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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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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글방입니다.
2002.10.26 02:02

불꽃놀이

조회 수 99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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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사무소에서 일하는 두레엄마가 전화를 해왔습니다.
"오늘 저녁7시에 읍내에서 불꽃놀이 한데, 오백발이나 쏜다니 이따 애들 데리구 가자"
시골에 사니 정말 구경거리가 없는가 봅니다.
예전에 서울 살 때는 지척인 한강공원에서 스타 가수들 노래하는데도 안가던 사람이
전남도민체육대회에 각 군 아마츄어 대표들이 노래자랑 한다는 정도를 가자고 하니,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김치 달달볶아 애들이랑 헐레벌떡 해치우는데 시간이 지났습니다.
어둑해진 섬진강변을 쌩하니 달려가는데, 애들이 뒤에서 읍내 간다고 신난다고 떠듭니다.
저 멀리 서시천변에는 무대를 설치했는지 조명이 번쩍번쩍 어둑한 시골 하늘을 밝힙니다.
정말 읍내에 보기 드물게 주차할 곳도 마땅찮게 차들이 몰려있더군요.
멀리서 내려 천변 공원으로 가는데, 도시서 지겹게 들었던 사람 무시하는 아나운서들의 멘트가 들려옵니다. "거기 서 있지 말고 이리 앉아요" "박수 좀 쳐야 신이 나지""앞 자리부터 채워서 앉아요" 부드럽고 사근사근하게 해도 될 말을 피곤하게 한다고 느꼈습니다.
괜히 죄지은 일도 없는데 할머니들이 쩔쩔매며 앞자리로 옮겨 앉고
주눅들은 애들은 뒷자리로 슬금슬금 빠지려고 엉거주춤합니다.
가뜩이나 날씨도 추운데 재미난 일이라도 있으려나 모였는데 기분이 착 가라앉데요(?)
저 사람이 완장을 둘렀나, 별 것 아닌 일에 저리 소리지르나...
시골 살며 숨어버린 내 속의 반골 기질이 아직도 서슬 퍼래 살아있나 봅니다.

한다는 불꽃놀이는 8시가 넘도록 안하고 이젠 이슬이 내려 점점 어깨도 시려오길레
뒤쪽의 음식거리를 파는 난전으로 갔습니다.
왜 있잖습니까? 통돼지 돌리고 막걸리 팔고 부침이며 핫도그에 어묵 파는 곳 말입니다.
날씨가 추워 아이스크림 장사도 어깨를 움추리니 그 아저씨에겐 젬병이었을 것 같네요.
뜨끈한 국물이 갱각나 어묵 한 그릇 얼마냐고 물었더니 오천원이랍니다.
암만봐도 이천원이 적정일텐데 해수욕장 파라솔 장사하다가 왔는지 바가지가 깊었습니다.
되돌아서려다 딸년이 내 얼굴을 빤히 보길레 마음이 움찔해 그냥 주문했습니다.
뭔지 모르지만 쫀쫀한 아버지 상을 보이기 싫어서 그랬을 것 같습니다.
결혼전 아내와 등산 갔다 내려오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산에 갔다내려오면 산밑에 부침개 집의 기름냄새에 끌렸는데 한번도 사먹어 본적이 없었어, 그래서 그때 생각에 내가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꼭 사먹을테다 그랬지.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도 마음놓고 턱 사먹기에는 부담이 가니 우습지?"
제 기억에도 등산하고 산밑에서 막걸리에 파전을 먹은 기억은 회사에서 월악산을 등반하고 사장님이 거나하게 산 때 말고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 더 있다면 결혼하기 전인지 후인지 비오는 날 북한산에 갔다가 대성문 지나 보현봉 가다 도토리묵하고 한잔한 기억도 있네요.
그런 까닭인지 두레엄마도 "산 밑의 오뎅"이다 싶은지 슬며시 웃습니다.

슈퍼에 들러 애들 기분 맞출 과자 더 사고 오는데 불꽃이 터집니다. 화약냄새와 함께,
우리 차도 서고 지나가던 버스도 서고 오토바이 타던 이도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시골에선 보기 드믄 광경인지라 모두들 그렇게 서서 어둔 하늘에 비친 불꽃을 보았습니다.
칼리하라 사막의 미어 캣들이 나란히 서서 하늘을 보듯이
그 시간 천변의 구례 사람들은 죄다 고개를 들고 있었지요.
동네 면장님도 군수도 오뎅장사꾼도 애들도... 노래부르는 이도 목을 빼고 노래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살던, 무슨 생각을 하던, 짧은 시간이나마 바라보는 시각은 한군데라는 게
뭔가 묘한 느낌을 주는 불꽃놀이였습니다.
다양성 속의 일치. 이게 공동체 정신의 핵심이고 종교의 중요 원리라는데
오늘날 우리는 자기 생각만 다양하지,
마음을 모으는 불꽃은 잃어버린 이들이 아닌가 싶어지는군요.



  • ?
    부도옹 2002.10.26 23:11
    건강하신지요~ 얼마전 가까운 장안대학에서 축제를 해서 밤에 불꽃을 쏘아 올렸는데 소리만 요란하고 그림은 별로, 오늘 넬레비젼 뉴스에서 '서울사랑의날" 전야
  • ?
    ~ 2002.10.26 23:13
    제를 보여주는데 그림의 다양성에 입이 떠~억, 글고 6000발이나 쏘았다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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