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에게 먼 길은 없다.

by 두레네집 posted Jan 3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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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살 때부터 오랫동안 교우해 오던 분이 제주도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모든 짐을 차에 넣고 그 차는 배에 실려 바다로 뜨는 날이지요.
제주와 배편으로 가장 단거리인 완도 선착장에서 한반도의 흙과는
이제 인연을 달리한다는 것인데...
시원할지 섭섭할지 알 수 없는 만감이 교차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그 분을 보기 위해 구례에서 세시간 남짓 걸려
완도선착장에서 달려가 배시간 전에 잠깐 뵈었습니다.
한 시간 보기 위해 7시간을 왔다 갔다 했는데도
하나도 시간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오고 가는 길에 눈 덮인 두륜산의 선경이 아름다웠습니다.
다산의 유배지인 다산 초당 가는 길에 강진의 소금강이라는 협곡도 지났습니다.
완도 다리 푸른 물 일렁이는 그 다리를 건너고
뻘 밭 너머 갈매기 노닥이는 정경도 눈에 들어 왔습니다.
저야 여행 반, 전송 반의 마음의 여유도 있겠지만 떠나는 님들이야 그럴 틈이 없겠지요.
그래도 남도 땅은 겨울날에도 봄처럼 따스해 좋습니다.
가득히 널린 마른 생선들을 보며 그 일로 삶을 유지하는 인생의 애착들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볼거리보다는 지금은 이사가는 그리운 사람만 보고도 좋았습니다.
딸아이 이레는 영화장면처럼 흰 손수건을 흔들고...
두레엄마는 한 줄 눈물도 비쳤습니다.
나야 가장이니 웃음으로 "잘 사세요" 했지요.
두레는 말로 제대로 표현하지도 않는 놈이
지가 제일 좋아하는 비행기 장난감을 주어도 울지 않는 것으로
그 마음을 드러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서울가면 보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었는데 이젠 서울에 가도 못 보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허전할 것 같다는 아내의 얘기에 머리를 끄덕거렸습니다.
이젠 보고 싶어도 실 장면으로 보기에는 일년 중 기회가 흔치 않을 것 같아 아쉽습니다.
가끔 보고싶을 때가 있으면 찾아가는 길이 조금 더 멀어졌겠지요.
하지만 그리운 이들에게는 먼 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덕분에 제주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잘됐어"
그렇게 말을 건네고 돌아온 길이 그리 지루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