬나 했습니다.
그런데 전에 그 나무에 손댄 세 사람이 있었는데 모두 제명에 못 죽었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인지 공사하는 인부들도 자청해서 없애겠다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그 나무 아래로 도로를 내는데
꼭 해변가에 모래더미를 세우고 막대기를 꼽아 한줌 한줌 씩 가져가다 쓰러지는 놀이처럼
나무 아래 흙을 야금야금 파들어가는 모양새로 만들어놨습니다.
외로운 괴목의 쓰린 목마름이 느껴지더군요.
지금도 나무 밑의 바위를 포크레인이 쿵쿵대며 부수고 있습니다.
저 나무가 저기 저렇게 서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주의 기운을 받았는지,
이 길을 오가는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아 축적해 놓은 에너지는 또 얼마인지,
오늘 그 기운이 이렇게 교실 창문 밖을 내다보는 제 눈으로 향했나 봅니다.
지금 살아있는 그 누구보다 훨씬 전부터 뿌리 내린 나무,
학교를 드나드는 마을 아이 하나하나를  내려다보던 나무,
어제 그 이전에 모두가 떠난 빈 운동장에 구르는 잎새만 날려보내다
이제 우리 식구가 사는 온 모습을 지켜보는 나무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나무의 마지막을 지켜볼지도 모르겠지만
할 수만 있다면 저 나무가 이 땅에 뿌리박은 우리 식구들을
끝까지 지켜보는 나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 살아 우리와 교분을 맺은 이로 천년 세월 그 자리에 남아 있기를...


  • ?
    솔메거사 2002.02.01 12:45
    지난 초가을에 그길을 따라 올라갔다오며 나도 느꼈던 적이 있지요, 물질문명이 자연을 파괴하는 아픈현장을 보며....
  • ?
    준수한사람 2002.02.02 18:10
    편함이 정감어린 아름다움을 헤집는 소음에 시달리는 아픔을 같이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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